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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겨울호)신작시/김하경/굴레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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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경
굴레 외 1편
각설이 옷 입은 남자가 리어카에서 엿을 판다 호박 엿판 조청이 응고되는 시간 단맛이 주룩주룩 녹아내린다 오일장을 돌고 돌다 되돌아온 동전이 남양 분유통에 무겁게 담겨지고 나이 찬 아들은 찌를 매단 대학문을 바라본다
중환자실 아내 삶의 끄트머리에서 바싹 마른 입술로 안개 속을 헤매고 있다 한없이 가벼워진 몸 밥 때 잃는지 오래다 쿨럭거리는 기침소리에 숨을 몰아쉬던 겨울 목숨을 담보한 알코올 냄새가 중환자실로 일반병실로 종종거리고
전 속력으로 달려든 겨울밤 겹치고 겹친 어둠이 옥탑 방에 먼저 자리를 잡고 찰찰찰 가위질한 하루를 가계부에 적으면 밤을 모르는 아들의 얼굴엔 보름달이 환히 배인다 마감뉴스 끝난 TV 앞에서 기도하는 남자 하늘에 내일을 대롱대롱 매달던 날
가끔씩 리어카도 급정거 할 때가 있다 혹한을 견딘 끄트머리 시간 너무 울어서 속이 빈 아내는 언제나 가벼웠다 가위를 번쩍 들어 하늘을 가위질한 아침 남양 분유통에 사투리 질펀한 흥부가가 떨어지고 미끼로 굳은 조청 단맛이 리어카를 끌 때 굴레는 슬슬 움직인다 멈췄던 바퀴도 굴러갈 때가 있다
시간의 끝물인 줄 알았던 누런 호박 바퀴를 닮은 단맛은 환하다
s-pin
두껍게 신은 안전화도
3미터 높이에서 압류되었다
골절된 살을 열어 s-pin 고정시킨 오후
뼈 뚫는 아픔보다 기브스 후 목발보행이 불편했다
아파트 현관문에 s-pin처럼 압류장이 붙었다
끌어낸 살림살이 위로 빗줄기는 사선을 긋고
목발 짚는 양팔의 중심 휘청거렸다
폭탄 부도로 붙은 압류장 발목의 예리한 높이의 흔적이다
승용차 유리에 붙은 2010 타경 3515가
쾅쾅 내 가슴에 경매번호가 덕지덕지 붙는 오후
무리한 아파트 공사의 비밀
누락된 서류에 상처를 딛고 거리를 나설 때
내줄 것 다 내준 답답함에 흘린 눈물이 사약보다 더 쓰다
발열과 발적이 심한 반흔구축을 바라볼 때
주인을 기다리는 살림살이는 골수염을 앓았다
어둠을 앞세워 온 등기필증
내 발에 번진 골수염의 높이도
목발보행 하는 거리에서 구름은
우물 하나씩 만들어 주고 있다
p-sin*를 제거한 오늘
쪼글쪼글 가늘어진 발목에
생살은 가렵게 차오르고 있었다
*s-pin:핀, 발목 골절시 삽입하는 의료용품.
김하경∙2012년 ≪열린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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