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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2013년 봄호)권두칼럼/고인환/어둠 속의 ‘작은 불씨’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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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2013년 봄호)권두칼럼/고인환/어둠 속의 ‘작은 불씨’를 위하여․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의 5년을 이끌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이른바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다. 아쉬움이 많다.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잡음이 들려온다. 많은 사람들이 허탈감에 빠져들었다. 이른바 ‘멘붕’ 상태를 호소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여기저기서 반성과 성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더불어 새로운 다짐과 각오의 목소리 또한 쏟아지고 있다.
우리는 반성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라는 성찰의 목소리가 넘쳐 난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답변이 녹록치 않다. 늘 ‘어떻게’를 건너뛰고 ‘앞으로는 잘 살아야지’라는 추상적 다짐으로 반성의 과정을 마무리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리고는 반성을 했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스스로의 삶을 다독이곤 한다.
구체적이지 않은 성찰은 결코 삶을 변화시킬 수 없다. 그렇다고 절실한 반성이 삶과 사회를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지속적이고 끈질긴 반성을 통해 자신과 세계를 조금씩 변모시켜 나갈 수 있을 따름이다.
어둠이 유난히 깊어 보인다. 하지만 ‘어둠이 없으면 빛이라는 비유’는 의미가 없다. 절망의 깊이는 희망의 밀도를 가늠하는 척도일 수 있다.
브라질 군사정권에 맞서 싸웠던 한 주교의 말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자네는 절대로 포기해선 안 되네. 사람이 살아 있는 한 재 밑 어딘가에는 작은 불씨가 남아 있는 법이고, 우리가 할 일은 그저 불어야 해…… 조심스레, 아주 조심스레 불고…… 또 불고…… 불이 살아나는지 보는 거야. 불이 다시 살아날지 말지는 걱정할 것 없어. 그냥 불기만 하면 되는 거야.”
개별 존재가 지닌 무력감으로부터 애써 도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할 수 있는 만큼 했다는 가식假飾에 속을 필요도 없다. 피할 수 없는 어둠, 공포, 무력감, 죄책감 등을 받아들였을 때 우리는 삶의 ‘맨 얼굴’을 대면할 수 있다. 타자와 나를 갈라놓는 심연에 섣불리 다리를 놓으려 하기보다는 고독 속으로 침잠하여 서로의 고독을 깊이 있게 감내하는 자세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철저히 무력하며, 우리가 대화에 관여하는 것은 우리와 함께 자신의 무력함과 모두의 무력함을 즐거이 경험할 수 있는 다른 이들에 대한 우정의 싹을 키워나갈 길을 찾아내고 싶기 때문이다.
시가 ‘철저히’ ‘무력’해 보이는 시대다. 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시를 통해 ‘무력함을 즐거이 경험할 수 있는’ ‘우정의 싹’을 키워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팔레스타인의 한 시인은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모든 이의 날개 밑에는 숨겨진 불꽃이 있다네
그 불꽃은 잘 간수해야 하지
불꽃이 번져 자신을 태워버리지 않도록
또는 그 불꽃이 꺼져 자신이 어두워지지 않도록
그것은 은밀한 불꽃
남이 그 불꽃을 알아챌 때는
오직 당신이 날려고 날개를 퍼덕일 때뿐
우리 모두의 ‘날개 밑에는 숨겨진 불꽃’이 있다. ‘불꽃이 번져 자신을 태워버리지 않도록’ 동시에 ‘그 불꽃이 꺼져 자신이 어두워지지 않도록’ ‘잘 간수해야’ 한다. 그리고 ‘날개를 퍼덕’여 날아올라 그 ‘은밀한 불꽃’으로 ‘남’에게 신호를 보내야 한다. ‘공감’의 날개를 달고 비상할 때 이 ‘불꽃’은 ‘사랑’이 되고 ‘희망’이 될 것이다.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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