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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겨울호)시깊이읽기/한명섭|거미 가족의 상봉은 이루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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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겨울호)
시깊이읽기
한명섭
거미 가족의 상봉은 이루어졌을까?
수라
백 석
거미 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적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수라修羅」는 백석의 첫시집 <사슴>(1936년)의 3부에 실린 작품이다. 차디찬 겨울밤 방 안을 찾아든 거미를 차례로 방 밖으로 내보내는 시적 화자의 심경 변화 과정이 담긴 시편이다. 대입 수능 대비 문제집에 실려 있어서 근래에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에게는 친숙할 터인 이 시는 간단한 사건의 조합으로 30년대 혹독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민족의 해체된 삶을 거미 가족의 상황에 빗대어 표현한다.
시적화자는 방 안에 들어온 거미를 그냥 밖으로 옮겨 놓고 있지만 우리는 수고롭게 문을 열고 거미를 밖으로 내 놓는 대신에 거미를 죽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시편에서 조차도 함부로 생명을 뺐지 않는다는 점은 백석이 다른 시편에서 보여 주었던 반근대적인 정서의 연장에서 이 시를 보게 한다. 자신만의 공간에 침입한 곤충을 죽이지 않고 밖으로 장소만 이동시키는 반복된 행위는 타자에 대한 이해와 연민을 갖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는 쉽게 할 수 없는 반응이다.
어느 해 봄날이었다. 나는 점심을 먹고 꽃이 한창인 화단가에 앉아 있었다. 크게 바쁠 일 없는 시간이라 따뜻한 햇빛을 쬐며 앉아 있는 중에 화단 위를 바쁘게 기고 있는 개미가 눈에 띄었다. 아무 생각 없이 손으로 탁 내리쳐 개미를 죽였다. 그 순간 깊은 후회가 밀려들었지만 이미 개미는 짓이겨져 있었다. 짧은 순간의 일로 오후 내내 불편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아무 피해도 주지 않고 자신의 갈 길을 잘 가고 있는 검은 개미를 내려쳐 죽인 나의 무의식에 참담했다. 한창 집안에 극성스레 출몰하던 바퀴벌레를 때려잡던 습관적 행동이 내 무의식마저 맹목적인 공격성을 띄게 만들었다고 합리화하곤 기억에서 애써 떨쳐버리려 했다 이런 개인적인 경험 탓에 「수라修羅」를 읽을 때마다 나와 시적화자를 자꾸 비교하게 되었다. 그 후에는 지나가던 벌레를 향해 손이 올라가면서도 내리치는 것에는 멈칫하게 되었다.
‘수라修羅’라는 제목을 통해 이 시는 여러 의미를 지니게 된다. 수라는 아수라의 줄임으로 무서운 귀신 혹은 육도의 하나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육도는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의 여섯 세계를 일컫는 말이며 수라는 인간보다는 더 고통스럽고 축생보다는 나은 중생의 삶이 영위되는 세계를 의미한다. 그리하여 이 시는 인간 삶의 한 국면, 즉 30년대 민중들의 고단하고 신산한 삶을 재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에 재현되는 세계는 인륜적 질서가 붕괴된 근대 사회에 대한 알레고리이다. 「수라修羅」 속의 가족서사는 ‘나’의 “아무 생각” 없는 행동이 빚어낸 비극적 결말로서 가족의 해체와 이산이다. ’거미 가족이 당한 비극적 서사는 그것을 관찰하는 ‘나’에게 슬픔과 설움을 불러일으키는데, 이는 가족과 고향을 잃어버린 ‘나’의 처지와 입장이 ‘거미’에게 투사되었기 때문이다. 백석은 이런 거미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시인을 포함하여 식민지적 근대화의 과정에서 가족과 고향을 잃고 살아가야 했던 민족의 파편화된 삶을 알레고리화 한 것이다.
「수라修羅」는 뚜렷한 사건의 진행과 인과적인 연결을 보여주지만 정작 미적형상화는 묘사와 장면화된 서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각 연을 통해서 사건이나 인물의 행위를 서술하고 있지만 작품 전체를 통해 구성된 장면이 독자에게 울림을 불러일으킨다. 수라에서는 일련의 거미들이 ‘나’의 내면에 불러일으킨 감정의 파동 및 그에 따른 행위 변화가 발화 내용의 중심을 이룬다. 사건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연쇄적으로 배열된다. 이 사건들은 모두 현재형으로 진술되면서 장면화의 효과는 배가된다.
1연에서는 ‘거미새끼’ 한 마리를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쓸어버린다. 하지만 2연에서부터는 대상에 대해 ‘가슴이 짜릿하’며, ‘서러워하’는 감정이 개입된다. 큰 거미가 그 자리에 다시 내려앉는 행위로 인해 시적화자는 거미들을 각각의 개체가 아닌 가족으로 생각한다. 아까 쓸어버린 거미는 새끼거미가 된다. 똑같은 방법으로 문 밖으로 버리나 이번에는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하는 동정심에서 행동이 이루어진다. 3연에서는 알에서 갓 깬 듯 무척 적은 거미새끼가 식구들이 앉았던 자리로 내려온 것이다. 미안함에 손을 내밀어 보지만 ‘분명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달아나버리고, ‘나’는 보드러운 종이에 받아 어쩔 수 없이 문밖으로 버린다. 이 순간 거미는 그냥 거미가 아닌 타자의 자리로 올라선다. 자신이 버린 어미나 형제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면서 타자의 아픔에 진정으로 공감을 하며 같이 ‘슬퍼한다’. 자기중심적 사유에서 벗어난 시적화자의 모습이다.
생각 없음에서 동정으로 그리고 미안함으로 진행되는 내면의 묘사가 시적화자의 행동을 통해 극대화된다. 문밖은 차디찬 밤이고 ‘나’의 행위가 거미에게는 치명적일 수도 있으나 ‘나’는 미안해하면서도 쓸어버리는 행위를 반복한다. 그는 따뜻하지만 외로울 방 안보다는, 춥고 위험하나 식구들이 있는 문밖이 거미들에게는 나으리라고 단정하고 그렇게 행동한다.
자신의 생각 없는 행동에서 촉발된 사건이지만 이어진 사건에서의 시적화자가 하는 행동은 일종의 배려로 읽히는 데 이때 배려는 자기중심적인 것이 아니라 타자지향적인 것으로서 관계적인 동시에 타율적인 윤리이다. 이는 에코페미니즘적인 시선과 맞닿아 있는 지점이다. 이혜원은 「수라」에 대해 “이 시에서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시정신의 핵심은 타자에 대한 깊은 관심과 보살핌을 유발하는 측은지심이나 자비심 같은 높은 도덕적 덕목과 관련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강요되지 않은 자발적 선행이며 인간사회에 한정되지 않고 범우주적으로 확대된 높은 차원의 실천윤리”라고 말했다.
「수라修羅」에서 시적화자가 보이는 태도는 바로 인간만을 위한 세계를 추구하고, 인간 이외의 존재에 대한 배려를 망각해온 인류의 역사에 대한 반성적 성찰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탈근대적이다. 유성호는 백석이 보여준 근대적인 것에 대한 비판과 풍부한 감각, 대상을 향한 연민, 성찰의 깊이,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시적 의장意匠으로 근대시의 가장 높은 봉우리를 형성한 시적 진정성 등은 두고두고 후배들의 도전의 대상이자 귀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탄생 100주년을 맞은 백석에 대한 조명이 여전히 유의미한 이유이다.
한명섭∙소설가, 2009년 ≪서시≫로 등단, 현재 가천대, 동덕여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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