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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봄호)신작시/박해성/동판지에서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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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4,667회 작성일 14-01-21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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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겨울호)신작시/박해성/동판지에서 외 1편

 

 

박해성

 

 

동판지*에서 외 1편

 

카메라 줌렌즈가 집요하게 어둠을 응시한다

오래전 멸종 된 원시 파충류처럼

물속에 절반쯤 몸을 숨긴 검푸른 나무들

먹잇감을 노리는지 소름 돋는 침묵이다

고감도의 전율은 늘 공복에서 절정이다

 

저수지 물 위를 맨발로 걷는 혼령처럼

산발한 나무들이 우줄우줄 허공으로 손을 뻗친다

 

나는 옥저를 불며 아득한 전생에서 내려와

목욕을 한 것도 같은데… 꿈틀꿈틀

내 몸을 휘감던, 뼛속까지 녹아들던 그 숨결에

안개, 안개 속에서 아이 셋을 낳고 살았는데

날개옷 같은 건 잊은 채 까맣게 살았는데

 

문득 둘러보니 피리소리 그치고 외눈박이 해가

단칼에 동녘을 좍 찢는다, 핏물 우련 번지는 수면에

천천히 눈 뜨는 검은 나무 뭉클한 몸내

비늘 다 떨어져나간 삼천년 묵은 저 이무기

어쩌자고 무작정 앵글 속으로 달려드는가, 어쩌자고

다시 돌아와 내 앞에 현현하는가, 당신!

 

* 경남 창원 소재 저수지.

 

 

 

맘마미아

 

번진 마스카라를 지우며 화장실에서 나는 운다, 맘마미아!

-I've been cheated by you since I don't know when*

오늘도 객석은 만원, 쏟아지는 박수갈채가 조명보다 뜨거운데

당신 어깨에 기댄 그녀의 긴 머리칼은 꽃구름처럼 아름다워

-So I made up my mind, it must come to an end*

언제나 변함없이 네비게이션은 친절하다, “속도와 신호에 주의하십시오” 나는 늘 속도와 신호를 준수했건만 세상에나, 거리엔 밤도깨비들이 번쩍이는 눈알을 뽑아 들고 도깨비 1이 앞지르고 도깨비 2가 확 덤비고 도깨비 3이 끼어들고 도깨비 4가 으르렁 도깨비 5가 번쩍번쩍 도깨비 6이 휘리릭 도깨비 7이 8, 9……가 어지러이 뒤엉켜 신파극처럼 끝도 없이 얼키고 설키고 시끄러운 이 속내를 어쩌나, 이대로 무작정 내달릴까 비에 젖은 길을 따라 허기를 싣고 통속한 실연을 싣고 삼류 배우를 싣고 흐르고 흘러가다 잠수교를 건넌 다음 도솔천을 지나 그래, 이번엔 유턴 그리고 전생의 1차선에서 사춘기까지 직진하다가 스무 살쯤에서 비보호 좌회전, 이어서 일방통행 800미터쯤, 다시 우회전하면 어쩜 좋아 “목적지 부근입니다” 흥, 나의 목적지는 지구가 아니거든! 못 이기는 척 뜨거운 금속성 심장을 왈칵 모질게 비틀어 끄고는 괜스레 두리번두리번, 문득 사랑니가 욱신거리네 맘마미아, 내일은 꼭 치과에 가서 아예 뽑아버려야지, 그런데 잠잠한 전화기는 왜 자꾸 들여다보는지 몰라-금방 보고 또 보고 맘마미아, 맘마미아

 

* 연극 또는 영화 <맘마미아>의 OST 가사 부분 인용.

 

 

 

 

 

박해성201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 2012년 천강문학상 시조부문 대상 수상. 시집 <비빔밥에 관한 미시적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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