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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겨울호)신작시/유병록/다른 곳에서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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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4,132회 작성일 13-10-07 15:26

본문

유병록

다른 곳에서 외 1편

 

 

대문이 사라졌다

놀라지 않는다 대문이란 종종 사라지곤 하니까

 

그리고 집이 사라졌다는 걸 깨닫는다

태연한 이 공터에서

내가 산 적이 있긴 한 걸까

 

다른 곳에서

집이 사라진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유리창에 매달린 불빛도 거실 바닥에 굴러다니던 권태도 냉장고에 넣어둔 배고픔도 모두 사라졌는데

 

눈이란 믿을 게 못 되지

 

이 근처에 대문이 서 있을 거야 저 높이에 창문이 열려 있을 거야 그 위에 붉은 지붕이 매달려 있을 거야

 

희망은 얼마나 빨리 하나의 세계를 건설하는지

 

다시 집을 짓고 그 안으로 들어가 불을 켜고 밥을 짓고 여기가 몇 번째 집인지 묻지 않고

살아갈 뿐이다

어제는 무덤이었고 오늘은 집이었으며

다시 무덤이 될 이곳에서

 

 

 

 

문 너머에

 

 

희미한 윤곽으로 남은

자상刺傷

안으로 잠긴 문

 

저 문을 열고 들어간 자가 있다 비좁은 방에 들어가 밖으로 나오지 않는 자가 있다 두드려도 대답 없는 문 너머에서

 

그는 아직도 악몽을 꾸다 깨어날까 아직도 빈방에서 홀로 비명을 지르다 숨 쉬는 법을 잊어버리곤 할까

 

귀를 갖다 대면 들리는 숨소리

 

좀 더 견고한 문이 필요해 더 캄캄해지면 잠들지 않고서도 간밤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야……

 

그가 찾아왔을 때

나는 조그만 구덩이 하나 갖고 있지 못했으므로

나만이 유일한 매장지였으므로

 

자상의 흔적은

그를 들여보내고 나서 밖에서 잠근 문

 

저 문 너머에는

어둡고 비좁은 방이 있다

무덤처럼

그 흔한 창문 하나 없이

 

유병록∙201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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