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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여름)신작시/한세정/좀비의 시간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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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705회 작성일 14-06-06 13:41

본문

한세정/좀비의 시간 외 1편

 

 

문을 열면

낯선 얼굴과 표정들이

쇄도할 것이다

 

유리창에 입술을 대고

당신을 나직하게 부를 때

나는 이유 없이 머쓱해지고

입김으로도 지울 수 있는

얼굴을 당신에게 건넨다

 

당신의 표정은 환해졌다가

금세 어두워지고

나는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인 채

두 팔을 내밀고 같은 자리를 걷는다

적막하게 떠도는 먼지들처럼

 

성당 종소리가

여섯 시의 유리창을 감싼다

굳어버린 발목은 어디로도

나를 데려가지 못할 것이다

고요하게 손톱이 자란다

 

 

 

 

 

3인칭의 오후

 

 

아파트 화단에 꽃나무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화단 위로 꽃잎들이

흘러내린다

 

3인칭의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3인칭의 당신들이 도착한다

찌그러진 우편함에

이름들이 쌓여간다

 

난간에 널어놓은 이불에 수놓은

선홍색 꽃봉오리가 터지려는 순간

교복 입은 소녀가

포물선을 그리며

화단 위로 낙하한다

 

나무와 나무 사이

펄럭이는 치마가 아름답다

거미줄 같은 체크무늬가

허공의 덜미를 감싸 안고 있다

한낮에 사이렌이 울린다

아무도 뒤돌아보지 않는다

 

한세정∙200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입술의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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