수록작품(전체)
50호(여름)신작시/장경기/죽음에게 외 1편
페이지 정보

본문
장경기
죽음에게 외 1편
―마음통일장 363. 아버지의 노을길, 죽음씨와 동행하면서
1.
내 안에 소우주들이여
함께 어우러져
나라는 대우주를 이루어냈던
소중한 내 소우주들이여
돌이켜보라
그대들, 헤아릴 수 없는 소우주들이여
절묘한 조화로 이뤄낸 이승의 삶은
장엄한 오페라였나니
너무도 짧은 순간에
막을 올리고 내린 신명나는 춤판이었네
2.
그러나
우리 흔쾌히 멀어져 가나니
드넓은 존재의 바다에서
찬란한 빛살 뿜어내는
사랑으로 다시 만남을
온 우주 밝히는
장엄한 존재들의 춤판으로
다시 피어남을 알기에
설렘 안고 서로서로 흩어져 가네
저 드넓은 존재의 바다
새로운 인연을 찾아 반짝이며
산산이 멀어져가는
내 소중한 인연들이여
우리 서로 멀어져 가면서도 서로를 만지네
3.
저마다 섬세한 파문으로
넓고 깊게 퍼져가며
서로를 만지네
어디에도 없는 그대, 나를 만지네
나 그대의 섬세한 떨림에 눈부시네
온 우주가 하나로 어우러지며
서로를 만지고 있음을
서로의 어깨를 다독거리고 있음을
알게 되는 이 신비여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도 있는 그대
나를 바라보고 있네
나 그대를 향해 노 저어 가네
저어도 저어도
그대 품안인 따신 가슴속을 노 저어 가네
죽음이여. 자네라 불러도 되겄는가
―마음통일장 364. 아버지의 노을길, 죽음씨와 동행하면서
죽음이여
온 세상 통 털어도
그대만큼 내가 얘기를 많이 나눈 이가 또 있으랴
그대를 자세히 알 수는 없어도
나직나직 정다운 그 이름 불러보네
내 오랜 벗이여. 당신이여
아니 자네, 자네라 불러도 되것는가
보다시피 먼저 열명길 닦으신 어머니 따라
아버지의 노을길을 함께 밟으며
그대 품안 향해서 순례길 떠나고 있네
뱃속에 품어 세상에 키워낸 어머니 아버지를
이제는 그 자식이 오줌 똥 받아내니
삶이란 게 한 치도 에누리 없는 오묘한 품앗일세
죽음이여. 내 오랜 벗이여.
오늘도 얼마나 많은 생명들을 당신 품안에 품어내고
잠시 빌려 입었던 흙으로 물로 바람으로 되돌려 보냈으랴
늘 고단하겠구려
죽음씨
나한테도 좀 볼일이 있는 걸로 아네만
이번에 얼굴도 단단히 익혔으니
언제 자네 시간될 때 한 번 들르게
우리 갈 땐 가더라도
이승의 주막에서
감자탕에 막걸리나 한 잔 허고 가세
장경기∙1992년 ≪현대시≫로 등단. 1996. 8. 1일<멀티포엠아트 제1 선언문>을 발표한 이후 멀티포엠아티스트로 활동. 시집 몽상의 피, 안개의 집, 화언, 마고, 신의 변론, 신의 사랑, 신용불량자, 휴먼블랙박스, 눈꽃경전, 마음통일장 등.
- 이전글50호(여름)신작시/박무웅/길 외 1편 14.06.06
- 다음글50호(여름)신작시/백인덕/아버지의 철모 외 1편 14.06.0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