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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봄호)신작시/이은봉/시든 꽃다발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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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4,944회 작성일 14-01-21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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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겨울호)신작시/이은봉/시든 꽃다발 외 1편

 

 

이은봉

 

 

시든 꽃다발 외 1편

 

 

생일선물로 받은 장미꽃다발, 시든지 벌써 오래다

 

버릴까 말까 망설이다가 화병에 꽂아둔다

 

문득 바라보면 저 시든 장미꽃다발,

 

나 같기도 하고, 아내 같기도 하다

 

어느새 저녁 6시가 손 흔들며 다가오고 있다

 

이내 7시가 되고 8시가 되고 자정이 되리라

 

끝내는 흙이 되리라 저 시든 장미꽃다발!

 

 

 

 

옷시암거리

―막은골 이야기

 

안터 콩밭에서 멀지 않은 옷시암거리에는 다 찌그러져가는 오막살이가 바튼 기침을 하며 살고 있었다

안방에는 중늙은이 둘이 폭폭이 앓고 있었고, 웃방에는 머리칼이 칠흑 같은 처녀가 답답히 앓고 있었다

폐병쟁이 가족……, 처녀의 이름은 종순이라고 했다 피부가 박속같이 희여 동네 총각들의 마음을 한참 설레게 했다

오막살이의 주인은 천 씨, 논산 훈련소에서 석방된 인민군 포로 출신이라고 했다

전쟁이 끝나고 오래잖아 이들 부부는 막은골로 들어와 오시암거리에 오막살이를 틀었다

옷시암 물은 옻이 오른 사람들에게 직효, 오막살이 세 식구는 이 물로 세수를 하고, 밥을 하고 숭늉을 부었다

천 씨는 늘 두터운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어디 품앗이 한 번 나가지 않았다

종순이 엄니 선천댁만 머리에 희 수건을 쓰고 논도 매러 다니고 밭도 매러 다녔다

이 집에서 나고 자란 얼굴이 흰 종순이는 양청 고개 위 새로 지은 당암교회에 다녔다

건강을 되찾은 그녀는 오래잖아 목사님의 중매로 서울이 가까운 안양으로 시집을 갔다

시름시름 앓던 폐병쟁이 천 씨가 세상을 뜨자 오시암거리 오막살이는 시나브로 무너져버렸다

동내 우물가에서는 한동안 종순이 엄니 선천댁도 종순이를 따라 안양으로 떠났다는 소리만 왕왕거렸다

그런 이후 내 가슴에는 지울 수 없는 조그만 왕국이 살았다 왕국에서 나는 늘 이름 없는 사서였다.

 

 

 

 

이은봉∙1984년 ≪창작과비평≫에 신작시집 <마침내 시인이여>를 수록하며 등단. 시집 <내 몸에는 달이 살고 있다>, <길은 당나귀를 타고>, <책바위>, <첫눈 아침> 등. 유심 작품상, 가톨릭 문학상 등 수상.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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