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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봄호)신작시/신운영/달팽이 사육기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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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5,679회 작성일 14-03-04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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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운영/달팽이 사육기 외 1편

 

 

지불이 끝나고 달팽이는

유리병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때맞춰 밥을 주는 당신은 자상한 보모

빨간 토마토를 먹고 빨간 똥을 싸고

노란 참외 껍질을 먹고 노랗게 마른 시간을 싼다

 

피망을 연거푸 먹은 날

설사를 하고 피망처럼 속이 텅 비어버렸다

내가 하는 일이란

당신에게 부지런히 발바닥을 보여주는 일

강아지가 벌렁 누워 주인에게 배를 보여주듯,

 

유리병 안쪽을 빙빙 돈다

햇빛과 마주서기에 얄팍한 껍질

꿈이 부르터 있다

당신의 눈을 떠난 잠깐의 어둠 속에서

우린 서로를 더듬어 보았을까

 

너의 발이 내 머리를 만지면

나는 벌써 네 벗은 발을 흉내 내곤 했다

변신은 너무 쉽게 길들여지고

자웅동체의 사랑은 복제된 어둠을 낳는다

 

미리 발바닥을 보여주는 것이

달팽이의 진화이론,

팔다리의 흔적을 지운 뱀은

날름거리는 혀 아래 독니를 감춘다

 

 

 

 

붉은 새

 

 

새는 구름을 몰러 가는 중이다

산초나무 숲에서 바람은

밤새 어둠을 향해 얼마나 바늘을 쏘아댔는지

서릿발 쓴 마른 풀들이 하얗게 떨고 있다

겨울은 화약을 품고 있는 중이다

더 나가지 못하고

길이 물잔처럼 흔들리며

비명을 터트린다

금방 깨질 것 같은 울음으로 주저앉아

구름을 몰러 가는 새를

오래 바라보았다

새가 남기고 간 자리를

나뭇가지가 공들여 문지르고 있다

구름이 들어 올리어진 허공에

주사로 그린 벽화처럼 잘 익은

거울 하나

새의

뾰족한 부리에 찍힌

겨울 하늘이

사금파리처럼 시퍼렇게 깨진다

 

신운영∙2012년 ≪열린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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