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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봄호)윤의섭의 포에티카8/표현의 技術·4-문장 종결의 문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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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4,167회 작성일 14-03-04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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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의섭/표현의 技術·4-문장 종결의 문체

 

 

 

시에 쓰이는 문장 기술 방식은 예상독자에 대한 시인의 생각과 감정을 곧바로 반영한다. 달리 말하면 시인의 마음 상태가 시의 문장 기술 방식에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특히 문장 종결의 다양한 문체 활용에 따라 시는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를 형성한다.

주지하듯 우리말의 문장 종결 문체는 크게 격식체와 비격식체로 나뉜다. 격식체는 다시 ‘합쇼체’, ‘하오체’, ‘하게체’, ‘해라체’로 나뉘고 비격식체는 ‘해체’와 ‘해요체’로 나뉜다. 우리가 흔히 시에서 쓰는 문장 종결 문체는 ‘해라체’이다. 이 문체로 쓰인 시를 예로 들어본다.

 

북쪽 기슭이었다

 

떠내려온 시신은 흰 천으로 덮여있었고

긴 산책로를 코스모스가 숨죽여 따라왔다

 

신원파악이 어려운지 경찰차들이 오래 머무는 동안

서성이는 검은 제복들을 피해 비둘기 떼 멀리 휘돌아날았다

 

손에 쥔 마지막 패를 던지면서

수십 년 가꾼 자기를 자기 속으로 불 질러 지워버렸을까

 

흰 천 밖으로 드러난 검은 모발, 너른 이마,

두런두런 소문이 다 빠져나간 귀

 

귀 한짝이

늦은 오후의 가을볕을 받고 있었다.

―강인한, 「익명의 귀」 전문

 

위 시에서 각각의 행은 ‘이었다’, ‘휘돌아날았다’, ‘버렸을까’, ‘있었다’ 등으로 끝맺고 있다. 모두 과거형이지만 ‘~이다’나 ‘~한다’와 마찬가지로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해라체’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해라체’는 흔히 쓰이는 만큼 대중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익숙하고 거부감이 없다. 또한 과거나 현재의 사건이나 심정을 전달하는 데 적격이며 객관성을 유지하거나 건조한 묘사를 하는 데 있어 효과적인 기능을 발휘한다. 시인이라면 이러한 문체의 효과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반면 ‘해라체’는 단조로운 전개가 이루어질 여지가 다분하다. 또한 딱딱하거나 감성적이지 못한 분위기가 형성될 수도 있다. 물론 세련된 문체를 구사하는 시인이라면 이 정도는 능히 피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해라체’는 지금까지 지적한 부분 외에 조금은 특별한 기능도 갖고 있다. 바로 화자가 청자를 대할 때의 분위기와 태도에 대한 부분이다. 즉, ‘해라체’는 화자의 차분한 심정과 무게감, 더 나아가 사유하는 태도를 전달하기에 적합하며 청자에게도 이러한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다. 가벼운 말투, 귀엽고 깜찍한 표현 말투 등에 ‘해라체’가 자주 쓰이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다음으로 시에서 자주 쓰이는 문장 종결 문체로 ‘해체’를 들 수 있다. ‘해체’가 쓰인 시의 예를 들어본다.

 

나는 바다를 건너고 있어 달밤에, 잃어버린 말들을 만지고 있어 꽃잎을, 여자가 흘린 속삭임을 보고 있어 천 년 동안, 나비의 혈관으로 흩어진 하늘과 헤아릴 수 없는 귀들이 열린 파도 위를 맨발로, 걷고 있어 비밀을, 꿈의 심장을, 한밤에 고인 눈물을, 꿈은 닳고 있어 오래오래, 골목을 돌아 들판을 건너 절벽에 이르러 길들이 몸을 던질 때 이야기들이 빛나고 있어 바위 위에서, 물이 그림자를 던지고 있어 먼 곳으로, 나는 떠나고 있어 모든 내부가 환해지는 시간에, 투명한 뼈들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어 궁륭을 떠받친 기둥들, 닿을 수 없는 이름을 부르며 한없이 가늘어지고 있어 손가락부터 발가락부터 차례로, 공기가 되고 있어 창문들이 하나 둘 닫히는 시간에 구름이, 얼굴을 놓고 가고 있어 나는 풍경이 되고 있어

―이용임, 「아름다움은 조용히」 전문

 

이 시에서처럼 ‘해체’는 자기 고백적 내용에 잘 어울린다. 그런데 이 고백은 불특정의 청자를 지향한다. 다시 말해 시인, 혹은 화자 내부를 지향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점은 ‘해라체’와 다른 점인데 ‘해라체’는 어떤 경우 화자 자신을 향한 고백일 때도 있는 것이다. 아무튼 ‘해체’의 청자 지향성은 결국 고백이자 ‘말해주기’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체로 쓰인 시는 자신의 내밀한 얘기를 들려주고 싶을 때 적합할 것으로 보이며 동시에 비밀스런 고백이라도 부끄럽지 않게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부여한다. 왜냐하면 ‘해체’는 비격식체로서 화자와 청자 간의 벽이 높지 않고 친밀하게 다가설 수 있는 문체이기 때문이다. 또한 ‘해체’는 가벼운 마음으로 내용을 전달할 수 있으며 어떤 경우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얘기하듯 전개되기 때문에 좀 더 부드럽고 살갑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해체’는 위에 말한 그 ‘가벼움’을 인해 언술 내용의 무게감이나 진지함이 시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무화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동화적인 느낌, 유아적인 느낌이 풍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시의 고백은 깊이 있게 각인되지 않고 쉽게 잊힐 수도 있다.

한편 ‘해체’는 격식 없는 대화체이기 때문에 시의 전개가 쉽고 빠르게 전개될 수 있다. 시인의 입장에서는 대화하듯 쓸 수 있는 방식이므로 시를 거침없이 전개시킬 수 있는 장점을 갖는다. 그러나 많은 시를 이러한 유형으로 쓴다면 독자는 금방 식상해 하거나 그 시가 그 시 같아 보이는 현상까지 발생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합쇼체’의 문체를 예로 들 수 있다.

 

어떤 햇살의 부름을 받고 외출하듯 태어났습니다.

 

나는 나의 양피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고 나의 세상을 낳는 어머니였습니다. 나만의 하늘과 땅이 있고 나의 해와 다양한 기후가 있습니다. 나는 과거의 미래이고 미래의 그림자입니다. 살아야 할 날들은 모두 내가 발견해야 할 나입니다. 나의 배후에는 역사라는 신이 있고 미래라는 빈 땅이 있습니다. 나의 발은 나의 심부름꾼입니다. 발을 옮기는 건 나를 옮겨 나를 찾아가는 일입니다. 내 몸에 든 빛을 꺼내어 피었고 빛을 꺼트리며 시들었습니다. 계절과 시차가 다른 곳, 다른 별에서 살고 있는 나와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했습니다. 불편한 생을 탈출하듯 떠나 왔고 행복한 생을 더 향유하기 위해 떠나왔습니다. 생명의 기억, 말랑한 지층이 너무 많은 창고를 지어 숨겨둔 탓에 스스로 얼굴을 내밀지 않으면 다 만날 수 없는 ‘나’들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짐승을 원한 적 없지만 짐승이 뛰쳐나왔고 꽃이 뛰쳐나왔고 길을 대답하는 노인이 뛰쳐나가고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가 뛰쳐나왔습니다. 나는 다종의 생명이 사는 커다란 집입니까? 나는 기억입니까? 맨 처음 발걸음 떼면서부터 물었습니다. 물음표를 좇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발걸음은 어떤 선견지명이 있어 숨어있는 나를 만나러 가고 있습니까?

 

아직 질문의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발걸음이 발견한 대륙 계절 몇 개를 건너왔을 뿐입니다.

나는 누구십니까?

―박춘석, 「나는 누구십니까․1」

 

‘합쇼체’는 독자로 하여금 친밀감을 느끼게 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화자가 차분히 얘기해 주는 느낌까지 받을 수 있다. 따라서 독자는 이러한 문체의 시에 쉽게 몰입할 수 있게 되고 진지하게 교감을 나누고자 한다. 또한 ‘합쇼체’는 지고한 성찰의 내용을 전달할 때 유효하고 차분하게 할 말을 다 할 수 있는 전개력을 갖는다.

반면 ‘합쇼체’는 시가 설명적이라는 느낌을 주는 경우도 있다. 또한 진부하거나 늘어진다는 느낌까지 줄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문체의 기본적인 속성이 그러하므로 언제나 잠재적 걸림돌로 작용한다. 또한 ‘~ㅂ니다’로 문장의 끝이 길어지기 때문에 문장의 본질적인 내용이 잊히기 쉽다. 마찬가지로 문체의 특성인 청자를 향한 공손한 태도의 전달력에 의해 앞서의 문장 의미가 흐트러질 가능성도 있다. 즉, 문체에 집중하게 되어 내용에 대한 몰입이 방해되는 것이다. 어떤 경우는 ‘해라체’도 그렇지만 교조적인 느낌도 줄 수 있다.

‘합쇼체’는 청자에 대해 화자가 스스로를 겸손하게 낮춰 표현하는 방식이므로 설득력이 높다. 그러므로 사유가 깊은 내용을 전달하기에 유효하겠지만 이는 앞서 말한 걸림돌을 제거했을 때에 한한다.

<?xml:namespace prefix = v ns = "urn:schemas-microsoft-com:vml"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이상에서 말한 몇 가지 문장 종결 문체의 특성들은 그러나 규칙적이거나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필자의 경험에 의해, 또 시를 읽으면서 느낀 주관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문체적 특성을 유념한다면 진정 표현하고 싶은 내용이나 대상에 대해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 수 있는, 자신에게 딱 맞는 그런 문체를 구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윤의섭∙1968년 경기도 시흥 출생, 1994년 ≪문학과 사회≫로 등단, 21세기 전망 동인. 시집 <말괄량이 삐삐의 죽음>, <천국의 난민>, <붉은 달은 미친 듯이 궤도를 돈다>, <마계>. 대전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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