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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여름)윤의섭의 포에티카⑨/표현의 技術·5-환기, 혹은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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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의섭의 포에티카⑨/표현의 技術·5-환기, 혹은 전환
어떤 시는 길고 복잡한 이야기가 있는데도 단순해 보일 때가 있다. 긴 내용을 읽고 났는데도 여운이 남지 않고 곧바로 잊히는 시도 있다. 단순하다는 것은 평면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에 굴곡이 없고 평탄하게 이어지면 그렇게 보이는 모양이다. 그러한 시는 마치 사무적으로 전달할 말만 전하고 휙 가버리는 사람의 뒷모습처럼 보인다. 앞만 보고 무작정 달렸으므로 빠르게 휙 지나쳐 버린다. 사실 단순하거나 단조롭다고 해서 그러한 시가 모두 훌륭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가 좀 더 풍요롭길 바란다면, 시가 좀 더 입체적이길 바란다면, 시가 좀 더 오래 기억되길 바란다면, 어떠한 실험적 시도를 통해서라도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지 않을까.
어떤 경우는 입체적이고 오래 여운이 남는 시가 있다. 그러한 시들에게는 창문에 달려 있다. 나는 이것을 환기구라고 부르고 싶다. 시를 읽는 가운데 시적 환기를 이루는 부분이 있는 시. 시 전체의 의미가 더욱 선명하게, 의미 있게 전달될 수 있도록 환기구와도 같은 숨구멍을 내주는 방식. 달리 말하자면 시적 전환을 이루어 입체적 표현을 유도해 내는 방식. 조금 긴 인용이지만 이 환기, 혹은 전환의 방식을 알아보기 위해 아래의 시를 살펴보자.
나는 핏기가 남아 있는 도마와 반대편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오늘은 발목이 부러진 새들을 주워 꽃다발을 만들었지요
벌겋고 물컹한 얼굴들
뻐끔거리는 이 어린 것들을 좀 보세요
은밀해지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지
나의 화분은 치사량의 그늘을 머금고도 잘 자라고 있습니다
창밖엔 지겹도록 눈이 옵니다
나는 벽난로 속에 마른 장작을 넣다 말고
새하얀 몰락에 대해 생각해요
호수, 발자국, 목소리……
지붕 없는 것들은 모조리 파묻혔는데
장미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에겐 얼마나 많은 담장이 필요한 걸까요
초대하지 않은 편지만이 문을 두드려요
빈 액자를 걸어두고 기다려보는 거예요
돌아올지도 모르니까
물고기의 비늘을 긁어 담아놓은 유리병 속에
새벽이 들어 있을지도 모르니까
별들은 밤새도록 곤두박질치는 장면을 상연 중입니다
무릎을 켜면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처럼
당신이 이 편지를 받을 즈음엔
나는 샛노란 국자를 들고 죽은 새의 무덤을 휘젓고 있겠지요
* 고트호브: 그린란드의 수도로 ‘바람직한 희망’이라는 뜻.
― 안희연, 「고트호브*에서 온 편지」 전문
위 시를 보면 발화 주체가 있는 장소는 부엌, 거실과도 같은 실내이다. 화자의 시선은 대개 ‘도마’, ‘화분’, ‘벽난로’, ‘액자’, ‘유리병’, ‘국자’ 등이 놓여있는 실내를 비추고 있다. 만약 이 시의 배경이 모두 실내를 지시하고 있다면 위 시 역시 답답하고 단조로운 편지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위 시에는 환기구가 있다. 그것은 장면 전환 지점으로 나타난다. 구체적으로 보면 “창밖엔 지겹도록 눈이 옵니다”가 그 부분이다. 화자의 시선이 실내에서 바깥으로 돌려지고 있는 장면이다. 그리하여 시 속에 계절적 배경과 함께 창밖의 풍경을 끌어들이면서 동시에 ‘지겹도록 오는 눈’이라는 표현으로 화자의 현재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 독자는 이 부분을 통과하면서 답답한 실내의 공기에 차가운 바깥 공기가 스며드는 현상을 경험한다. 시선의 전환으로 인하여 시의 흐름과 속도에 굴곡이 생겼다. 뭔가 걸림돌에 걸린 듯한 과정을 겪는 것이다. 매끄러운 미끄럼틀을 타다 울퉁불퉁 솟은 장애물을 만난 것이다. 그러니 잠시 멈춰서서 머뭇거리거나 다시 뒤돌아보거나 바깥 상황과 함께 현재 상황을 다시 상기해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 바깥 풍경이 겹쳐진 상태에서 독자는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게 된다. 다시 실내로 들어서는 것이다. 바깥 풍경과 실내 풍경이 거칠게 충돌한다. 충돌은 은유의 효과를 형성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방출한다. “창밖엔 지겹도록 눈이 옵니다”라는 구절을 통과하면서 독자는 더욱 풍요로워진 시의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위 시에는 이런 ‘환기구’가 한 군데 더 있다. 이쯤 되면 어느 부분인지 쉽게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그 지점은 “별들은 밤새도록 곤두박질치는 장면을 상연 중입니다”라는 부분이다. 어느새 바깥 배경은 눈이 그치고 하늘이 맑아 별이 보이는 새벽의 상황으로 바뀌어 있다. 이 부분에 이르러 독자는 화자가 편지를 쓰는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실내의 답답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넓은 밤하늘의 풍경으로 눈을 돌릴 수 있게 된다. 물론 ‘곤두박질치는 별’로 전해지는 화자의 심정도 함께 느낄 수 있다. 이 지점을 고비로 하여 시는 종결부로 치닫는다.
시에서 환기 작용이 일어나는 지점은 딱히 정해져 있지 않으나 대개는 시의 중간 전후 지점인 듯하다. 그리고 그 부분도 너무 많지 않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시 전반에 걸쳐 주조를 형성하는 중심 이야기를 보조하는 역할이어야 하지 환기구 자체로도 중심 이야기를 형성하는 구조가 되면 시의 내적 혼란이 야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무는 숲으로 이르고 숲은 바람으로 이른 아침 여위어가는 얼굴로 바람이 말한다 사물들을 가만히 두어라 아무것도 움직이지 말아라 그저 가만히 놓아 두어라 이미 그러하다 이미 그러했다 말라가는 가지들처럼 마른 바람이 불어온다
나무의 나무는 곧고 나무의 나무는 휘어진다
나무의 나무의 나무는 어둡고 나무의 나무의 나무는 혼자다
어느 날의 꿀맛 같은 잠
어느 날의 돌아오고 싶지 않은 마음
나무의 나무가 흔들릴 때 나무의 나무의 계절은 흐르고 나무의 나무는 조금 늙거나 나무의 나무는 조금 더 짙어지는 것인데 어제의 손이 더 차갑거나 더 뜨겁게 느껴지는 것은 오늘의 혈관 속을 흐르는 혈액의 비밀 때문인지도
녹음이 우거진 지평선
만지면 만질수록 엷어지는 몸
순간의 감정을 대신할 또 다른 감정을 찾기를 포기하라 사물들을 가만히 두어라 아무것도 움직이지 말아라 그저 가만히 놓아 두어라 그저 가만히 놓여 있어라 보이지 않는 입이 있어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있어 무수히 되뇌었던 말들을 다시 소리 내어 보는 것인데
그때 우리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그때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갖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로 놓여 있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무것으로 놓여 있지 않았다 이미 그러하다 이미 그러했다
사선으로 흩날리는 빗방울
흩어지다 모이는 최초의 구름
나무는 숲으로 이르고 숲은 나무로 이른 아침 나무의 나무는 나무의 나무로 흔들리며 시간의 틈을 얼핏 열어 보여주는 것인데 어느 날의 작고 어린 개가 있어 어느 날의 희미한 양떼와 검은 모자가 있어 나무의 나무는 하나인 채로 여럿이고 나무의 나무는 고요하고 나무의 나무는 가깝고 나무의 나무는 다시 멀어지는 것인데 아마도 그러하다 아마도 그러했다
― 이제니, 「나무의 나무」 전문
위 시에서 환기구 역할을 하는 지점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은 세 군데로 “어느 날의 꿀맛 같은 잠/ 어느 날의 돌아오고 싶지 않은 마음”, “녹음이 우거진 지평선/ 만지면 만질수록 엷어지는 몸”, “사선으로 흩날리는 빗방울/ 흩어지다 모이는 최초의 구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의 전체 흐름은 ‘나무’에 대한 사색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이 세 군데는 ‘나무’에 대한 시선에서 벗어나 각각 ‘잠’, ‘마음’, ‘지평선’, ‘몸’, ‘빗방울’, ‘구름’을 지시하고 있다. 독자의 시선을 ‘나무’ 중심에서 벗어나게 하여 다른 곳으로 유도하는 셈인데, 이 환기구 부분은 앞서의 시에서처럼 화자의 심리 상태를 보여주는 역할도 겸하고 있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중심 이야기가 반복적인 전개로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 환기구 부분은 이질적인 사물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들이 비반복적인 구조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다른 부분이 서술어로 끝나는 것에 비해 이 환기구 부분은 명사형으로 끝을 내고 있다. 그렇게 하여 시적 호흡의 단절을 유도하고 독자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환기구 역할을 확실하게 하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물론 이 부분들 역시 시의 중심 이야기와 관련을 맺으며 그것을 보완하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충돌 효과를 유발한다. 그러므로 이 부분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시적 환기, 혹은 전환을 형성하기 위해 이와 같이 이질적 풍경을 삽입하는 방식은 의도적인 작업으로 수행될 수도 있지만 대개는 감각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본다. 어느 위치에 어떤 내용을 삽입할 것인가에 대한 시인의 감각은 시에 대한 집중력이 높을 때 형성된다. 섣부른 시도는 오히려 시를 산만하게 만드는 문제적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또한 한 시인의 많은 시에서 이와 같은 방식이 자주 발견되면 그 역시 단조롭고도 식상하다는 느낌을 줄 것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든 간에 시의 의미를 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방식으로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시에서 실험적 시도는 필요하고 권장되어야 하지만 본질을 벗어난 남용과 남발은 피해야 할 것이다.
윤의섭∙1968년 경기도 시흥 출생, 1994년 ≪문학과 사회≫로 등단, 21세기 전망 동인. 시집 말괄량이 삐삐의 죽음, 천국의 난민, 붉은 달은 미친 듯이 궤도를 돈다, 마계. 대전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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