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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겨울호)신작시/안숭범/당신이라는 모서리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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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3,249회 작성일 13-10-06 21:01

본문

안숭범

당신이라는 모서리 외 1편

 

 

 

우리는 점점 변온동물이 되었다

당신은 나의 모서리를 몇 개 더 만들었고

오로지 그 모서리를 감추기 위해

한 사연을 처음 보는 사연과 함부로 용접했다

무심한 눈송이들은 돌아다니며 사이를 만들었고

바람은 훼방 놓을 수 없는 거리를 청구했다

서로에게서 퇴근하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고

누우면 천정무늬가 모든 원인을 각색했다

돌연 물려받은 가난이 현행범으로 체포되었고

그러면 모서리들이 사라졌단 믿음으로

한동안 잡스런 노래를 수집하는 집시나

도굴된 문장에 밑줄을 긋는 수험생이 되었다

당신은 무고한 사연들 안에 새로운 양식의 성을 세웠고

낯선 윤곽의 모서리에 부딪쳐 보기 위해

또 나는 숱한 사이와 거리를 계측했다

장마가 끝나면 폭설이 오는 계절에서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남루한 기저基底가 되었다

서로에게서 서로의 부음을 얻어내기 위해

각자의 무덤 곁에 더 날카로운 모서리로 서던 날

우린 이제 죽음의 다른 경향으로 추서되었다

 

지금도 어느 사이와 거리에 서면

부를 때마다 다른 몰골의 유령으로 오는

당신이라는 아픈 모서리

 

 

 

 

 

걷다가 듣다가 보다가 멈춘다

 

 

 

장마가 온다는 예보와 첫 빗방울 사이를 걷는다

유월엔 강의 자리와 한 여자가 나로부터 실종됐다

가난해졌지만 가난해도 무관한 계절이 성큼 다가왔다

칠월로 가려는 유월에 헤드폰을 씌우고

오늘은 아침이 나를 걷는다

 

안개가 두런거리는 날, 1942년이면 더 좋은 뉴욕 할렘가 118번지, 보조개가 앙증맞은 여자와, 전쟁통에 팔다리가 날아간 사람일랑 멀리 두고, 비밥을 들으며 응큼하게 놀아나고 싶어, 가로등이 기억하는 어느 목마른 밤, 별빛은 강물을 의지해 사람들을 여울지게 하고, 사람들은 비밥에 의지해 잠결에도 빛나는 천국을 보는, 그때에도 싱가포르엔 포탄이 밤을 두드리고, 미드웨이섬엔 암호처럼 폭격기들 흥건할 테지,

 

아버지로 가는 청춘에 재갈을 물리고 걷는다

우산을 하늘가리개라던 얼굴을 발로 차며 더 걷는다

스승의 날과 무관한 선생들이 거룩해질 때까지 걷는다

유월의 자리로 가는 칠월에게서 헤드폰을 벗겨주며

오늘은 아픔이 나를 더 걷는다

 

작부들이 퇴근하는 새벽에서 여고생이 등교하는 아침 사이, 비슷한 모순과 부도덕의 힘으로, 재개발지구란 이명異名을 얻은 마을을 지나치면서, 전쟁터로 끌려간 시인이 왔고, 그 여자네 살구를 흔들던 바람이 어느 집 처마에서 오래 울고 있던 걸 봐, 나에 대해 기교있게 이를 갈던 사람들, 입석권을

끊자 덥석 나를 잡아당기던 고향에서 부르던 노래들, 어울리지 않은 맞선 이후 한층 투명해진 쇼윈도에 얼어붙던 시간들, 저도 모르는 곳으로 가는 바람을 따라나설 테지,

 

시멘트 보에 다다른 연어 떼를 생각하다 멈춘다

장롱 속에 칩거했음에도 마그네틱이 손상된 통장을 떠올리다 멈춘다

고향과 유년과 비밥을 미화시키는 출근과 출근 사이가 낯설어 멈춘다

그럼에도 몸에 깃들어 사는 간격과 거리와 속도가 신비로워 멈춘다

 

벗.겨.내.도.다.시.차.오.르.는.문.장.의.내.부.를.찾.을.수.있.다.면.

 

안숭범∙2005년 ≪문학수첩≫으로 등단. 시집 <티티카카의 석양>. 경희대학교 학술연구교수. EBS <시네마천국>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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