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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여름)/미니서사/김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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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340회 작성일 14-06-06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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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서사

김혜정/낭만적 결혼

 

 

 

나는 일주일 전에 그녀에게 청혼했다. 물론 그녀가 거절할 수 없게 비장의 카드를 준비해두었다. 그녀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녀의 대답을 듣기로 한 날이었다. 그녀는 오전에는 약속이 있다며 저녁에 만나자고 했다. 누구를 만나는지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녀가 늘 그랬듯이 남자친구라고 스스럼없이 대답하면 기분이 나빠질 것 같았다.

드디어 그녀와의 약속시간이 가까워졌다. 어둠이 내린 하늘을 배경으로 만개한 홍매화와 목련, 자두나무가 저마다 제 빛깔을 뽐냈다. 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이 동네는 고양이마저도 느긋하구나 싶으니 나의 선택이 탁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놈을 향해 살짝 웃어주고는 천천히 좁은 길을 돌아 언덕을 올라갔다. 벤치가 모습을 드러내는 지점에서 속도를 늦추었다. 이따금 걸음을 멈추고 내가 사놓은 전원주택의 뾰족한 지붕과 낮은 담장, 풀이 우거진 길에 세워진 자동차들을 보았다. 그러면서 그녀에게 했던 청혼에 대해 생각했다. 결혼함으로써 그녀를 멀리하고 잊으려고 했다는 것, 그녀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드디어 그녀가 나타났다. 약간의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 나는 어깨를 곧추세우며 다소 의기양양한 태도로 그녀를 말했다.

“결혼이란 정말 중요한 거야. 평생 한 집에서 살아야 하고 몸도 마음도 하나가 되는 거니까. 당신이 시간을 달라고 한 건 그만큼 신중하게 판단하겠다는 의미였겠지? 당신 생각을 존중하고 싶어.”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초조해서 비장의 카드를 선보였다.

“저 집이 우리가 살 집이야. 당신을 위해 준비했어.”

“와! 당신은 정말 멋쟁이예요.”

이쯤 되면 성공이라는 생각에 어깨에 힘이 절로 들어갔다. 그러나 다소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뭐 이 정도를 가지고.”

“그런데 왜 결혼하면 저 집에서 살아야 하죠?”

“우선 공기가 좋고 집도 넓잖아. 아이들이 자라는 데도 이런 환경이 그만이지. 도시는 너무 삭막하잖아.”

“하지만 쇼핑하려면 시내까지 나가야 하잖아요. 영화관도 멀고요. 무엇보다 남자친구를 만나기에는 불편할 것 같아요. 그는 차가 없거든요.”

“무슨 소리야? 결혼하고도 남자친구를 만나겠다는 건가?”

그녀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조심스럽게, 그러나 환한 웃음을 머금으며 대답했다.

“아, 좋은 방법이 떠올랐어요. 남자친구와 결혼하고 당신을 만나는 거예요.”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녀가 생긋 웃으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무언가에 도취된 표정으로 말했다.

“낭만적이잖아요.”

언제 나타났는지 아까 보았던 고양이가 나를 바라보며 야옹, 했다. 그녀의 말이 옳아요, 라는 듯이.

 

김혜정∙199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장편소설 달의 문으로 서라벌문학상 신인상 수상. 소설집 복어가 배를 부풀리는 까닭은, 바람의 집, 수상한 이웃. 장편소설 독립명랑소녀로 ‘2010 간행물윤리위원회 우수청소년 저작상 수상. 경기국제통상고등학교에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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