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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봄호)신작시/김선미/환절기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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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겨울호)신작시/김선미/환절기 외 1편
김선미
가장자리 말들 외 1편
해안선으로 묵음의 말들이 흘러와 있다
삶과 죽음이 넘나드는 중간계 쯤 되나
거품이 부글거리며 중심에서 떠밀리면
지구는 가장자리가 얇아진다
물과 뭍의 경계엔
물살 휘돌아 온 유리병
개봉되지 못한 편지글들 뚝뚝 끊어져 나온다
말이 되지 못한 사람들이 해안으로 밀려나듯
페루의 펠리컨과 돌고래 떼들
입 벌린 채
해의 변두리로 밀려난다
남극의 턱끈펭귄은 기침을 해댄다
입안에서 뭉쳐진 공기가 터지자
무지개를 목에 건 햇빛이 덩달아 조각난다
밀려나는 것들은 몸속에 언어를 갖고 있어
건드리면 속을 왈칵 쏟아낸다
노인요양병원 복도엔
젖은 말들이 게 구멍처럼 뽀글거린다
말 잘하는 사람들이 이따금 말을 파묻고 간다
말의 무덤은 공중이 아니듯 물속도 아니다
파도가 사막의 무늬를 닮은 건
흔적으로 흔적을 가둔 모래의 침묵 때문이다
슈퍼문이 뜰 때
보름달이 뜨면 뻘 속으로 간다 백년 묵은 여우 떼처럼 목을 길게 빼고 울부짖으며 간다 달의 피가 달짝지근하다는 소문은 오래전부터 있던 일
오늘은 슈퍼문이 뜨는 날 아기장수의 말과 군사들이 진을 치는 밤 조개잡이로 위장한 우리는 뾰족한 호미 하나씩 들고 랄랄라 노래 부른다 승합차엔 달 따러 갔다 돌아오지 못한 할머니 아버지 영혼까지 태우고
달 따는 일 우리 집의 오랜 숙명 뻘이 점점 드러난다 물을 끌어들인 달은 더 크고 더 밝게 변해가고 우리는 송곳니를 세워 달에게로 간다 걸음마 익히는 아기처럼 한 발 한 발 뻘 속을 걷는다
발바닥은 발목을 잡아당기고 발목은 정강이를 정강이는 엉덩이를 허리를 가슴을 목까지 우린 녹아내리고 있다 애초부터 우린 진흙이었는지, 여기저기 부딪치며 떨어져 나간 귀나 코 눈들이 채워진다
온몸에 이빨자국 품고 달이 기울어간다
조개처럼 목에 줄무늬 하나씩 긋고 우린 땅 위로 올라온다 피 묻은 입술을 닦는다
김선미∙경기 안성 출생. 2009년 ≪시에≫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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