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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겨울호)기획/‘대밭’ 시인 이광웅/대밭 외 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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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웅
대밭 외 8편
대밭에 살가지 쪽제비 시글시글 댓가지를 분질러놓으며 댓잎사귀 짓이겨놓으며 바스락 소리 밤새 끊어지지 않는 밤이 깊었다. 새암 두덕에 두룸박 소리 긁히고 부딪히고 쌀 씻는 소리랑 큰동세 작은동세 주고받는 목소리 뒤세뒤세할 때까지 한쪽 귀퉁이 이불귀를 끌어 잡아당겨가며 대밭을 떠내밀며 잠을 설쳤다.
사랑채에서 울려오는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무섭고 선보러 오는 사람네의 수다스런 언변 뒤에 감추어 둔 비밀스런 험상들이 무서워서 얼굴에 껌정을 칠하고 대밭을 빠져나가 북산으로 달려나간 큰고모의 안부가 걱정돼서 할머니는 새벽부터 물레질이 잦았다. 새떼가 지나며는 실자새의 윙윙 소리는 퍼지고 퍼져서는 장지문을 다 흔든 후에 벽장문을 다 흔든 후에 부엌에까지 들어가서 새로 회삼물한 부뚜막을 흔들었다.
용수를 박고 막 떠온 전내기를 좋아하는 만주 아저씨가 오는 날은 우리 동네에는 있지도 않은 유태인 무서운 이야기는 끓는 라디오의 군부대신 연설처럼 열기가 올라오고 멀고 먼 옛날 절의사진絶意仕進에 잠적불출潛跡不出하셨다는 할아버지네 할아버지네 지하수처럼 흘러간 애사에 가슴 아파하는 날은 밀밥을 먹으면서 타국 가서 왼 식구가 세한에도 이불 없이 웅숭거리고 뼈 마디마디 곱았다는 사랑방에 들어 어느새이 괭이처럼 코를 고는 오직 아저씨를 위하여서 어머니는 나를 불러 대밭에 가서 술국 끓일 명아주 잎을 따게 했다. 지는 햇빛 속에 바람 소리 속에 섞여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는 대밭은 나의 상아탑이었다.
해방 직후 팔봉 지서장을 살은 육촌 재종형이 인공 때 대밭을 빠져나가 남쪽 어딘가로 도망치던 구름 낀 밤이 있었고 해방되기 전부터 공산당을 해온 오상리 아저씨가 수복 때 대밭을 빠져나가 북쪽 어딘가로 도망치던 추적추적 비 내리던 밤. 다음날이면 언제 그랬냐고 말짱허니 갠 하늘이 되어 눈부시게 해가 빛났다. 땅거미 진 저녁이 내리면 어느새 이 대밭에 자러 들온 참새떼가 짹재르짹재그르 떨어지는 햇빛 받고 시냇물 흐르듯이 끝없이 울어대고 까막까치가 또 끝없이 짖어대고 볼먹은 부엉이의 울음소리가 보태어 자동차의 이 소란은 극한 대낮의 홍수만큼 시끄러운 것이었다. 지금은 없는 그 새 나라의 대밭이 그립다.
꿈
요새
나는
밤에
간음의 꿈을 만난다.
억척스레 살 궁리에 매달리다 보면
몽상에 지치고
내 심중을 짚어보는 이가 아무도 없는
깊은 밤에
나는
간음의 꿈을 만난다.
꿈의 출연을 담당한 히로인―
공중 곡예사의 전력을 가졌다는 여류 소설가,
호미자루 손을 가진 무당 할머니,
또는, 생판 낯모르는 젊은 여자…… 확실히
종잡을 수 없는 인물들.
깨어나서도 퇴락한 고가나
천연색의 아름다운
강과 들에 펼쳐지는
지저분한 간음의
꿈을 쓰다듬는다.
무엇 때문일까.
생업이 떨어져나가서 그럴까.
집이 없어 그럴까.
대낮에도 악몽같이
압박해오는 것이 있고
천식을 앓는 것같이
숨이 차는 나의 생활
천식 같은 밤의 휴식시간에 손가락 사이 부서지는 꿈의 분말을
입김 불어 날리어도
이부자리 무거운 밤.
요새
나는
밤에
흥건히 땀에 적시이고
지저분한
간음의
꿈을 만난다.
함바집 식탁
시대 속에서 어제의 편력은
떨어져나간 별일 뿐
밤 가운데 사라진 별똥별일 뿐.
해질녘의 내가 쉼터를 구하지 못하여
낯선 광야, 낯선 밤을 무겁고 고단한 잠 벗지 못하고
아무 데나 쓰러진 후
잇대어 만나게 되는 것
항행하는 유령의 배와
피냄새 나는 우리 역사
노다가 현장에
함바집 식탁
맛있는 국밥.
유독한 이슬 젖은 고단한 잠자리에서
가을 풀잎사귀 묻어 온 옷치레
살가죽에 감기어도 이제 그만 내 것일 수 없는 옷가지를 떨어뜨리고
칭찬 받는 소년이 되어 수줍어진 내 앞에
상봉의 눈물 적셔 내려놓을 그리운 물결의 너울 속
항행하는 유령의 배와
오래 두어 두었던 내 몫의 보자기,
새 옷에 얹힌 돈지갑.
조변을 치르신 할아버지들 꿈속에 나오시어
여러 마리 송아지 가운데
살찐 송아지 끌어다가 도살케 하여
닳아지는 목숨의 깜박이는 등잔에
회생의 기름방울 채워주시고 나서
쓸쓸한 바람처럼 되돌아가신 빈터.
빈터에서 만나게 되는 것,
항행하는 유령의 배와
피냄새 나는 우리 역사
노다가 현장에
함바집 식탁
맛있는 국밥.
시대 속에서 어제의 편력은
떨어져나갈 별일 뿐, 밤 가운데에
사라진 별똥별일 뿐
오늘같이 아파하는 비바람 앞에
방전을 일으키고 숨는 하늘 뭉개지는 먹구름 아래
꺼져버리는 성냥불 잇대어 그으며 있는,
고향 찾아 집 떠난 소년의 의지뿐…….
의지로 맞는 밤,
이슥해지는 밤일수록
임시방편의 잠자리 꿈에 나오는
항행하는 유령의 배와
피냄새 나는 우리 역사
노가다 현장에
함바집 식탁
맛있는 국밥.
보충수업 10년
교사의 길이란
구절양장보다 어려운 밤길
여우한테 홀려 가는
보충수업의 길이다.
보충수업의 길 가기 싫다.
목이 쉬어 가는 밤길 발목 아프다.
하루에도 열 번이나 작파하고 싶은 마음-
난작 인간 식자인의 길이 아닌
노력에 따른 성과 없이
입시제도의 개혁 없이
여우한테 홀려서 한평생 걸려 있는 이 길,
10년 동안 형광등 불빛 받아
눈비같이 자욱한 백묵가루 날린다.
강의 한 시간에 담배 두 갑 값 줍기 위해
구절양장보다 어려운 밤길
걷고 걷는다. 제자리걸음이다.
보충수업비는 불지 않고
머리 위에 수부룩히 백묵가루 쌓인다.
소년들의 성장을 위해 가르친다는 기쁨
교직자의 사명감
다 잃어버렸다.
애초부터 부여받지 않았다.
백묵가루 날리는 형광등 불빛 아래
꽃 한 송이 피어날 마음 한 조각 없다.
새 한 마리 지저귈 마음 한 조각 없다.
모두 다 태엽을 감아놓은 기계와 같고
심중에 남겨놓은 말 한 마디 없다.
태엽이 닳아지면 될 것이 무엇일까?
소년들의 성장을 위해 물려줄 수 없는 이 길,
생명한테 죄지으며 여우한테 홀려서
목이 쉬어 가는 밤길 가슴 얼어붙는다.
사회 참관
슬픔의 바다에
빛이 뛰논다.
슬픔의 바다에
새가 난다.
아이들을-
설운 눈빛이 눈에 걸리는 아이들을
두고 끌려온 중년 앞에,
시대의 격랑을 맞으면서
식민의 땅, 감옥에서 감옥으로 끌려다니는
가슴앓이의 중년 앞에,
유년과도 같다는 생각의
만년과도 같다는 생각의
한 떼의 새가……
한 떼의 빛이……
징역 생각난다
햇빛 보며 감탄하게 될 때,
징역 생각난다.
끝없이 이어진 길, 감감한 길의 끝 바라다볼 때,
징역 생각난다.
담배에 성냥불 그어당길 때,
징역 생각난다.
커피잔에 커피 따를 때,
징역 생각난다.
삼겹살에 소주 마실 때,
징역 생각난다.
그슬린 냄비에 라면 끓일 때,
징역 생각난다.
그릇 씻을 때,
징역 생각난다.
흰 변기 바라다볼 때,
요석 낀 뼁끼통
대신 보이고
그래
징역 생각난다.
그때마다
그 모든 순간순간마다
철렁
가슴 내려앉을 그때마다……
그리운 님이 되어,
못 견디게
통일조국
그리워진다.
수선화
내 생애에서의 영원이란
그 해 봄
내게 머나먼 압록의 강물같이나 바라뵈던 복직이
명절같이나 찾아와
떠나야 했던 교직에 또 몸담아 살면서
귀여운 소년 소녀들에게 평화로이 우리 국어를 가르키던
그 학교
그 교정
그 화단 가운데
수선화 피인
갠 날이다.
수선화같이
혀끝으로 봄을 핥으려는
꼭이나 수선화의 생리를 지니인 사람을 흠모하기 비롯한
그 해 봄
그 갠 날이다.
내 생애에서의 영원이란
달리 마련이나 있을 것이 아니어서…….
빈 운동장 끝
그 해 봄
바람 많아 섧게도 꽃대 흔들려쌓는
한결 감옥에서 그리울, 한결 지옥에서 새로울…….
수선화 피인 갠 날이다.
목숨을 걸고
이 땅에서
진짜 술꾼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술을 마셔야 한다.
이 땅에서
참된 연애를 하려거든
목숨을 걸고 연애를 해야 한다.
이 땅에서
좋은 선생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교단에 서야 한다.
뭐든지
진짜가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목숨을 걸고……
달동네 꽃동네
뼈빠지게 일하면서도
생기는 것은 없고
그저 남 좋은 일만 하다가
병들고 죽어가는-
인정 넘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 부비며 모여 사는 동네이라서
그 이름도 어여쁜
우리의
달동네 꽃동네.
이광웅∙1940년 전북 익산 출생. 1958년 남성고등학교 졸업. 원광대학교 국문과 졸업. 1971~75년 원광종합여고 재직. 1974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 1976~82년 군산제일고등학교 재직. 1979년 원광대학교 대학원 졸업. 1982년 ‘오송회’ 사건에 연루, 6년 감옥생활. 1985년 첫시집 <대밭> 출간. 1989년 두 번째 시집 <목숨을 걸고> 출간. 1987년 군산 서흥중학교에 복직. 1989년 전교조 가입으로 해직. 1992년 세 번째 시집 <수선화> 출간. 1992년 초대 교육문예창작회 회장,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역임. 1992년 12월 22일 지병인 위암으로 투병하다가 운명. 유족으로 아내 김문자 여사와 1남 1녀. 2008년 11월 25일 ‘오송회’ 사건 전원 무죄 판결. 2011년 ‘오송회’ 사건 피해자 대법원 국가 배상 150억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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