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48호(겨울호)신작시/김예강/행렬 외 1편
페이지 정보

본문
김예강
행렬 외 1편
건기의 땅 코끼리 한 무리
코끼리 코끼리 사이에
어린 코끼리 숨겨서 이동한다
짧은 행렬이 풀잎같이,
허공이 한 무더기 풀을 먹어치우듯
길을 먹고 이동한다
사방은 고요하고 사방은 맹수가 잠들고,
사방은 맹수가 일어난다
일렬 종대였다가 횡대였다가 금세
어른 코끼리들이 어린코끼리를
사방으로 둘러싸고 기둥이 서고,
벽이 만들어지고, 지붕이 서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
뒤뚱뒤뚱 나아간다
함께 들었다가 내리는 다리,
코끼리는 코끼리의 곁을 지키고
어린 코끼리 바깥세상 보이지 않고
어미 코끼리 몸뚱이만 보고도 발이
밟히지 않고 한 마리 곁에 또 한 마리
한 몸인양 어른 코끼리 몸에 바싹 붙어
재걸음을 걷는다 느리지만 아름답다
서쪽 하늘이 붉어지고
한 걸음 한 걸음 출렁인다
호랑이 하마 같은 맹수들 함부로 하지 못하고
가만히 보고만 선 건기의 땅
시속 4키로로 가는 느린 걸음이
건기의 땅 길을 낸다
초록 고양이가 온다
정오에 초록고양이와 첫 대면이었다
울타리 곁 그 고양이는 일종의 토끼처럼 보인다
풀을 뜯는 토끼 대신 풀내음 흠흠거리는 초록고양이
초록 얼굴 초록 눈 초록 이빨 고양이는 내가 어젯밤 버린 빵조각일까
배고파서일까
비타민이 부족한 걸까
뜨거운 태양 아래 고양이 눈을 겹겹 바람이 휘돌아간
야생은 초식동물의 뿔이 자란다
가장 오래 시선을 꽃에게로 두어라
영혼을 적중할 바람에게 묻지 말아라
아주 가끔
더 먼 태양 쪽으로 숨어라
숨었다가 살짝
햇살에 널린 기다란 너의 그림자를 보아라
검은 수단자락을 덮고 누워라
새끼 밴 암사자가 새끼사자를 버리고
아프리카 저녁 석양은 오렌지 빛을 버린다
울음을 버리고 종이상자를 버린다
김예강∙2005년 ≪시와사상≫으로 등단.
- 이전글48호(겨울호)신작시/안숭범/당신이라는 모서리 외 1편 13.10.06
- 다음글48호(겨울호)신작시/박수빈/생일 외 1편 13.10.0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