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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호/신작시/박설희/호모 케미쿠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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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1
댓글 0건 조회 246회 작성일 22-12-29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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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호/신작시/박설희/호모 케미쿠스 외 1편 


박설희


호모 케미쿠스 외 1편



당신에게 플라스틱 반지를 끼워주겠어요

지구와 함께 지속할, 

유사 이래 최대 발명품

오죽하면 

알바트로스가 새끼에게 플라스틱을 먹이겠어요


플라스틱 사랑,

일회용으로 만들어졌지만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해요


우리의 사랑도 일회용

30년이나 갈까요? 

조형은 물론 가공도 가능할 거예요

녹였다 굳혔다, 총천연색 색깔로 바꿔가며

알콩달콩 그렇게 살아요


우리 간 다음에도 오래 오래 남아

거북이나 고래 뱃속에서도

사랑을 증명해줄 테지요

자, 이제 

색깔과 모양만 정하면 돼요





다시 벽이 온다



“밥 먹고 가”

이제 죽을 일만 남았는데 무슨 시를 쓰랴고 마다하던 할머니, 

점심 드신다기에 일어서려는데


옻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경로당 밥상에 끼여 앉아 

따끈한 흰 냉대 한 술

윤기 나는 서운함 한 술

마음속 찌꺼기 긁어모은 숭늉까지 마시고


“잘 먹었습니다” 문 열고 나서며

통했다는,

내장을 관통했다는 느낌


한 밥상에서 밥을 같이 먹는다는 건

숱한 벽을 만난 사람들이 친해지는 마법


밥을 늘 사주는 처녀가 있어

결혼을 결심했다는 남자를 안다

한 끼의 밥이 평생의 밥이 되었다는

그도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을 

오르락내리락했던 것


다시 벽이 온다

벽을 만나서 절벽이 돼버리기 전에

밥을 먹는다

지금, 여기, 이 사람을 먹고

깊고 서러운

내장을 꾸물꾸물 달린다





*박설희 2003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쪽문으로 드나드는 구름』, 『꽃은 바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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