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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봄호)/신작시/조옥엽 시간의 뿌리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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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옥엽
시간의 뿌리 외 1편
뽑아낼 수 있을까?
뇌리 깊숙이 박힌
덩두렷한 시간의 뿌리
그 검은 사다리 타고 내려가면
수많은 방에서 달려 나오는 아우성
막무가내로 옷소매 잡아당겨
안간힘 쓰고 버티다
찢긴 옷자락 펼치면
철없이 까불다 부서져 내린
초승달의 앞니처럼
금목서 피어나던
10월의 문이 활짝 열리고
처처한 포구에
부패한 기다림처럼
낡은 어선 한 척
독감에 걸려 시름시름
놈이 연달아 토해내는
곤두기침 놀치고
그 틈 타 재빨리 놈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간 너와 난
어느 먼 생에서
몇 생을 서로의 주변 맴돌며
냉가슴 앓다 잠시 얼굴 마주하며
서로에게 폐선의 엔진처럼
떨고 있는 것인지
배는 덩달아 해묵은 상처 처매며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둘만의 빛 찾아 헤엄치고
때 만난 듯 별들은
물속으로 뛰어내리며
연달아 축포를 쏘아대던
감친 시간의 질긴 뿌리
헛소문
음파의 속도로 퍼져나가 곳곳에 홈통소니 파놓고 호시탐탐 입맛 다시는 사나운 송곳니, 활활 타오르는 두 눈에 파란 불꽃이 희번덕희번덕
이팝꽃처럼 피어나는 부드러운 싹들, 나는 그게 북쪽으로 가는 길목이라 생각한 적 단 한 번도 없어
미쳐 날뛰는 아가리 피해 도망치면 촘촘한 그물 사방에서 옥좨 오고 보란 듯 만인 앞에서 번쩍이는 갈고리 날려 목을 채는 잔인함 거침없이 앙가슴 난도질해
환상성운 한 줄기 빛 잉태하듯 그 피멍 딛고 한 계단 두 계단 창가에 제라늄 날마다 피어나도 쓸쓸하고 외로운 목숨
나는 오늘도 초승달 기울기로 왼쪽 가슴에 고인 남모를 슬픔 한 바가지씩 퍼내다 말고 깡마른 무릎에 얼굴 파묻은 채 저물어 간다
믿었던 시간들은 결단코 지워질 수 없는 상처로 돌아와 쐐기를 박고 마주치는 눈동자마다 회칼 들이대 황망히 눈물 감추며 견뎌내는 순간순간이 얼마나 황량했는지
걸쭉한 입담의 머플러 바람에 휘날릴 때마다 그 화려한 문양만큼 절망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나는 기름종이처럼 활활 타 마침내 맺혔던 독기만큼 찬연히 빛나는 밤하늘의 별이 되리니
조옥엽∙2010년 ≪애지≫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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