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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겨울호)신작시/이순희/지구 견문기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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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희
지구 견문기 외 1편
살짝 지구별에 왔어
여행객 틈에 숨어서 다녔어
빌딩이 열대 밀림 같았지
아무도 나를 모르더군
이 곳 저 곳 어슬렁거렸지
누군가 파파라치처럼 카메라를 들이밀더군.
아마도 기념사진을 찍은 모양이야
편하게 여행하긴 다 틀렸어
사진을 인화할 때 내 모습이 보였고
벌집을 쑤셔 놓은 듯 지구인들이 왕왕거리는 통에
이 별을 구경하긴 물 건너갔어
이곳은 지구촌이라는 말이 유행인데
머지않아 우주촌이 생겨날지도 모르지
그렇게 되면 이곳 사람들이 내 별을 알아내서
사람 살 만한 곳이니 어떠니 떠들어 대며
지구의 밥상을 통째로 옮겨와야 하느니,
야단법석을 떨겠지
난 돌아가야겠어, 내가 태어난 별로
지구인이 무서워졌어
그저, 우린 먼 거리가 필요해
반짝이는 별들로 눈짓을 주고받는
외계라는 먼 거리
내 혀 속의 무수한 이 가시들
나 오늘 외로운 이의 심장에 가시를 찔렀네
더 이상 떨어질 바닥이 없는 사람에게
병들고 늙은 몸뚱이만 남았다는 하소연은
돌려쓸 줄 모르는 사람처럼 갑갑하였네
오죽하면 나에게 기별을 하였을까만
위로의 말보다 상처의 말을 뱉어버렸네
이제 곧 겨울은 목전이고
그는 외롭고 쓸쓸한 겨울의 바닥이 되겠지
아기가 엄마에게 사랑이 담긴 말 따라 배우듯
다시 말해주고 싶었지만
시간은 이미 지나가 버렸네
그는 이미 차갑게 저물었네
이순희∙2002 ≪심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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