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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여름)신작시/박무웅/길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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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477회 작성일 14-06-06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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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무웅/길 외 1편

 

 

 

한 사람이 길을 떠났다면

거기 새로운 길이 생겼을 것이다

하늘과 바다 혹은 숲속에도 길이 있는데

하물며 한 사람의 의지 속에 길이 없겠는가.

바위를 가로질러 가는 한 마리의 뱀과 같이

담을 올라가는 한 줄기의 담쟁이와 같이

세상의 길 위에

입 꾹 다문 결심하나 없겠는가.

 

초원의 들소가 들소를 밟고 뛰는 길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해서 도는 길도

제자리 비행을 하는 한 마리의 맹금류도

모두 제 길 하나쯤은 갖고 태어났다.

들판을 지나가는 바람과

그 바람과 동행하는 풀들도 같은 길에 서 있는 것이다.

비틀거리는 길에선 모두 비틀거리는 것이다.

 

이렇듯 지상의 길들이 진화하면 사람이 된다.

길은 길게 때로는 목적도 없이 누워 있지만

사람은 그 위에서 걸어간다.

잠시 길 옆 바위에 앉아

내가 지나쳐 온 나를 기다려 주는 것

내가 땀 송글송글 맺힌 먼 길이 되는 것.

 

 

 

 

 

 

 

 

초승달을 눈에 넣은 매 한 마리가

학교 국기봉에 앉아 있다

제자리비행으로 오래 펄럭거린다.

새까맣게 소낙비가 내릴 듯하면

짐승들이 산등성이로 내닿고 작은 날개들이 하늘을 메우고

지상의 닭들은 부산해진다

이 때 공중에는 배고픈 눈빛이 집요하다

오랜 시간을 나선형으로 돌수록

그 옛날 땅에 버린 눈빛은 점점 밝아졌다.

단 일격을 꿈꾸는 조준이 과녁을 오래 바라보듯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생과 죽음이

서로를 마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학교 국기봉 위

음양의 우주가 바람에 펄럭이듯

숲과 들판에도

생과 사가 서로를 먹여 살리고 있다.

우리는 한 끼 밥 앞에서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짐승이다

아주 오래 전 어머니의 빈손에서 보았던 그 발톱

그 맨손을 바라보던 나의 눈에 돋아나던

그 배고픈 발톱

펄럭거리면서 바람을 먹여 살리는 것들이 있듯

깃털이 깃털을 먹여 살리는 숲은 평화롭다

상극相剋으로 아름다운 것들이 있고 그 중간에 나와

매 한 마리가 제자리비행을 하고 있다.

 

박무웅∙1995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 내 마음의 UFO 외. 계간 ≪시와표현≫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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