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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봄호)신작시/김안/환절기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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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5,103회 작성일 14-01-2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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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겨울호)신작시/김안/환절기 외 1편

 

 

김 안

 

 

 

 

환절기 외 1편

 

 

 

불가능한 사랑과 불가능한 사랑의 폭력들과,

노란 물탱크 속 투명한 물의 출렁임과 갇혀버린 강에서 자라나는 육식성의 푸른 풀들과,

방바닥과 무덤 바닥과,

지나버린 시간과 지나버려야 했던 시간과,

네가 아니면 안 돼,

몇 명의 연인에게 말했던가, 죽을 것처럼

봄이 오면

시들어버리는 꽃도 있겠지만, 죽으면 다시 피어나겠지만,

거울과 거울을 들고 쫓아오는 이들과,

옆집 새댁 아기가 신고 있던 작고 고운 신발과 몸도 입도 없이 신발만 남겨진 이들과,

지붕과 지붕에 매달린 주인 없는 집들과,

대기와 창살과,

따뜻했던 당신의 방과 내 방 안으로 쏟아지는 못된 기억들과, 기억의 독재들과,

아무것도 모른 채 다시 울창해질 언덕배기와 걸어 다니는 공포들과,

봄과 쓴물처럼 번지는 봄의 공포와,

사랑과 불가해함과, 재와,

다다를 수 없는 거리, 버려진 입들과,

끝끝내 내 몸을 버리는 것들 사이에서

창백한

 

 

 

 

일요일

 

 

 

우리를 밟고 산책하는 저 가정의 단란함엔 어떤 혐의가 있습니까. 나의 이웃은 매주 어떤 죄의 목록을 고백합니까. 그래요, 당신은 지나치게 오랫동안 싸웠습니다. 고통은 부드럽고 침착하게 비인칭으로 스며들고 이 밤은 제가 들어본 그 어떤 돌보다도 무겁습니다.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저 텅 빈 입을 조심하세요. 그 입 안에 가득한 검은 밤들을 조심하세요. 하지만, 저 밤 속을 부유하고 있는 가면들은 선량하기 그지없습니다. 나는 몇 개의 고백을 건너 이런 입이 되었을까요. 하지만 가면을 쓰면 나도 그 누구보다 착해질 수 있겠지요. 언제 나는 정직해질 수 있을까요. 나의 이웃에게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해야 합니다. 신은 굶어죽은 이들의 입속에나, 불에 타 죽은 이들의 늑골 속에나 존재합니다. 아주 낮게 존재합니다. 당신은 지금 신을 밟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친애하는 나의 무덤이여, 너는 이웃만큼 포악하지도, 이웃만큼 선량하지도 못하는구나. 입속에 가득한 모래. 늑골 속에 태어나는 구더기들. 그리고 저 높은 크레인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영혼. 그래도 마음과 뼈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보호해주던 신비들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요. 무엇이 아름다움인지 이제는 알 수 없어 형벌의 목록을 펼치면 왜 내게 없던 가족들이 나를 보며 웃고 있습니까. 왜 그 입들을 피해 달아나면 달아날수록 내 온몸이 입이 될까요. 내 입 속으로 처넣어지는 구둣발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김안∙2004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오빠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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