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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여름)신작특선/김완하/꽃 외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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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하
꽃 외 5편
이 세상 언어들이여
이름이 되려거든
꽃이 되어라
한 번 호명하면 천 년의 언어
한 번 피어 천 년을 가는 향기
이름만 적어도 시가 되고
이름만 불러도 노래가 되리
봄의 상징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노래하고
꽃들은 제 이름의 표정으로 피어나네
언어와 사물이 일체화되는
일물일어의 완벽한 실현
꽃은 이름을 낳고 그 이름이
꽃에 완벽히 육화될 때
이름은 다시
꽃을 낳을지니,
이름은 가고 꽃만 남는
완벽한 언어의 구체화
시심과 시상이 절로 일어
봄 속에 잉태되는 위대한 시
자연과 언어와 시인이 일체가 되어
꽃은 제 이름을 온몸으로 쓰고 있다
사이꽃
꽃과 꽃 사이에서
피어나는 꽃
꽃과 꽃 사이에서
새로이 몸을 내는 꽃
꽃과 꽃 사이에서 피어난
꽃, 사이에서 피어나는 꽃
꽃과 꽃 사이사이에서 피어난
꽃, 사이사이사이에서 피어나는 꽃
그대와 나 사이 저 꽃
새와 꽃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일생의 노래를 완성하고
꽃들은 제 이름을 온몸으로 쓰면서
일생의 시를 완성하리
순간
언어가 하나의 감옥 찢고
탄생할 때의 충일한 생명의
토대로 다시 돌아가는 순간,
언어가 비로소 시위를 떠나는 순간
여름, 가을, 겨울을 넘어
언어가 본래 생명선으로 돌아가
땅을 박차고 다시 날아오르는
힘찬 그 순간,
독살
동백꽃 필 때면
바다 속에서도
온몸으로 우는 돌이 있다
제 가슴 한쪽에
더 큰 바다를 재워놓고
파도 속으로 날을 세우는
돌꽃.
시작메모
봄의 언어
5일 동안이나 TJB 스탭들과 동행하면서 테마스페셜로 ‘포구기행’을 촬영했다. 서해안에 있는 포구를 따라가면서 포구 주변을 찾아 그곳의 봄을 느끼고 여러 분야의 장인들도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프르그램이었다. 마지막 날에는 천리포에 가서 수목원에 들렀다.
천리포 수목원에는 14,000여 종의 식물들이 있다고 하는데 때마침 그곳의 나무와 풀과 꽃들은 봄이 왔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들은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것들 앞에 서서 이름표에 새겨놓은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보았다. 그것들은 특이한 이름부터 아주 친숙한 이름도 있었으나 이제 막 피어난 꽃잎을 열고 있는 꽃들 앞에만 서면 내 가슴은 설레이고 떨렸다.
그러다가 김춘수의 시 「꽃」을 떠올렸다. 김춘수 시인은 대상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관계가 맺어지고 거기에서부터 발전되어 서로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는 생각을 드러냈다. 그렇지만 나는 그냥 꽃들에게 큰 감동을 받아서 순간적으로 그 이름을 부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또 하나의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누구라도 이곳에 오면 꽃들의 아름다움에 감흥을 받아서 이름을 부르게 되고, 그래서 모두 다 시인이 되는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 시의 언어는 바로 봄의 언어다. 꽃이 아름다워서 누구라도 그 이름을 부르지 않을 수 없는 상태, 그 꽃의 이름을 쓰기만 해도 시가 되는 언어가 바로 봄의 언어였다. 대상과 언어와 시인이 일체가 되는 것, 바로 그것이 시인 것이다.
김완하∙1987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길은 마을에 닿는다, 그리움 없인 저 별 내 가슴에 닿지 못한다, 네가 밟고 가는 바다, 허공이 키우는 나무. 시선집 어둠만이 빛을 지킨다. 계간 ≪시와정신≫ 주간, 한남대학교 문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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