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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봄호)신작시/김미선/겨울 장마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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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겨울호)신작시/김미선/겨울 장마 외 1편
김미선
겨울 장마 외 1편
누가 여자를 분열된 풍경 속에 걸어 두었을까
물구나무선 여자의 맨발은
버스 바퀴를 굴리고 있다
당돌한 무임승차에
승객들이 히죽이 웃고 있다
풀어 헤친 머리카락 창밖으로 내밀어
어느 별에서의 암호를 수신 중이다
단절이 지어내는 빌딩의 시계바늘
고장난 위성 안테나에서
수신 받지 못하는 별똥별이
아득한 기억 속에서 혼자 흔들린다
지구촌에 기거하고 싶었던 눈빛
처절히 태양에 매달려
억겁의 시공을 넘나든다
생의 궤도 이탈
낯선 우주에 걸터앉은 여자
또 다른 행성을 굴리고 있다
활화산 같은 눈망울이 부질없이
온전한 지상을 불평으로 휘젓는다
불안한 유리창에 흰 거품이 흘러내리고
오후를 실은 도시버스가 황급히 달리고 있다
변산 일몰
나는 바다를 들고 풍경을 설치한다
따사로운 햇살이 불을 피우고
서해로부터 진화해온 붉은 새가
창틀을 물고 날아간다
불꽃을 품은 코발트빛 수평선
수채화 물감으로 노을을 담고
반짝이는 파도가 빨갛게 피어난다
채석강이 건네주는 너울은
알을 품은 변주곡으로 흐르고
유배를 떠나온 지상의 한때가
블랙홀처럼 빠져나간다
한 번쯤 내동댕이 쳐보는
솟아오르는 모래굽이
모항 절벽에서 불그레한 취기로
공옥진의 곱사춤을 춘다
겹겹이 익어가는 햇무리에
붉은 띠를 두른 무성한 풀들은 자라
탕진한 삶이 퇴화 중이다
바다를 껴안은 붉은 새의 되돌이 길
부채처럼 펴질 질펀한 갯벌에
붉어진 눈물방울 하나 떨구면
허기진 어둠은 끝없이 나를 끌고 간다
김미선∙2010년 ≪불교문예≫로 등단. 시집 <어떤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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