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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겨울호)한시산책/서경희/소동파가 동쪽 언덕을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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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5,006회 작성일 13-10-08 16:31

본문

48호(겨울호)

한시산책

서경희

소동파가 동쪽 언덕을 거닐다

 

 

 

 

송파대로를 달리다가 소나무 언덕이 있을만한 곳이 어디일까 궁금하여 이리저리 휘둘러 본 적이 있다. 송파의 ‘파’는 사전적 의미로 고개, 비탈, 언덕, 제방이라는 뜻인데, 언덕 가운데 가장 유명한 언덕이 바로 동파東坡이다. 북송 시대 유명한 문장가이며 서예가인 소식(1036~1101)은 흔히 ‘파공坡公’, ‘파선坡仙’으로도 불린다. 어느새 ‘언덕 파’는 소동파 한 사람을 지칭하는 한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소식은 언제부터 ‘동파’라는 호를 사용하기 시작했을까?

소식은 중국 북송 시대 1036년 음력 12월 19일 사천에서 출생하였는데, 아버지 소순은 그에게 수레 앞턱의 가로나무처럼 요긴한 역할을 하라는 뜻으로 식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어릴 때부터 매우 총명했던 그는 21세에 동생 소철과 함께 송나라 수도 개봉開封에 가서 진사시에 합격하고, 그 이듬해에는 시험관이며 당시 최고 문장가인 구양수(1007~1072)에게 최고의 찬사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모친상을 당하여 사천으로 귀향하여 3년 상을 치르고, 그로부터 얼마 후 또 부인과 부친이 연이어 세상을 떠나자, 소식은 34세가 되어서야 다시 중앙의 관리로 복귀하게 되었다. 당시 왕안석의 신법당은 관리 선발 시험과목으로 시문을 배제하였다. 이에 시문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던 소식은 그들과 대립하게 되었고, 얼마 후부터는 구법당과도 불화를 겪게 된다. 중앙에서 밀려난 그는 36세 이후 항주를 시작으로 밀주, 서주, 호주 등 지방관으로 재직하며 백성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소식이 44세 되던 초겨울. 호주의 지방관으로 재직하고 있던 어느 날, 개봉으로 압송당하여 넉 달 이상 감옥에 갇히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집권자들을 비판했던 그의 풍자시로 인해 그와 시를 주고받은 많은 인사들도 연루되어 함께 고초를 당했다. 당시 죽음을 예견한 소식은 동생 소철에게 자신의 절박한 심경을 담은 시를 지어 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형 직전에 소식의 재주를 아깝게 여긴 황태후와 지인들의 구원으로 인해, 다음 해 2월에 소식은 호북성의 황주黃州로 유배되었던 것이다. 황주는 소식이 적벽부赤壁賦를 지은 곳이며, 지금은 관광 명소로 유명해졌다.

황주로 유배될 때 소식에게 주어진 관직은 원외랑員外郞 겸 단련부사團練副使였다. 그러나 실직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족을 책임진 그는 경제적으로 엄청난 곤란에 직면하였다. 다행히 그의 친구인 마몽득馬夢得은 궁핍함에 처한 소식을 위해 관아에 부탁하여 옛 군영지 동쪽의 자갈밭 황무지를 얻어주었다.

소식이 황주로 온 지 2년(1082). 그는 그 황무지땅을 개간하여 그 곳을 ‘동파東坡’라고 하고 자칭 ‘동파거사東坡居士’라고 명명하였다. 소식은 동파의 가장 높은 곳에 손수 다섯 칸짜리 집을 짓고 ‘동파설당東坡雪堂’이라는 편액을 걸었다. 직접 개간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이 그가 지은 ‘동파 8수’에 잘 그려져 있는데, 이름난 시 이외에도 소식은 2300여 수의 시를 남기고 있다.

 

여기에서 소개하는 「동파」는 동파가 동파에서 죽음의 언덕을 넘어 절망과 배고픔을 겪은 후에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과 심경을 드러낸 시이다.

 

雨洗東坡月色淸

市人行盡野人行

莫嫌犖确坡頭路

自愛鏗然曳杖聲

 

비가 동쪽 언덕 씻어내고 달빛조차 맑은데

저자사람 다 지나가자 시골사람 나다닌다.

돌멩이 널린 언덕길 너무 싫어하지 마시게나

쟁그랑 지팡이 끄는 소리 나는야 좋다네.

 

옛 군영지 동쪽 언덕 자갈밭. 그 곳을 겨우 개간하였지만 언덕길 초입은 아직 큰 돌멩이들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험한 언덕길을 지나며 투덜거린다. 어느새 비가 자갈에 묻은 흙먼지를 다 씻어내고, 저자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도 다 사라진 달밤. 시인은 그 곳을 호흡하며 지팡이가 돌에 부딪쳐 내는 쟁그랑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인생의 돌밭을 경험하고 그 곳을 지나온 이의 마음에는 값진 흔적이 묻어 있다. 비가 내린 후 언덕은 물빛을 머금어 세수를 한 듯하고 그 곳을 비추는 달조차 맑은 빛을 뿜어낸다. 그 곳을 오가는 사람들은 발밑에 부딪히는 큰 돌멩이에게 불평을 쏟아낸다. 그러나 시인은 돌멩이에 자신의 지팡이가 부딪는 소리를 사랑스럽게 여길 줄 아는 경지에 이르렀다. 시인에게 돌멩이는 장애물이 아닌 정겨운 악기이며 자신의 길에 놓인 게송일 뿐이다.

비가 내려 말끔히 씻겨진 언덕, 맑은 달빛, 지팡이가 돌에 부딪쳐 내는 소리. 시인市人과 야인野人이 큰 돌들이 널린 언덕길을 보는 시각.

맑은 달빛 아래 동쪽 언덕길을 걷는 동파거사여. 당신의 지팡이가 돌에 닿아 내는 쟁그랑 소리가 930년 건너 저 너머에서 들려오는 듯합니다.

 

서경희∙성균관대학교 국문학 박사. 현 성균관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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