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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여름)오늘의 시인/이경림/대표시/신작시/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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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림
대표시
푸른 호랑이 외 4편
설렁탕과 곰탕 사이에는 푸른 호랑이 한 마리가 산다
어떤 생의 무릎과 혓바닥 사이에는
어떤 생의 머리뼈와 어떤 생의 허벅지 살 사이에는
형언할 수 없이 슬픈 눈과 사나운 관능을 가진
푸른 호랑이 한 마리가 산다
저 높은 굴뚝을 천천히 빠져나가는 푸른 연기와
사라지는 뼈
사라지는 살들 사이에는
낡은 의자에 앉아 곰탕을 먹는 노신사와
그 앞에서 설렁탕을 먹는 시든 달리아 같은 아내 사이에는
그것들의 배경인 더러운 유리창과
산발을 하고 흔들리는 수양버들 사이에는
날개를 빳빳이 펴고 태양 속으로 질주하는 새
반원을 그리며 느리게 불려가는 바람 사이에는, 그래!
미친 듯 포효하는
푸른 호랑이 한 마리가 산다
대표시
빈병
집으로 가는 길, 담 모퉁이에 기대어 있었다.
녹색을 입고 있었지만 빈 속이 다 보였다
골 뚜껑을 훤히 열어 놓고 있었다
흩날리는 눈발 속이었다
몇몇의 눈발들이 기적처럼
그의 속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그는 너무 깊어진 생각 때문에 몸이 무거운 것 같기도 했다
속엣것을 다 쏟아내 너무 허한 것 같기도 했다
아니 그저 아득히 저 너머로 휘파람을 불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때!
예정된 무슨 운행運行처럼
나의 두 발이 교차하며 그의 앞을 지나왔다
마치, 그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순간들을 거슬러와
그토록 빈병이 되어 서 있는 일처럼
대표시
달밤
―푸른 호랑이․4
수천 그루 나무들이 산 하나를 떠메고 가는 장관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정처를 알 길 없는 나는
그 소란이 그저 고요이거니 하였습니다
그때 우리는 언제 한 번 핀 적도 없는 벚꽃 아래서 길을 잃거나
산수유들의 노란 허구렁에 눈을 주거나
그 밑에 잠시 똬리 틀고 잠든 초록비단뱀 같은 마음 하나에 끄달리느라
방금 전 그 산이 수만리 저쪽으로 막 달아나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 자리, 처음 보는 나무들이
처음 보는 산 하나를 떠메고 와서는
어딘가로 또 내달리고 있었습니다
아아, 그 미친 속도를 무어라 쓸 길이 없어
나는 속절없이 또 고요라 쓰고 말았습니다
대표시
고고학적 아침
A가, 내가 마른 조기의 비늘을 긁어내고 있을 때 아침이 왔어
하고 말했다
H는 닭고기를 막 끓는 물에 넣으려는데 아침이 왔어
하고 말했다
G는 엄청나게 큰 냄비를 간신히 들어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고 나니 비로소 아침이 왔어
하고 말했다
S는 아아 믿을 수 없을 만큼 격렬했던 그 섹스가 있기 전에 먼저 아침이 와 있었어
하고 말했다
M은 수평선이 그렇게 상투적으로 그어진 후에야 아침이 왔어
하고 말했다
K는 다가올 석기 시대의 끝쯤, 한 동굴에서 미친 돌의 아이가 태어난 직후에 아침이 왔어
하고 말했다
E는 내일이라고 부르는 오늘 식탁에 세 번째 숟가락을 놓기 전에 아침이 왔어
하고 말했다 어쨌든!
아침이 왔다 창은 노래하고 침대는 하품한다
A는 아침이 익는 동안 소파의 방향을 바꾸어놓고
B는 설익은 아침을 으적거리며 TV를 보고
H는 아침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붉은 벽돌 담장을 재빨리 집어삼키고
K는 끓는 닭다리를 끓는 닭다리가 되게 둔 채 신문을 보고
E는 신문 속에서 끓는 닭다리 사이로 자욱한 아침을 본다
그때 F가 아침을 아침이라고 믿는 자는 얼간이
라고 말했다
G는 뭐든 믿을 수 있는 건 얼간이가 아니야
라고 말했다
뭐든 믿을 수 없는 것도 얼간이가 아니야
라고 말했다
아침이 아침을 넘어 노랗게 밀어닥치는 속에서 아침을 짓는 일은 쓸쓸하여라
A가 노래했다
아침을 먹고 아침을 입고 아침을 신고 아침 속으로 걸어가는 아침의 등은 쓸쓸하여라
B가 노래했다
번개같이 달아나는 아침의 뒤꿈치를 보며 걸레를 빠는 일은 쓸쓸하여라
H가 노래할 때, 유리 밖으로 신석시의 구석기 청동기
쥐라기……의 아침들이 한꺼번에 지나가고 있었다
AHDESMK……들의 단 한 켤레의 군화 소리로 자자한 아침이
기다랗게
대표시
살구나무 장롱
아버지, 살구씨 하나를 뜰에 심었는데
왜 귀를 쫑긋 세우고 두 장의 떡잎이 나오나요
그 속에 무슨 손이 녹두 같은 싹 터트려
허공으로, 허공으로 치솟게 하나요
햇살 속으로 이슬 속으로 소나기 속으로 막 달아나게
하나요
문득 비 그친 후 노란 김 피워 올리며
아기 살구 몇 매달게 하나요
떡잎에서 살구까지 몇 리나 되는지 나는 몰라요
막 달아남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나는 몰라요
거기 가면 온전히 살구나무인 살구나무가 있을 것도 같아
막 달아나는 저 살구나무의 속도를 흉내도 내보지만
끝내 그건 살구나무 아니면 아무도 모르는 살구나무
장롱 속의 일
폭양이 황금빛 살구들을 떼로 몰고 오는 저녁이예요,
아버지
장지문을 열면 신내를 확 풍기며 달려드는
미친년 같은 살구나무 한 그루가
꼭 살구나무만 한 그림자에 싸여 흔들리는데요
자꾸 왜냐고 물으면
그 또한 꼭 살구씨 한 알만 한
장롱 속의 일 아니겠느냐고
신작시
노래 외 4편
토마토야 토마토야 뭐하니?
토마토 한다
무슨 토마토?
펄쩍 뛰다 자빠진 토마-토
살았니 죽었니
몰라
신작시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수보리야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삼천 대천 세계를 부수어 가는 먼지를 만들었다면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이 가는 먼지가 얼마나 많겠느냐 심히 많사옵니다. 세존이시여 왜 그런가 하오면 만약 이 가는 먼지가 실제로 있는 본체적 존재라면 부처께서는 곧 저 가는 먼지라 말씀하시지 않으셨을 것이기 때문이옵니다. 그것은 또 무엇 때문인가 하오면 부처께서 말씀하시는 가는 먼지는 곧 가는 먼지가 아니오며 그 이름이 가는 먼지일 따름이옵니다.’―금강경
이 무한 천공 한 그루 시퍼런 토마토나무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린 저 붉은 것들을 토마토라 불러보자 누구는 그것을 야채라 하고 누구는 과일이라 하고 또 누구는 사실 그 어느 쪽도 아니라 한다 하자. 아무튼 그 눈부신 푸른 가지에서 생겨나, 차츰 자라고 시나브로 병들고 진물 흘리고 비린내 풍기며 마침내 다시 천공 속으로 곤두박질친다 하자 그러면 천지에 토마토는 자취도 없어지고? 아니다. 다시 어떤 터럭 하나가 한 떡잎을 만들고 두 떡잎을 만들고 세 떡잎을 만들고 저 팔만 사천의 떡잎을 만들어 한 순간 죽기 살기로 동그란 한 유구한 토마토가 되고야 만다 하자. 그리고 천지의 길들은 토마토로 뒤덮이고 토마토로 흘러가고 토마토로 휘돌고 토마토로 쏟아지고 토마토로 소용돌이치다가 이윽고 지름이 구만리장천이요 넓이는 광대무변인 한 토마토가 된다 하자. 무한천공인 그 토마토는 사실 한 터럭보다 작은 토마토와 같다 하자. 안도 없고 밖도 없고 두께도 없고 무게도 없어 결국 그 둘이 하나라 하자. 그러면!
어째서 저 광대무변의 한 토마토와 터럭보다 작은 토마토가 같은 것이냐 다른 것이냐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다만 그 이름이 토마토일 뿐인 저
수천수만 토마토들의 물음은 끝이 없고 다만 그 이름이 물음일 뿐이 ?들의 ?은 끝이 없구나
이 토마토에 또 한 저녁이 지나가고 있다
죽은 어미의 눈빛 같은 저녁이 산등성이 위에 물끄러미 떠 있구나
신작시
토마토라니?
분명 문경 왕건 촬영장 부근 무슨 조류 사육장 앞이었다
정오였고 공작 한 마리가 막 꼬리를 펼치는 중이었다
오색찬란한 꼬리가 부챗살처럼 한 칸씩 늘어나는 중이었다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빛깔의 꼬리를 앞뒤로 천천히 끄덕이며
거만하게 鳥舍를 도는 중이었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현란한 孔雀의 工作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 때 나는 분명 鳥舍 밖에서 검은 가방을 들고 쪼그려 앉아 그의 행각을 보는 행인이었다
물끄럼한 공작의 눈길을 따라가다가 왕건 촬영장이 저녁으로 조금씩 기울어지는 것을
보고 있는 행인이었다
좀 전까지 불볕이 있던 촬영장 지붕에 지나가던 구름이 팔랑,
잿빛 스카프 한 장을 그림자로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야만 행인이었다
펑퍼짐한 엉덩이의 중늙은이 둘이 저녁으로 가는 다리 위에 놓여 있는 것을 본 행인이었다
헌데 그 모두가 꿈이라니?
토마토라니?
신작시
유쾌한 발상
3시에 유쾌한 발상에서 만나자
백운역에서 서른두 번째 정류장에서 내려라
계단을 올라 스텐리스 기둥에 바코드를 찍고 가로쇠 몽둥이를 열어라
왼쪽으로 꺾어 지하상가를 지나라
고 당신은 말했습니까?
오른쪽으로 가면 엄청나게 큰 지하서점이 있다
그리로 가면 하염없는 사거리로 가는 출구가 나오므로 반드시 왼쪽으로 가야한다
고 했습니까? 왼쪽으로 꺾으면 온갖 상점들이 줄지어 있는 지하상가가 있다
그 끝에 12번 출구가 있다
고 했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만약 왼쪽이 없다면 어떻게 하지요?
왼쪽이 <공사 중>이라면? 왼쪽의 입구에 붉은 페인트로
<11, 12번 출구는 폐쇄 되었습니다>
라고 씌어진 문구를 등짝에 짊어진 철벽이 서 있다면?
사실 오늘, 왼쪽은 없습니다. 왼쪽은 철벽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왼쪽의 속에 있던 12번 출구도 물론 사라졌지요
당신은 벌써 도착했다구요?
한적한 젊음의 거리를 지나 뒤죽박죽 만두집에서 왼쪽으로 돌아
유쾌한 발상으로 오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했다구요?
나 말입니까?
지금 사라진 왼쪽의 자리에 서 있는 철벽 앞에 선 채
폐쇄의 속이 된 지하상가를 지나가고 있지요
옷가게에서 검은 치마를 만지작거리는 여인을 지나
우두커니 행인들을 바라보는 모자가게를 지나
장미 이파리를 손질하는 꽃가게 주인을 지나
그 사이, 숨은 12번 출구 쪽으로 급선회하는 중이지요
과연 12번 출구는 폐쇄되었군요
출구대신 ‘폐쇄’가 형상으로 서 있군요
‘12번 출구로 가실 분은 9번 출구로 나가세요’
라는 안내문이 철벽 귀퉁이에 붙어 있군요
이것이 形狀들의 친절입니까?
그런데 9번으로는 어떻게 가지요?
곧바로 걸어 가야 하나요?
저기 화장실 입구에 누운 노숙처럼 누운 채 가야 하나요
오줌 마려운 사람처럼 동동거리며 가야 하나요?
쥐 죽은 듯 가야 하나요?
휘파람을 불며 가야 하나요?
펄쩍, 뛰어서 가야 하나요?
새처럼 날아서 가야 하나요
과연 9번은 왼쪽에 있나요? 오른쪽에 있나요?
분명 왼쪽이라 배웠는데 몸 한 번 돌리니 오른쪽이었습니다
아, 벌써, 왼쪽은 네 시를 지나고 있다구요?
미안합니다, 지하에는 시계가 없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4시는 왼쪽입니까 오른쪽입니까?
신작시
토마토에서․2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살아보고 싶었다구?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때 되면 밥 먹고 때 되면 잠자고 때 되면 연애하고 때 되면 섹스하고
성에 안차면 사정없이 귀썀을 올려붙이고 진하게 쌍욕도 퍼부으며 핫,
핫 펜티 같은 토마토의 거리를 후끈후끈 누비고 싶었다구?
아무도 모르는 너의 뜨거운 가슴에 이마를 데이고 싶었다구?
사실 아무도 모르게 해가 뜨고 달이 지는 그곳에서
일개 토마토의 새끼인 네가?
까놓고 말하자면 사실, 톨스토이 같은 네가?
안나까레리나 같은 내가?
우연적으로 아니 필연적으로 만나 최대한
비극적으로 어른거리다가 최대한
처절하게 최후를 맞고 싶었다구?
창백한 와이셔츠 칼라 위로 보이는 너의 목젖은 너무 섹시해! 어쩌구,
벚꽃잎 같은 소리 풀풀 날리며
물색 모르고 촐랑거리는 내가 정말 좋아?
입에 발린 말 슬쩍슬쩍 흘리며
물 먹인 채찍이 등짝을 내리칠 때까지
산 듯? 죽은 듯? 흘러가고 싶었다구?
지금? 영하 18도.
지금? 독감이 창궐하는 전철 속
나? 애송이 둘이 부둥켜안고 낄낄거리는 자정의 유리 안에서 덜컹!
덜컹, 실려 가는 중.
아까부터 물끄러미 이녁을 보던 옆자리의 노파가 느닷없이
혹…… 영월에 살던 순자 아니……니?
어머, 어머, 맞구나, 어이구, 순자야 나 옆집 살던 영순이야
쭈글쭈글 말라빠진 감자 하나가 내 코앞으로 클로즈 업 되는데
영월……
영월……
그 이름 왜 그리 처연한지
나 언제 영월 산 적 있나
영월에서 생겨나 영월의 젖빨고 영월에서 초경하고 영월에서…… 처음 보는 남자와
원삼족두리 쓰고 맞절하고 한 오십년 살다 간 적 있나
곰곰 짚어 보는 것인데,
늙은 나무뿌리 같은 아니 조개 캐던 어느 생의 내 손 같기도 한 것이
슬그머니 只今의 손등을 감싸는 거라
不知不識間 소름이 돋고 영문 모를 무섬증이 일어
나도 모르게 이녁의 눈꺼풀을 꽝!
닫고는, 가없는 어느 眼球 속
明滅하는 色들을 따라가고 있었는데
시론
현상, 본질, 관념 그리고 詩
몸이 허약한 학생이 있었다. 그는 밤 11시에 잠이 들면 아침에도 꼭 11시까지 잠을 자지 않으면 건강에 문제가 생길 정도로 몸이 약했다. 부모는 학교에 그런 점에 대한 배려를 요청했고 다행히 학교는 부모의 요청을 받아들여 오전 수업을 면제해 주었다. 그는 해가 중천에 들 때까지 기숙사 방에 누워 뒹굴거리며 공상에 잠길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머리가 좋은 학생이었고 수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매일 환한 아침 햇살이 가득한 방에서 사지를 뻗고 맘껏 기지개를 폈다. 몸은 충분한 수면 뒤에 이완될 대로 이완된 상태, 밖에서는 한창 수업 중인 친구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문득, 며칠 전 수업시간에 들은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우리 시대 수학의 최대 과제는 대수학과 기하학을 어떻게 통합시키느냐 하는 문제이다. 즉 수학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숫자와 도형을 서로 연결시키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 때 파리 한 마리가 천장에서 기어가고 있었다. 명료해진 그의 의식은 자연스럽게 천장에 붙은 파리의 기하학적 위치를 대수적으로 표현할 수 없을까 하고 묻고 있었다. 순간 직관의 불꽃이 튀었다. 천장의 두 변을 x와 y축으로 삼고 각 변에서 떨어진 거리를 재면 파리의 위치를 수식으로 표현할 수 있겠구나, 하고. 말하자면 그는 좌표를 발견한 것이다!
천장에 파리가 기어간 그 기숙사는 예수회에서 운영하던 라 플레슈 중고등학교였고 몸이 약했던 그 학생은 프랑스 출신의 대 철학자 데카르트였다 그는 커서 수학의 좌표를 발견하는 것보다 훨씬 큰 일을 철학에서 이루게 된다. 중세에서 근세로 내려오는 패러다임 축의 이동을 실현한 것이다.
과거 천 년의 서구인을 지배하던 神 중심의 세계관을 마감하고 인간이성 중심의 세계관이 시작되는 계기를 만든 것이다. 그 이전의 중세인들은 천장
에 파리가 기어가는 것은 신의 의도에 의한 것이라 이해했지만 근대인들은 과학적으로 이해하려 노력한다. 신이 물러간 자리에 과학이 놓인 지금 어쩌면 우리는 데카르트의 후손이라 할 수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든 사유의 근원은 퇴계보다 데카르트에 가깝다. 서구화된 교육의 탓이다.
나는 지금 현상과 본질과 관념과 시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시인의 입장에서 볼 때, 위의 상황은 시인이 시를 만날 때의 상황과 너무나 흡사하다. 한 현상으로서의 파리와, 그것을 발견한 시인의 눈, 파리의 행적을 곰곰 따라가는 관찰적 행위, 그리고 공간(우주 혹은 空) 안에서의 파리의 자리를 더듬어내어 직관의 불꽃을 터트리는 피날레까지 거의 똑같다고 할 수 있다.
위에서 볼 때 우리가 유추해 낼 수 있는 것은 철학이나 문학이나 수학이나 그 뿌리는 현상(리얼리티)에 있다는 것이다. 존재 자체가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고 존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 또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들의 본질도 그에 대한 질문도 대답도 모두 현상 속에 있다고 생각해도 좋으리라. 날것 그대로의 현상, 인간에 의하여 해석되거나 덧씌워진 현상은 본질이 아니리라. 세계는 현상으로서 말하고 있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침묵하고 있지만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모든 현상 속에는 침묵으로서의 말이 있다. 모든 현상의 중심에는 거대한 말인 침묵이 살아 있다. 그것이 나라는 현상으로서의 실체와 세계의 거리를 없애버리고 나로 하여금 그 질서 속으로 들어가게 하고 불완전하고 미완성인 모든 존재들에 전체성이라는 훌륭한 실체를 부여하고 있다.
예를 들면 조주록에서 ‘조사가 서쪽에서 온 까닭이 무엇입니까’ 묻는 말에 조주가 ‘뜰 앞의 잣나무다’라 대답한 말처럼. 그 때 조주는 인간의 말, 즉 主客이 나눠지고 分別 속에서 생겨난 말이 아닌 자연本質의 말을 가리킨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뜰 앞의 잣나무로 서 있는 현상으로서의 말에도 사람들은 인간의 분별력으로 치장하여 해석하려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연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일까? 여기에 시의 본질이 들어 있다
생각해도 좋으리라. 그렇다, 시에는 답이 없다. 시 뿐 아니라 삼라만상에 질문을 붙인다면 그 모두 답은 없다. 읽는 사람에 따라 뉘앙스도 다르고 해석도 다르고 받아들이는 감성 또한 틀리기 때문이다. 시를 쓸 때 시인의 의도와 독자의 해석이 다르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시인을 떠난 시는 돌아오지 못할 여행길에 오르고 그 여정에서 만나는 존재들과 어떤 관계를 맺든 그건 시인이 일일이 간섭할 문제가 아니리라. 마치 인생처럼.
이 부분에서 우리가 깨달아야만 할 또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다. 위에서 보았듯 시는 시인 개인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너무 私的 감상에서 출발한 시는 먼 길을 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시의 여정은 멀고 그 도정에서 만나는 각각 다른 삶들이 지니고 있는 세계관이나 관습 또한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과 공감대가 이루어지려면 보편적 리얼리티, 혹은 상상력 속에서 생겨난 것이어야 할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질문한다. 자신은 현상만 꼼꼼히 썼는데 왜 남들은 자신의 시가 답답하다고 하느냐고. 그렇다! 그 질문 속에서 우리는 현상을 그대로 쓴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다. 그 어려움에 대해 쓴 노벨상 수상작가인 르 끄레지오의 산문 중 한 쪽을 보자.
‘나는 땅의 그 지점에서 거대한 세계를 보았다. 나의 발코니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나는 내가 마치 그것의 중심, 그것의 의미이기나 한 것처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무한하게 보였으므로 나는 그 사물들의 개념을, 물질에서 벗어난, 반드시 인간적인 것만은 아닌 개념을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잘못 생각했다. 이제야 나는 결코 내 육체와 인간적 영혼을 떠나본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심지어 나는 이 세기를, 이 나라를 떠나 본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나에게서 밖으로 나가려하고 세계에 나를 분산시키려 하면 할수록 나는 더욱 더 내 개인과 내 습관의 이중적인 감옥에 스스로를 감금하게 되는 것이었다. 내가 게의 눈으로
보려 할 때도 그것은 나의 눈으로 보는 것이었다. 내가 참나무의 섬유질로 혹은 유칼리 나무의 잎사귀로 느끼려 할 때에도 그것은 여전히 나의 신경과 내 세포로 느끼는 것이었다. 내가 광적인 공간 속에 가장 멀리 있다고 생각해 볼 때에도 나는 여기 혼자, 내 이성에 얽매어 허구가 배제된 채 있는 것이었다. 여행하면서도 나는 제자리에 있었고 상상하면서도 나는 끊임없이 나 자신을 창조하는 일 뿐이었다. 다른 언어로 말하고 다른 기호로 쓰면서도 내가 주워섬기고 있는 것은 나의 말, 나의 말, 항상 나의 말이었다’
대 문호의 입에서 이런 장탄식이 나오게 할 만큼 현상을 그대로 쓴다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자신을 다 내려놓고 본질에 가깝게 섰을 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아니 예술가는 일생 자신을 내려 놓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는 시를 쓰는 한, 현상들이 온 몸으로 보여주는 그 말을 듣고 꼼꼼히 받아 적어야 하는 책무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삼차원이며 사차원이기도 한 모든 존재들 속에는 이녁과 저녁, 이승과 저승이 한꺼번에 들어 있다. 그것이 세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정리 하자면 현상이 바로 詩라는 말과 같으리라. 그것들 속에는 시인이 말하지 않아도 자신이 말하려 하는 메타포가 적나라하게 들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녹색을 입고 있었지만 빈속이 다 보였다
골 뚜껑을 훤히 열어놓고 있었다
흩날리는 눈발 속이었다
몇몇의 눈발들이 기적처럼
그의 속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그는 너무 깊어진 생각 때문에 몸이 무거운 것 같기도 했다
속엣 것을 다 쏟아내 너무 허전한 것 같기도 했다
아니 그저 아득히 저 너머로 휘파람을 불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때!
예정된 무슨 운행運行처럼
나의 두 발이 교차하며 그의 앞을 지나왔다
마치, 그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순간들을 거슬러 와
그토록 빈 병이 되어 서 있는 일 처럼
―졸시 「빈병」
위의 시 속에 나타난 현상은 간단하다.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길모퉁이에서 발견한 빈 소주병을 본 그대로 쓴 시이다. 그러나 독자가 과연 이 시를 보고 소주병만 발견할 것인가? 아마도 대부분의 독자들은 생을 다 건너와 허허로운 속을 다 보이며 서 있는 한 인간을 발견하게 되리라. ‘그 때 예정된 무슨 운행처럼 나의 두 발이 교차하며 그 앞을 지나왔다’ 는 부분의 이르면 소주병과 시인은 같은 우주적 공간 아래 같은 길을 거슬러 가는 동질의 존재가 되어 있다.
모든 현상 즉 상황은 실제 그대로 메타포이다. 시인이 거기에 더 무엇을 첨부하며 설명할 것이 있겠는가. 현상이 본질이며 관념이며 시라는 것이 가슴 저리게 와 닿을 때 뜰 앞의 잣나무가 더도 덜도 아니게 뜰 앞의 잣나무로 보일 때 시인은 비로소 시인이 되리라. 그런 순간을 기다리며 시인은 순간순간 천근만근의 욕망을 뜯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비극적 존재인지도 모른다. 참고:철학과 불교의 만남(김홍근) 침묵(르 끌레지오)
이경림∙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1989년 ≪문학과비평≫으로 등단했다. 시집 토씨찾기, 그 곳에도 사거리는 있다, 시절하나 온다, 잡아먹자, 상자들, 내 몸 속에 푸른 호랑이가 있다가 있으며, 2011 한국번역원 선정 영미권 번역시집 A new season approaching, Devour it이 있고, 산문시집 나만 아는 정원이 있다, 산문집 언제부턴가 우는 것을 잊어버렸다 등이 있다. 제6회 지리산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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