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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겨울호)책크리틱/박연옥/실패의 수사학, 통증을 노래하다-안도현의 시집 <북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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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3,634회 작성일 13-10-08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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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크리틱

박연옥

박연옥|실패의 수사학, 통증을 노래하다-안도현의 시집 <북항>

 

 

 

 

“한번 충격을 줬다가 이내 분노를 일으키게 만드는 종류의 이미지가 넘쳐날수록, 우리는 반응 능력을 잃어가게 된다. 연민이 극한에 다다르면 결국 무감각에 빠지기 마련이며, 그래서 통속적인 처방이 내려지는 법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정작 무엇인가?”(수잔 손택, <타인의 고통>, 159쪽)

 

우리에게는 매일 TV, 인터넷, SNS……로부터 스펙터클한 이미지들이 대량 공급된다. 이미지들은 경쟁적으로 자극의 수위를 높여가지만, 어떤 이미지도 절대 우위를 점하지 못한다.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이미지들이 끊임없이 방출되어도, 어느 시점에는 수용자의 분별력이 무감각해지는 순간이 반드시 도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그저 쳐다만 보는 구경꾼으로 존재하거나, 스펙터클이 되어버린 폭력의 소비자”(<타인의 고통>, 66쪽)로 남는 수동적인 존재가 된다.

안도현의 시집 <북항>(2012년)은 우리가 처한 현실의 곤궁을 시작詩作할 수 없는 시인의 곤궁을 정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북항>의 시들은 실패의 노래이거나 또는 노래이기를 실패한 노래들이다. “比喩라고 할 수 없고 直說이라고도 할 수 없는데 그만 이렇게 發說을 해버리고 말았다”(「<靑莊館全集>을 읽다가」)는 고백은 시인의 현재 위치를 정확히 지시해준다. 직설이 아닌 비유로, 참혹한 현실을 참혹하지 않은 미적 형식으로 갱신해야 하는 시인의 과업을 충실히 이행하지 못한 자괴감에 그는 괴롭다. 그러나 시인은 감나무의 그늘(「일기」)과 사과의 곪은 자국(「그 집 뒤뜰의 사과나무」)과 떼를 지어 날아가는 기러기의 등(「등」)을 “통증도 없이” 바라보아 미안하다고 ‘시’가 되지 못한 말로 ‘발설’함으로써 하나의 사건을 유발한다. 이 실패한 ‘발설’은 통증을 잃은 동시대인들의 무감각한 감수성에 각성을 촉구한다.

시인의 실패담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시집 <북항>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시인의 암담한 현실 인식을 직접적으로 누설하고 있는 작품은 「설국」이다. 「설국」은 엄혹한 현실을 비유하는 ‘첩첩산중’과 ‘눈보라’라는 전형적인 클리셰를 전면에 배치하고 있다. 시인은 왜 의도적으로 클리셰를 차용해왔을까? 아마도 시인은 이렇게 묻고 있는 듯하다. 이 진부함으로부터 우리 시대는 과연 단절하고 지나온 것이 맞는가? 여전히 우리는 진부함 속에 정체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진부한 클리셰의 실패한 수사학을 통해 시인은 성장과 진보의 장막에 가려진 이 시대의 진부함을 재발견하게 한다. 동시에 이 상투적인 권력과 통치에 대해 묵인하고 있는 동시대인들에게 무언가를 환기시키고자 한다. “팔짱을 끼고 강 건너 불구경하는 사람들이”(「명궁名弓」) 한때는 명궁名弓이었음을. ‘부엌’ ‘부뚜막’ ‘외할머니’ 같은 단어와 함께 신화와 전설이 되어가는 “붉은 눈”(「붉은 눈」)은 다시 불태워야 하는 분노의 불씨임을. 시집 <북항>의 주요한 정서가 회고적인 까닭은 여기에 있다.

「국화꽃 그늘과 쥐수염붓」, 「문경 옛길」, 「사다리와 숟가락」, 「시집」, 「가을밤의 풀벌레 소리」 등 여러 작품에서 “단결과 연대의 시절”과 “사상 검열의 그물에도 걸리지 않던” 매서운 말들이 빛나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간절함은 곳곳에 포진되어 있다. 그러나 그의 회고는 온전한 합일合一과 지복한 충만감을 향수하는 데 실패한다. 밤하늘의 달을 따 달라는 아이들의 원대한 꿈과 결코 완성되지 못하는 아버지들의 사다리로 이어지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유연한 상상력은 현실의 견고한 장벽에 봉인되었다. 현실의 위력은 예전보다 더욱 강력해졌다. “요즘 아이들 그 누구도 달을 따달라고 하지 않을”(「사다리와 숟가락」) 뿐더러 아버지들도 이제는 “지붕에 오르는 일을 두려워하고 있다.” 현실을 돌파할 수 있는 잠재력의 거처인 상상력의 영역 또한 현실에 침범당한 것이다. 실용성과 이해타산의 그물망을 벗어난 갓길을 한 뼘도 허용하지 않는 현실장악력에 대항하는 우리의 무기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남루함뿐이다. 시 「북항」은 이 부끄러움과 서러움, 그리고 그리움의 감정이 뒤엉킨 정념의 정수를 보여준다. “나는 항구라 하였는데 너는 이별이라 하”고, “나는 서러워져서 그리운 곳을 북항이라 하였는데 너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하는 어긋남과 실패의 연속은 쉽게 떨쳐버릴 수 없는 원환과도 같은 그늘을 드리운다.

우리는 어긋남과 실패의 연쇄 속에 연루되어 살아간다. 선명히 도려낸 듯한 남루한 감정들을 애써 외면해보지만, 빛나는 성공과 발전의 이면에는 실패와 좌절과 비루함이 공존해 있다. 우리의 진짜 곤궁은 성공과 발전의 이면에 자리한 실패와 좌절과 비루함의 존재를 망각하거나 은폐하는 성급한 조급함에 있다. 성장과 발전과 진보의 마취제는 거대한 환상을 연출하고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비정규직의 비율이 정규직의 그것을 추월하는 노동유연화와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정글을 ‘합리적인 세계’라는 프레임의 구도 속에 고정시킨다. 이 프레임의 구도 속에서 “적게 먹고 적게 싸는 딱정벌레의 사생활”(「그 집 뒤뜰의 사과나무」)은 스며들 빈 공간이 없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프레임을 벗어난 더 넓은 공간에 “적게 먹고 적게 싸는 딱정벌레의 사생활”이 엄연히 생존한다. 제주도 강정마을, 경남 밀양, 용산, 대한문 앞…… 성장과 발전이 아니라 단지 ‘예전처럼 그대로’ 그냥 ‘함께 살기’를 희망하는 미미한 존재들의 맹렬한 삶이 지속되고 있다. 해서 시인의 언어는 끊임없이 실패하는 장소로 향한다.

 

나는 누군가 나에게 흔들리는 옥수수 그림자를 경작하는 사람이라고 불러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왜 하필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물으면

간신히 이를 가지런히 내보이며 파종의 힘을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파종의 힘」 부분

 

시집 <북항>을 덮으며 위기는 시인이 아니라 실패와 통증을 알지 못하는 모든 이들의 몫으로 돌아왔다. 타인의 고통을 그저 구경꾼으로 쳐다보는 당신, 감각이 마비되어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당신에게 시인은 “한 마리 짐승이 되어 크렁크렁 울”(「울진 금강송을 노래함」)음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이제 당신 차례다!

 

박연옥∙200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경희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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