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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호/신작시/최향란/갈치를 굽는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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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호/신작시/최향란/갈치를 굽는다 외 1편
최향란
갈치를 굽는다 외 1편
은빛이란 잠시 고흐의 꿈을 꾸는 것
죽음 앞둔 너는
팽팽히 당겨진 릴 끝에서 날카로운 아가리 벌렸다
바다를 떠나는 깊은 밤
은빛가루 온몸으로 토해냈을 것이다
이렇게 멀리 떠나와 있어도
꼬리까지 비릿한 바다
푸른 바다 헤쳐 나가던 긴 등지느러미가
각자의 하늘로 흩어졌다
별이 빛나는 밤에*
눈에 보이는 것만 그렸다는 고흐
아무도 사가지 않았던 화가의 가난과
행방불명된 반짝이던 어느 해 가을과
흩어진 네 등지느러미까지
또 다른 별이 되는 것이라고 웅얼거리며
죽음의 냄새를 지켜보는 시간
끝까지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너의 꼿꼿한 미련
*고흐의 작품 제목.
연등
운문사 만세루에 앉아
팔각 세계로 들어온 구름 본다
연등 골조 사이사이 한지 붙이고
풀이 마르기까지
깊고 어두운 세상 향해
한 쪽 끝만 말은 연꽃잎 펼쳐둔다
위에서 부터 하나하나 꽃잎 붙이는 손가락
허공에서 섬세하다
윗줄과 아랫줄 거리 구름 자리하고
오랜 불면과 삐걱대는 그림자는
바람의 손길로 상하좌우 살핀다
잃었던 길 원 그리듯 돌면서
오래된 슬픔 균형 있게 붙이고 나면
다시 바람이 되돌아올 시간 기다린다
연못에 피어있던 연꽃 보이고
세월 흐르고 흘러도 사라진 게 아니라는 소리 듣고 있다
아주 오래전 사천왕상 손에 꽃과 창 쥐어주며
우주사방 지키는 수호신 되어라 명하였다는
그 소리에 귀 기울인다
한 호흡 잠시 멈추고
꽃잎 반대 방향으로 붙이는 초록받침
구름문 활짝 열었나니 마침내 연등불 켠다
*최향란 2008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밖엔 비. 안엔 달』. 여수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리토피아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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