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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여름)집중조명해설/권경아/시간의 흔적―임재춘의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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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권경아|시간의 흔적―임재춘의 작품세계
임재춘 시들은 오래된 시간과 공간을 예리한 감각으로 포착하여 현재의 시간과 공간에 담아내는 힘을 지녔다. 첫 시집 오래된 소금밭에서 보여주었던 오래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천착은 이번 신작시들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서석지」, 「하투사스에서」, 「에페스의 공중변소」 등에서 옛 유적지들을 돌아보며 느낀 감회와 소감을 차분한 어조로 형상화하던 방식은 이번 신작시 「씨알크 언덕」에서도 섬세하게 그려지고 있다. 임재춘 시세계의 특징은 오래된 시공간과 현재의 시공간 사이에서 인간이 경험하게 되는 낯설고 친근한 감각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칸칸이 갇힌 바다에게
햇빛도 이제 말 걸지 않는다
바큇자국 곰삭은 지 오래
소금을 나르던 손수레도
녹슨 다리를 드러낸 채
곰소 포구로 가는 길을 거꾸로 짚고 서 있다
소금기 전 널빤지 벽에
적막감이 기대선 오후
그늘에 말아 먹던 흰 소금밥
무짠지 한 종지에
한구석에 엎어진
덜그럭거리는 양은솔
빈 발길에 차이고
언제 쓰일지 모르는 소금 창고 하나
내 발길 따라온다
때때로 흘러넘쳐 살갗에 말라붙는
내 몸속 오래된 소금밭
고무래로
하얀 낮달을 건진다
― 「소금 창고」 전문(오래된 소금밭)
이 시에서는 “언제 쓰일지 모르는” 오래된 소금 창고가 그려진다. 바큇자국도 곰삭은 지 오래고 소금을 나르던 손수레도 녹슨 다리를 드러내고 있다. 한구석에 엎어진 양은솥은 빈 발길에 차여 덜그럭거리고, 소금기에 전 널빤지 벽에는 적막감만이 기대서 있다. 지금은 쓰이지 않는 오래된 소금 창고에는 적막과 고요만이 감돌고 있다. 어느 누구 관심을 두지 않는 쓸쓸한 소금 창고. “칸칸이 갇힌 바다에게 햇빛도 이제 말 걸지 않는” 잊혀진지 오래된 소금 창고. 이 소금 창고가 시인의 발길을 따라온다. 시인의 몸속에 자리한 “오래된 소금밭”에서 “하얀 낮달”같은 소금이 떠오른다. 그 오래된 소금 창고가 따라왔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으나 시인의 몸에서 생겨나는 하얀 소금은 그 소금 창고에서 따라온 것이 아닐 것이다. 그 하얀 소금은 시인의 “몸속 오래된 소금밭”에서 생겨난 것. 시인의 오래된 외로움과 쓸쓸함이 하얀 소금이 되어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시에서 그려진 적막과 고요만이 감도는 오래된 소금 창고는 곧 시인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층으로 된 서른세 개의 다리, 위층 난간에 찻집을 만들어놓고 강물을 내려다보며 여유를 즐겼다는 외벽은 아라베스크무늬로 장식되어있다 회벽에 그려진 갈색, 벽돌색 무늬의 시오세 폴 다리
우리는 거기에 꼭 앉으려했다, 노을을 보려했지만 물에 비치는 그림자는 없었다. 아래층 다리 밑에서 노래를 계속 부르는 한 남자, 다리 안쪽으로 돌아서있어 얼굴은 볼 수 없었다, 누군가 대취한 디오니소스라 불렀다
강물은 어디에도 없었다 물 한 방울 남아있지 않은 맨바닥이었다, 최근 몇 년 사이 사막으로 스며들어가버렸다고도 하고 위쪽에 댐이 만들어졌다는 소문도 돌았다
물에 비치던 아름다운 풍경은 사라지고 미친 듯, 한 남자의 울부짖는 노래만 들렸다
이제 유적이 되어버린, 물이 돌아올 기약 없는, 갈라진 노래만 파고드는 가슴속도 말라갔다
― 「노래하는 다리」 전문
예전에는 위층 난간에 찻집이 있어 강물을 내려다보며 여유를 즐겼다는 시오세 폴 다리. 그러나 예전의 멋과 낭만은 이제는 찾아볼 수 없다. 물에 비치는 노을을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다. 강물 또한 말라버려 맨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강물이 사막으로 스며들어가버렸다고도 하고 댐이 만들어져서라고도 하는데 정확한 이유를 아는 사람은 없다. 예전 물에 비치던 아름다운 풍경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추억은 유적이 되어 사람들 사이에 남겨졌다는 것이다. 이 시에서는 과거의 화려함과 현재의 쓸쓸함이 교차되어 그려짐으로써 현재의 쓸쓸함이 더 크게 그려지고 있다. 다리 아래에서 미친 듯 울부짖는 한 남자는 그 쓸쓸함을 더해준다. 이 시가 과거의 화려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현재의 쓸쓸함을 인식하고 있다면 다음의 시는 오래전 시간의 일상을 차분하게 추적하고 있다.
오늘 내가 밟고 있는 언덕 밑에
또 누군가
깔려있는지도 모른다
오래돼 용도도 알 수 없는
꽉 막힌 두꺼운 벽들,
안에 빈 공간도 없고, 창문도 없이
계단처럼 올라갈 수 있을 뿐
신에게 제사를 지낸 뒤
물을 흘려보냈을 좁은 도랑들이
죽 이어져 있다
만지면 부스러질 듯 뽀얀 남자의 뼈,
칠천 년 전, 그들의 집이었던
흙 지붕을 밟고 서서
히잡을 쓰고 있는 나는
저 아랫집에 살았었는지도 모른다
열 살 정도 여자아이
유목민을 따라
멀리 옮겨왔을지도 모른다
농사꾼 쟁기에 우연히 발견된 그
어디론가 떠나려던 야반도주를
지켜주려 이 언덕은
요즘 무너지는 것을 멈췄다
― 「씨알크 언덕」 전문
7천 년 전 인간이 살았다는 곳에 시인은 서 있다. 너무나 오래되어 용도도 알 수 없는 두꺼운 벽들 안에는 공간도 없고 창문도 없이 그저 계단만이 이어진. BC 5000년 경의 거주지로 발견된 씨알크는 진흙성으로 이루어진 인간들의 삶터였다고 한다. 30세 전후의 남자, 10세 정도의 여자아이의 유골이 함께 발견되었다. 시인은 이들의 하얀 뼈를 보며 몇 천년 전의 생활을 생각해본다. 조금씩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가 인간들에 의해 발견되어 보존된 후부터는 무너지는 것이 멈춘 채이다. 시인이 그리고 있는 것은 현재의 시간으로 정지시킨 과거의 시간이다. 몇 천 년 전의 시간들을 그대로 묶어두려는 그 현장, 시인은 시간의 흐름 그 긴 여정 앞에 서 있는 것이다.
토요일 오후
광화문 세종대왕 앞에서
소리의 무리가 들썩거리네
목청이 쉰 소, 주먹을 불끈 쥔 돼지
멀리서 달려와 모자를 흔드는 말도 있네
광장은 넓은 몸을 다 내주고
잡혀가던 시절보다, 소리치는 시절이
필요하다고요, 무작정
상경해 희생자 구호 붙이고
최저단가를 올려줘, 죽는 것도 힘들지만
죽을 놈의 선택,
마스크로 입을 막고 어깨동무를 하고
발을 구르는 광화문광장, 젠~장
옆 빌딩에선 갑종甲種 인간의 웨딩마치
평화로움이 잘려버린
헐벗은 가로수, 겨울을 건너는 몸통들
구호를 앞세우고
가면들은 계속 몰려올 거야
세종대왕의 놀란 가슴
한숨 돌리는 월요일 아침
메아리로 남은 소지素地들
― 「휴일광장」 전문
이 시에서 과거는 현재를 관조하는 시선으로 그려지고 있다. 토요일 광화문 광장은 시위하는 무리들로 소란하다. 저마다의 삶의 이유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목청이 쉰 소”에 “주먹을 불끈 쥔 돼지”, 그리고 “멀리서 달려와 모자를 흔드는 말”까지 “마스크로 입을 막고” 어깨동무하고 발을 구르며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 “구호를 앞세우고 가면들은 계속 몰려”오고 있다. 최저단가를 올려달라는 죽는 것도 힘들다는 그들의 목청이 광화문 광장에 울려퍼지고 있다. 그러나 우두머리 인간들은 그들의 목소리에 관심이 없다. “옆 빌딩에선 우두머리 인간의 웨딩마치”만이 있을 뿐. 그들의 절규와는 상관없이 우두머리 인간은 그들의 삶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단절, 소통불능에 대해 시인은 말이 없다. 그저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세종대왕의 시선만을 등장시킬 뿐이다. 현재의 시간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과거의 시간이 관조하고 있는 순간을 포착하는 시인의 시각이 예리하다. 조용히 지켜보는 시선 앞에서 혼란스러운 우리의 삶이 왠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주말의 소란이 거치고 나면 다시 일상의 모습이 펼쳐진다. 모든 사연들을 숨기고 다시 시작되는 평범한 월요일 아침. 평화로움을 가장한 인간들의 삶이 다시 계속되는 것이다. 주말 광장에서 벌어졌던 그 모든 일들은 메아리로 남긴 채 그렇게 우리의 삶은 이어진다는 것. 그 쓸쓸함을 시인은 직접 말하지 않는다. 그저 시선만을 포착하여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 관조의 시선이 그 어떤 절규보다 더 절실하다는 것은 물론이다.
선잠이 버석거리는
싸리비를 세워둔 산장 마당
여문 질경이 꽃들이 테두리 두른
뒤뜰 울타리 사이로 슬쩍 나가면
다비식 터가 젖어 있는
월정사 뒤 숲길,
간밤 세찬 비가 만든
새 도랑 물소리에
젖은 풀잎들 시린 몸을 터는데
제집을 던져버린 민달팽이 몇 마리
이승의 길을 건넌다
들키지 않으려
살금살금 디디는
비어버린 발자국에
물봉선 오솔길이
새벽 하늘빛을 움푹 채워놓는다
이 세상을 쓸다 떠난 이들의
벌거벗은 발바국을
미리 본 듯
민달팽이의 저 느린 발걸음!
― 「발자국」 전문(오래된 소금밭)
현재와 과거의 시간 사이를 오가는 시인의 시선이 잘 그려진 시가 「발자국」이다. 오래된 시공간과 현재의 시공간 사이에서 시인은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과거에서 현재의 삶을 읽기도 하고 현재에서 과거의 삶을 읽어오기도 한다. 마치 “제집을 던져버린 민달팽이 몇 마리”가 “이승의 길”을 건너가는 것처럼. 이승의 길을 건너는 민달팽이는 또한 “이 세상을 쓸다 떠난 이들의 벌거벗은 발자국”을 따라가고 있다. 이승의 길과 저승의 길 사이를 느릿느릿 기어가는 민달팽이의 발자국은 시인이 남기는 시편들과 닮아있다. 임재춘 시인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그 시공간의 흔적들을 언어로 남기고 있는 것이다. 그의 발자국은 과거와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며 또한 인간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임재춘 시인의 흔적, 우리는 그것을 시라 부른다.
권경아∙문학평론가. 2003년 ≪시와 세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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