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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겨울호)신작시/윤은영/성장통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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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영
성장통 외 1편
―옥탑방의 별빛 경향
밤하늘은 날마다 밥알을 주워 삼켰다
밥솥 하나 이끌고 옥상에 방을 얻어 간 날
후드득 눈물이 내려앉는다
상자 몇 개 올려놓고 아베는 떠났다
주머니에는 쓸어 담을 동전이 없어 홋홋했고
이따금 땅바닥을 서성이던 빈 병들만이 쓰라린 빈속을 토닥이며 울어주었다
누군가 보라색을 좋아하면 외롭다 했다
갈라진 손금에서 간신히 뻗어간 잔금들이
운명의 깊은 우물로 내려가 겨우 물을 길어 올리는 밤
학교가 파하면 골목을 쓰다듬으며 빈 병을 주웠다
훼밀리주스병이 제일 달았다 사탕 같은 무게로
이따금 깨진 빈 병의 파편들도 눈을 찡긋해 주었다
하늘로 오른 유리병들이 슬어놓은
반짝이는 별의 알들로 가득한 밤하늘
새벽까지 깜빡깜빡 목소리 갈라지곤 하던 별들이 담긴 서쪽하늘 그릇의 고봉
지금도 가끔 뜨거워지는.
학원별곡․1
―통통하다는 것
학교 앞 문방구를 들러 백 원짜리 인도네시아산 웨하스를 까먹고 오다가 비둘기 죽은 시체의 터진 내장 핏빛 같은 가방끈이 떨어졌고, 학원 입구에서 며칠 전 놓아두고 간 대수롭지 않은 우산을 보았고, 아직 학원은 빈 채로 땅콩 껍질 같은 얇은 적막이 떨어지고, 원장님은 내 배꼽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모니터에 얼굴을 처박고 있고, 목에 걸린 휴대폰은 아직 폴더폰. 삼성에 다니는 아버지가 있지만 스마트한 강으로 건너는 뱃머리에 버티고 있는 엄마가 있어 적중기출 문제집을 열 쪽씩 푸느라 강가에서 훌쩍이는 별빛, 이 밤, 눈을 홉뜨는 가로등. 아차, 가방 앞주머니 파리바게트에서 산 소시지빵을 두고 괜히 우울모드. 학교 급식우유는 역겨우니까 제티를 타서 마셔야지. 애들은 수시로 홀짝거리는 내게 뚱뚱보라 놀리지만 괜찮아, 내가 내는 학원비로 월급 받는 비실비실한 초짜 국어샘은 나보고 통통할 뿐이라고 비위를 맞춰주니까.
햄버거와 피자와 치킨은 왜 날마다 먹고 싶은 거지?
윤은영∙2010년 ≪미네르바≫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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