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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겨울호)신작시/성태현/아득한 등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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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2,446회 작성일 13-10-07 15:20

본문

성태현

아득한 등 외 1편

 

 

 

마지막 짐을 부려놓자 등이 가렵기 시작했다

창백하게 표정 잃은 등 뒤를 돌아본다

팔을 뒤로 돌려서 손바닥을 뒤집어 봐도

손가락 끝은 거기에 닿지 않는다

긁어주지 않으면 조금씩 굽어갈 잔등

어깨의 죽지뼈가 서로 맞닿아서

굳건히 다지지 않으면 서로 어긋날 척추의 중심

움푹 패인 그곳은 그늘진 사각지대다

늘 그곳이 가려운 까닭은

활짝 벌린 두 팔과 손가락의 품이 좁아서

내 몸이지만 그 깊은 복판을 감싸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숭이는 팔이 길어도 서로 털을 골라주는데

손길이 닿지 못하여 눈길만 머물러 있는 곳

혼자 병원에 다녀와서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밥을 짓는 아내의 등이다

석 달 만에 찾아간 고향집

냉장고에 얼려 두었던 조기새끼 몇 마리 꼼꼼히 챙기시는

늙은 어머니의 굽은 등이다

구부정하게 집에 들렀다가 서둘러 고시원으로 돌아가는

서른한 살, 내 아이의 등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안부조차 전하지 못하는

먼 산굽이 넘어 내 형제들의 등이다 그곳은,

밋밋하게 흘러내려 허전한 어깨

한순간 낡은 죽지마저 놓아버리고 싶은 저녁 무렵에

슬그머니 다가가 활짝 펼치고 싶은 등이다

 

 

 

 

극심한 갈증

 

 

비를 부르는 힘의 원천은 갈라진 입술에서 비롯되었다

고기압의 가장자리에 놓인 도안신도시 목원대 부근 공터에는 어제부터 내리는 비가 잡초 무성한 흙더미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밤 열한 시, 도로의 건너편에서 벙거지를 깊숙이 눌러쓰고 불안정한 대기를 흔들고 있는 사내가 있다 사내의 보폭은 짧고 무게중심을 잃은 만큼 비틀거리고 서성이는 만큼 밤은 깊어가고 시간이 갈수록 심중에 패인 기압골이 깊어간다

환하게 불 밝힌 무풍지대 편의점 내부를 살피고 있던 사내, 인적 없는 거리에서 순찰차 한 대가 경광등 같은 물보라를 번쩍이며 지나가자 기다렸다는 듯 질척한 불빛을 밟으며 8차선 도로를 무단 횡단한다 빈 주먹을 몇 번인가 폈다 오므렸다 하더니 비릿한 바람을 몰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선다 담배 한 갑 주세요

마른 입술의 모세혈관을 혼곤하게 적신 굵은 빗방울이 단지 해갈만을 위해 잠시 열어놓은 수문에서 철철 넘쳐 들어온다 젖은 나무벤치에 느긋이 주저앉아서 먼 마을 개 짖는 소리를 듣고 있는 그의 제방은 무너질 것인가 이제 곧 강풍을 동반한 열대성 저기압이 그를 지배할 것인데, 담배연기가 맹렬하게 상승기류를 타고 있으므로 피해상황은 쉽게 집계되지 않을 것이다

그로부터 석 달 전 사내는 마침내 담배를 끊게 될 것이다

 

성태현∙충남 서산 출생. 2008년 ≪시에≫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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