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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여름)신작시/최명진/거울 앞에 서서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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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진/거울 앞에 서서 1편
내 친구 영종이, 그 자식이 고혈압에 당뇨란다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자식이 여섯 살 때 물놀이 가서 넘어진 뒤통수에 이따 만한 땜통 그 놀려먹기 좋았던 정신이 산만해서 학창시절을 허투루 보낸 그 자식이 말똥 같은 눈물 흘리면서 누군가 칼을 들고 자길 쫓아온다나, 끔찍하게 죽게 될까 조마조마하다가 공황장앤가를 앓다 가지가지 하다가 뚝딱 결혼해서 애 둘 낳고 보니 늠름한 애비가 됐다 완전 딴 사람 됐다
훼까닥 정신 돌아오는 느낌이 이런 걸까 한 번은 넋 놓고 엄마를 보고 있다가 웬 할머니 한 사람이 그 자리에 있는 거다 보니 곧 내 나이도 사십 오래 한눈을 판 것도 아니고 무언가, 무엇이 나를 기만하게 하는 걸까 후비고 후벼보는데 생에 있어 정말이지 끔찍한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기는 있었나 가령, 뭐든 잘 참고 참았더니 그 안에서 괴물이 되었더라 그 괴물 도발하지 않게 다그쳐 가두었더니 교활해지다가 어두워지다가 무거워지다가 얇은 한 장의 가면이 되었더라
낯설기도 하지
사거리 신호등
인파에 섞여 길 건너가는
똥개 한 마리
자꾸 보니
슬프다
물 때 묻은 더러운
엉덩이가 아니라
어떤 뭉클한
이야기 같아서
킁킁 둘러봐도
또래 하나 없고
꼬리 칠 붉은 잠자리
하나 없고
왔던 길 더듬어가는
똥개 한 마리
누구였을까
내 머리 곱게
핥아주던 착하고
순한 짐승은
아니면
아무 것도, 그저
허허들판의 망상일까
허수아비 같은 걸까
처진 불알 덜렁이며
길 건너가는
똥개 한 마리
최명진∙2006년 ≪리토피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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