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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봄호)책크리틱/한명섭|수선집 근처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다-전다형 시집 <수선집 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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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크리틱
한명섭|수선집 근처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다-전다형 시집 <수선집 근처>
전다형 시인의 첫 시집 <수선집 근처>는 시인의 등단작 제목이기도 하다. 2002년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래 써 내려온 10여년 간의 작품을 상재하고 있다. 시적 주제는 다소 무겁고 화자의 시선이 가 닿아 있는 곳도 고단한 일상을 살아가는 타자를 향해 있다. 그러나 시인의 시는 그저 바라만 보는 것에 멈추어 있지만은 않다. 타자를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타자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살려내고 있다. 보잘 것 없는 존재에게 이야기를 부여하는 부지런함과 살뜰함을 보여준다. 시인이 시집 전체에서 보여주는 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적어내는 작업은 유의미하다.
강상중은 근작 <살아야 하는 이유>(강상중, 사계절, 2012)에서 “우리의 일상 세계를 압도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은 자유경쟁의 규칙에 따라 우승열패가 생기는 것이 당연하고 강자·적자適者가 번영을 누리고 약자·부적응자가 쓰러지는 것에는 일정하게 정당성이 있다는 행복의 변신론적인 사고가 지배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경쟁에서 밀려났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지배하는 사회는 결코 행복한 사회라고 보기는 어렵다. 죽음이나 불행, 슬픔이나 고통, 비참한 사건에 놓인 누군가가 어떤 이유에서든 그런 불행을 겪을만하니까 견뎌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누구나 그런 사건의 주인공이 될 수 있으며 그래서 더욱 그런 고통으로 가득 찬 상태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고 똑바로 쳐다보아야 할 것이다.
재활용 센터에 갔다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고물 전자제품들이
푸석한 얼굴로 나앉아 있었다
치매를 앓는 노인의 기억을 되찾아 주듯
잃어버린 길 한복판에서 주파수를 맞추었다
녹슨 나사를 풀고 심장을 덮은 커버를 벗겨 내었다
두껍게 앉은 슬픔을 걷어내고
희미한 추억을 더듬어 나갔다
세상의 눈과 귀를 끌어당겼던 가슴은 싸늘히 식어 있었다
촘촘히 박힌 사랑의 회로는 멈추어 서 있고
풍을 맞은 선풍기와 눈을 잃은 사진기가
서로의 상처를 보여 주었다
굳은살 박힌 손길이 어둠 속에 끊긴 길을
이으며 30촉 알전구 스위치를 올리고 있었다
작업복 무릎에 앉은 납똥을 문지르며
고지서에 등이 휜 이 씨는 지는 해를 잡아당기지만
어둠이 가게의 문을 끌어내렸다
공치고 빈손으로 오르는 산동네 44번지
집 밖까지 마중 나온 아기별이 눈물을 글썽이며
겨울 문밖에서 서성이었다
복개천 난관에 허리를 기댄 자전거가 중심을 잃어
등뼈가 부서진 채 가게 구석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청진기를 든 의사처럼 나사를 조이고 풀면서
연신 땀을 훔쳤다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으며
가슴에 품은 꿈도 함께 풀고 조이기를 반복하면서
한순간 나가버리는 퓨즈를 수없이 갈아 끼웠다
전원스위치를 넣자 화면 가득 망가진 얼굴들이 모여들고
멈추어 섰던 세상의 길들이 달려왔다
―「이식」 전문
재용센터에는 외관이 반짝반짝 빛이 나서 사람들의 손길을 받았던 시기를 모두 보내고 빛이 바랜 고물들이 모여 있다. 재활용센터의 주인인 이 씨는 자신이 고치는 고물들처럼 등이 휘어 있지만 고물 전자제품을 뜯고 생명을 불어 넣어주며, 한편으로는 지는 해를 잡아당기며까지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며 열심히 살고 있다.
쓸모를 다 했다고 여겨져 버려졌지만, 다시 조이고 풀기를 반복하며 만져주는 이 씨의 손을 거치고 새로운 퓨즈로 갈아 끼운 후 다시 되살아난 TV 속에는 멈추어 섰던 세상의 길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한순간 나가버리는 퓨즈”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갈아 끼우며 다시 살아나게 하려는 노력이 있은 후에 TV는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다.
행복은 행복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노력하고 추구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붙잡을 수도 없는 좋은 미래를 추구하느라 힘을 빼는 것 보다 지금 그대로의 자신으로도 괜찮다는 것, 지금이 괴로워 견딜 수 없어도, 시시한 인생이라고 생각되어도, 마침내 인생이 끝나는 1초 전까지 좋은 인생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특별히 의미있고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없는 별 볼일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해도 지금 있는 거기에 그대로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담담하게 살아가다 보면 나중에 돌아보았을 때는 저절로 충분히 행복한 인생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재활용센터에 버려져 있는 TV도 이식을 거쳐 다시 생명을 얻어 얼마든지 다시 자신의 몫을 할 수 있는데 하물며 인간의 경우라면 용도폐기란 있을 수 없으며 존재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가 충분하다.
시인은 생명을 다 하고 버려진 TV와 그 TV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는 이 씨의 모습을 시 속에 담음으로써 ‘화면 가득 망가진 얼굴’이 모여 들었던 것처럼 삶에 대한 희망과 의지 없이 살아가고 있는 인생들의 가슴에 30촉 알전구를 하나 밝혀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버려진 TV도 재활의 과정을 거쳐 다시 살아났듯이 노인들과 같이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 존재들의 ‘존엄’이라는 것이 의식되는 사회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 때문인지 어느 정도 사회적인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라면 자서전을 하나 쯤 남기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정작 자서전이 필요한 건 그런 사람들이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인생이 시시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하나 찾아 주는 건 어떨까? 이야기를 새롭게 만들어 준다기보다는 어떤 이의 인생에서 그 혹은 그녀의 이야기를 하나라도 발굴해서 기록해주는 과정은 유의미한 결과가 있을 것만 같다. 수필이나 소설과 같은 서사 장르가 그 역할을 하기에 좀 더 수월하긴 하겠지만 시를 통해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시가 가진 장르적 특성에 긴 서사를 부여하기는 힘들지만 시집 <수선집 근처>의 시편들에서는 보잘것없고 상처받은 존재들에게 그들만의 이야기를 선물한다. 이는 등단작인 「수선집 근처」에서 의수족 수선공의 이야기를 살려내는 솜씨를 통해 이미 확인된 바이다.
언덕배기 아래로 쏜살같이 내달리다 우체국 오른팔이 살짝 내려놓은 우체통 앞에서 연애편지가 끊기다 싱싱한 종아리가 또각또각 젊음을 찍어놓은 대학 정문에서 철든 젊음이 꺾이다 체납 통지서 연일 독촉장에 시달리는 세무서 앞에서 지갑이 꺾이다 당당한 이름 석 자 등기소 지나다 등기필증이 꺾이다 코를 훔쳐가는 제과점 앞에서 허기가 꺾이다 동그라미 빵빵 하염없이 그리는 손목이 은행 창구 앞에서 통장 잔고가 꺾이다 평생 뼈를 묻는 직장에서 실직 가장인 그의 목이 푹 꺾이다
꺾인 것들에는 햇살에 베인 흔적이 뚜렷하다
속이 까맣게 여물어가는 해바라기가 목을 꺾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가 고개를 꺾다 낭창낭창한 사과나무 가지가 푹 고개를 숙이다 키 큰 수수가 고개를 다소곳이 아래로 숙이다
스스로 목을 꺾는 것들에는 그늘이 없다
―「차이」 전문
시인은 시에서 ‘그늘’을 자주 언급한다. 그만큼 그늘에 시선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결과 “나무만 그늘을 만드는 건 아니다(그늘에 대하여)”,“평생을 팔아도 남은 질긴 그늘, 아름다운 유산(그늘을 팔다)”,“스스로 목을 꺾는 것들에는 그늘이 없다(차이)”등으로 그늘의 다양한 차이를 변별해낸다.
그늘이 없는 것들은 어떤 대상에 좌절해서 목을 꺾지 않는다. 햇살에 베여 꺾여 버린 것들도 담고 있는 사연에 따라 똑같지 않고 차이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도 이런 차이를 모두 “꺾인 것”으로 수렴해 버린 시인의 태도는 담대하다. 직장에서 해고되어 나오는 실직가장의 꺾인 목이 빵냄새에 꺾인 허기와 같은 그늘이라고 볼 수 있는 시선에는 작은 그늘이나 큰 그늘이나 그늘이 주는 무게를 느끼는 당사자에게는 다 똑같이 힘겹다는 연민이 배어있다. 아픔의 크기는 작건 크건 그대로 아픈 것임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의 마음에 의해 꺾인 것이냐 타자에 의해 꺾인 것이냐에 따라서는 그늘이 생기고 안 생기고의 차이가 생긴다고 말한다. 타자에 의해 꺾인 것은 모두 하나같이 베인 듯이 고통스럽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작든 크든 상처를 주는 행위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시집의 제목인 「수선집 근처」처럼 시인은 이미 중심에서 벗어난 주변부를 살피며 그 곳에 있는 타자들의 구체적인 삶에 시선을 보내고 그것을 담아내고 있다. 힘든 삶을 담은 시는 그럼에도 따뜻하고 무겁지가 않다. 하루하루가 팍팍해져만 가서인가 앞으로 시인의 다음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한명섭∙소설가. 2009년 계간 ≪서시≫로 등단, 현재 가천대, 동덕여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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