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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여름)신작시/손택수/반구대 암각화 고래의 고민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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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반구대 암각화 고래의 고민 외 1편
반구대 암각화 보호는 박근혜 정부의 대선 공약이다
새 정부의 문화재청장도 취임하자마자
암각화 보호 전담팀을 꾸렸다
암각화의 고래들 입장에선 쌍수를 들고 반길 일이나
실은 이 조치가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댐이 들어서면서 강물의 오르내리는 수위에 따라
자맥질이라도 칠 수 있게 된 것은
의도와는 무관하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기억은 인간의 일이고 망각은 자연의 일이 아니던가
비록 희미하게 지워지긴 하였으나
바위에 그림을 그리던 이의 숨결을 아주
잊지는 않았으니, 그가 사라진 곳으로
물살에 깎여 사라질 수 있다면 그도 좋은 일
모래알이 되어 떠나온 바다를 찾아갈 수 있다면
망각이야말로 살아있는 기억이다
헌데 굳이 보호를 하겠다고 정부가 팔을 걷어붙였으니
이보다 난감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이 일감도 없이 거리로 쫓겨나고
철거민들의 지붕이 오늘도 쥐어뜯기고 있다는데
벼랑 끝에 몰린 누군가 또 목숨을 끊었다는데
국가의 일이니 말릴 수도 없고,
문화재 대접을 받으니 은근히 으쓱하기도 하지만
염치를 아는 고래로선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이래저래 문화재 노릇하고 살기도 쉽지가 않은 세상이다
박정희 기념관을 지나며
1975년 유신반대 시위를 하던 백기완 선생이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한겨울 영등포교도소에 투옥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독방에 허름한 모포를 덥고 막 잠이 들려고 하는데 스멀스멀 무엇인가가 살갗을 기어다니는 느낌에 화락 일어나서 보니 이들이었습니다. 터질 듯이 퉁퉁 살이 찐 이들이 바글바글 살갗에 매달려 한참 펌프질을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간수에게 물으니 얼마 전까지 있던 사형수의 모포였다고 합니다. 더 앞에는 「糞地」로 필화사건에 휘말려 들어온 소설가 남정현 선생 같은 분도 덮던 모포였다고 했습니다. 유신은 이를 통해서도 고문을 하는구나, 어둠 속에서 피를 빨아 디룩디룩 살이 쪄 있구나. 분을 참지 못한 선생은 이를 갈며 떨어지지 않는 이를 손톱을 세워 죽이다가 어느 순간 섬뜩해져서 그만 두고 말았답니다. 저 몸속에 동지들의 피가 있다고 생각하니 차마 피를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2013년 1월 대선이 끝나자마자 한미자유무역협정 반대 시위에 참여했던 선생에게 50만원 벌금형이 떨어졌습니다. 세상에, 이 땅엔 40년을 넘게 장수하는 이들도 있나 봅니다.
손택수∙1970년 담양생.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호랑이 발자국, 목련 전차, 나무의 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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