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50호(여름)신작시/한세정/좀비의 시간 외 1편
페이지 정보

본문
한세정/좀비의 시간 외 1편
문을 열면
낯선 얼굴과 표정들이
쇄도할 것이다
유리창에 입술을 대고
당신을 나직하게 부를 때
나는 이유 없이 머쓱해지고
입김으로도 지울 수 있는
얼굴을 당신에게 건넨다
당신의 표정은 환해졌다가
금세 어두워지고
나는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인 채
두 팔을 내밀고 같은 자리를 걷는다
적막하게 떠도는 먼지들처럼
성당 종소리가
여섯 시의 유리창을 감싼다
굳어버린 발목은 어디로도
나를 데려가지 못할 것이다
고요하게 손톱이 자란다
3인칭의 오후
아파트 화단에 꽃나무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화단 위로 꽃잎들이
흘러내린다
3인칭의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3인칭의 당신들이 도착한다
찌그러진 우편함에
이름들이 쌓여간다
난간에 널어놓은 이불에 수놓은
선홍색 꽃봉오리가 터지려는 순간
교복 입은 소녀가
포물선을 그리며
화단 위로 낙하한다
나무와 나무 사이
펄럭이는 치마가 아름답다
거미줄 같은 체크무늬가
허공의 덜미를 감싸 안고 있다
한낮에 사이렌이 울린다
아무도 뒤돌아보지 않는다
한세정∙200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입술의 문자.
추천0
- 이전글50호(여름)신작시/김제욱/의자는 노래하는 외 1편 14.06.06
- 다음글50호(여름)신작시/이두예/전어 굽는 저녁 외 1편 14.06.0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