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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여름)신작시/안창현/사다리 사랑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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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현/사다리 사랑 외 1편
내 차 옆으로 지나가는 저 여자는 어두운 얼굴, 쑥 들어간 눈매가 한 때 나와 사랑에 빠진 먼 나라 여자. 왜 작아 보이는지 작았었나, 내 품에 폭 안겼었나, 가여운 여자 지나가네. 웃는 얼굴 사진 찍어 내게 자주 보내던 여자. 2년 전 말도 없이 멀리 이사가 버린 여자. 나는 차를 돌려 불러 세우고, 차에 타라니까, 일 봐야 된다고, 잠깐이면 된다고, 왜 어찌 말도 없이 떠났냐고, 미안하다고, 잘 지냈냐고, 먼저 살던 남자한테 이혼 위자료는 받았어, 청소 인건비는, 아니, 못 받았어. 힘들었겠구나. 지난봄에는 과수원일 하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치료비도 못 받고 꼼짝 못할 때 내가 빌려준 노트북컴퓨터 팔아서 병원에 다녔다고, 그랬어, 괜찮아, 자기 눈물 조금, 아니, 고생했구나. 이제는 먼 나라로 돌아간단다. 그렇게 그 여자는 다시 떠나갔다. 내 귓전을 울리는 그 여자의 말, 한국사람 나빠, 왜 나빠. 그때 아파트로 들어서는 데 신호등은 바뀌고 내 차는 달리고 있다.
이제 더는 앞으로 갈 수 없는 사랑. 멈춘 사랑은 아파 저 깊이 멍든 마음을 지나 언제 돌아오나. 지금 내게 남은 사랑이 안타깝네. 그 여자와 나눠야 할 사랑, 더는 주지 못하고 만 내게 남은 사랑을 어떻게 하나. 그 여자는 떠나고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고, 나중에 돌아와도 내게 남은 사랑이 그때도 남아 있을까. 그 여자는 내게 남은 사랑이 있다는 걸 알기나 하는지. 지금 내게 남은 사랑은 사다리 위로 올라간다.
봄에 또 봄이 오고
내가 너를 봄에 꽃 같고 이뻐
내 봄은 기쁘고
혹독했던 가버린 겨울을 돌아봄에
피어난 봄꽃이 더 좋고 새로운 것을
책봄 잘 읽히고
해봄 눈부시고
꽃봄 향기롭고
널봄 기쁘고
물봄 촐랑거리고
풀봄 쭈뼛거리고
들봄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새봄 재재거리고
별봄 반짝이고
달봄 훤하고
밥봄 땡기고
꿀봄 달고나.
날이 풀려 봄이 오는 길목 찬바람은 거세진다. 봄이 오려면 봄이 여러 가지 일로 바빠야 하는데 할 일을 하기 싫어서 몸부림치는 게 찬바람으로 나타나는 것. 봄을 일찍 오게 일하기 싫어서 몸부림친다. 찬바람 분다. 봄은 게으르다.
안창현∙경기 안성 출생. ≪시와정신≫으로 등단. 시집 외계행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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