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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봄호)연재|한시산책 ②/서경희|인생과 자연의 봄을 노래한 도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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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6,881회 작성일 14-03-04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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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한시산책 ②

서경희|인생과 자연의 봄을 노래한 도연명

 

 

겨울방학 때 미국의 대학에 다니는 조카가 한국에 와서 함께 한강진역 근처의 리움미술관에 들렀다. 상설전시관 소장품들을 둘러보는 동안 조카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을 그린 그림 앞에서 10분 이상 서성대었다. 익히 보던 그림이라 나는 그냥 지나쳤는데 아이는 굉장히 신기해하는 듯했다. 물길 위쪽에 놓인 작은 배와 무성하게 늘어선 초록빛 숲속에 복사꽃이 저 멀리 펼쳐져 있는 그림이었다. 2012년 7월에 번역된 <도연명을 그리다>에 나온 50점 가운데 한 점이라고 기억된다.

그 그림은 동양의 유토피아를 표현했으며, 중국 동진東晋시대 도연명(365~427)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이상향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아이가 느끼는 평온함은 치열한 미국 대학생활에서 벗어나 잠깐이라도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출국하던 날 처음으로 한국에 더 있고 싶다는 말을 했단다.

 

이제 사계의 첫째인 봄을 말할 차례다. 도연명은 이상향을 표현함에 있어서 외형상 분명 복사꽃 피는 봄이라는 계절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도연명이 그린 이상세계는 겨울이라는 시련을 견디고 지나온 봄빛이다. 그래서 나는 도연명이 지금도 매력적인 시인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지난 겨울호에는 소동파(1036~1101)의 「동파」라는 시를 소개했다. 그 시는 황주黃州로 유배되어 온 소동파가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지족知足사상에 영향을 받아 동파거사라고 자호한 즈음의 시이다. 그는 「동파」에서 인생의 돌밭을 경험하고 그 곳을 지나온 이의 값진 흔적을 내비쳤다.

 

소동파는 언제부터인가 도연명을 추모하고 그의 시와 그의 사람됨에 매혹되었다. 그는 황주로 유배되어 의기소침해져 있던 시기에 <도연명집>을 항상 휴대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도연명이 바로 자신의 전생이라고 토로하며, 직접 농사짓는 삶을 통해 체득한 시에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여러 자료에 의하면, 소동파는 36세에 이미 도연명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황주로 유배되어 황무지 돌밭을 일구며 몸소 농사를 짓게 된 이후 도연명이라는 인물에 더욱 심취한다. 아마도 도연명의 시로 인해 소동파는 날이 선 강직함과 점점 멀어졌으며, 그의 정서는 점차 순화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도연명은 어떤 유명한 시인보다도 소동파가 가장 닮고 싶어 한 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황주 동파에서의 삶 이후 10년, 소동파는 도연명의 시에 차운한 화운시和韻詩를 짓기 시작했다. 소동파가 도연명의 시에 화답하는 형식을 취한 시는 무려 109수에 달한다.

 

도연명은 어떤 사람일까? 중국 동진 시대 도잠陶潛의 자가 연명淵明이다. 호는 오류선생五柳先生이다. 자는 이름 대신 부르는 또 하나의 이름이다. 이름은 부모 앞이나 어른 앞에서 자칭할 때 사용하고, 타인들은 자를 이름 대신 불렀다. 동양에서 남의 이름을 함부로 들먹이는 것은 실례에 속한다.

 

도연명은 41세에 스스로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62세까지 전원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이다. 그는 곤궁했으나 결코 불평하지 않고 담담하게 자연에 속해 있는 자신의 삶과 주변 사물을 시로 읊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주세붕周世鵬 등 도연명의 시에 차운한 문인들이 많았으며, 조선 21대 임금 영조英祖도 어제御製에서 도연명의 검소한 삶에 대해 자주 언급하였고, ‘세상에 태어난 이는 모두 형제’라는 어구 등을 자주 인용하기도 하였다.

 

다음은 도연명의 「잡시雜詩」 12 수 중 제 1수의 마지막 4구이며, <명심보감> 권학편에도 실려 있다.

 

젊은 날은 거듭 오지 아니 하고

하루에 새벽도 두 번 오지 않는다.

제 때에 미쳐 힘써 일해야 하니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盛年不重來 一日難再晨

及時當勉勵 歲月不待人

 

도연명은 인생의 봄은 결코 다시 오지 않으며, 하루 가운데 아침 또한 다시 오기 어렵다고 강조하였다. 인생의 봄인 첫 계절에는 힘써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다 때가 있고 세월은 흘러가고 있기 때문에. 이는 농사를 지으며 자연에서 온몸으로 체험한 도연명의 귀한 시구이다.

 

소동파는 도연명의 시 「음주飮酒」 20수 가운데 제 5수의 ‘동쪽 울타리 아래에 핀 국화를 따서 멀리 남산을 바라보는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구절을 백미로 여겼다. 이로 인해 도연명 하면 연상되는 것이 국화이다.

그러나 나는 도연명의 「사시四時」를 백미로 여긴다. 너무나 담박한 그 아취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다. 이태백은 춘야春夜를, 소동파는 춘소春宵를 노래했지만 도연명은 춘수春水를 노래했다. 짧은 봄밤의 정취를 아쉬워하는 두 시인의 정서는 일품이다. 그러나 겨우내 얼었다가 못으로 모여들어 찰랑대는 물을 보며 자연인이 읊은 시인의 경지는 남다르다.

 

봄 물은 사방 못에 가득 차 있고

여름 구름은 기이한 봉우리 형상 많네.

가을 달은 밝은 빛 휘날리고

겨울 고개엔 외로운 소나무만 우뚝하네.

 

春水滿四澤 夏雲多奇峰

秋月揚明輝 冬嶺秀孤松

 

봄 못의 물과 여름 구름, 가을 달과 겨울 산마루에 홀로 서있는 소나무. 도연명이 각 계절의 대표 주자로 꼽은 네 가지이다. 도연명이 15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사랑 받는 시인으로 우리 가까이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무위無爲 때문일 것이다. 도연명의 이 시도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으며, 「사시」 현판은 창경궁 함인정涵仁亭<?xml:namespace prefix = v ns = "urn:schemas-microsoft-com:vml" />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사방에 걸려있다.

 

 

 

서경희∙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연구원, 한성대학교 강사, 카톨릭 대학교 강사, 성균관대학교 강사 역임. 박사논문 <삼국유사에 나타난 화엄선의 문학적 형상화>, 「영조 어제 해제」, 「열하기행시주」 공역. 현재 재단법인 실시학사 문학팀 <정산집> 번역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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