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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겨울호)신작시/김인자/횡계리橫溪里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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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3,732회 작성일 13-10-0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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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계리橫溪里 외 1편

 

 

계엄군처럼 마을을 점령하는 개코원숭이를 본 적 있는가

툭하면 횡계리에 출몰하는 안개가 그러하다

언제 초록으로 푸르렀던가 찬란한 햇살이었던가

지워진 길 위로 비상등을 켜고 유령처럼 흘러다니는 자동차들

전속력으로 질주했으나 닿을 수 없는 허황함이 허공을 가른다

안개의 입자가 집과 사람을 후루룩 마신다

흰 복면을 한 자작나무도 환한 어둠에 묻히고

산그림자 젖은 제 무릎 덮을 때

얼룩만한 진실도 없다는 듯

인간의 길에 새 한 마리 납작 깔려있다

홀연히 오는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변화라 했던가

바람의 조사가 끝나자 일제히 시작되는 안개의 조문

선자령 고원에 구금되어서도 끝내 희망을 놓지 않던

할미꽃들도 조문행렬에 합류한다

그윽하여라 가슴마다 봉우리마다 하얀 무덤들

당혹스럽다 가혹하리만치 저 냉정한 흑백

아무도 덮을 수 없는 것을 안개는 덮고 묻는다

생이 영화의 마지막 자막처럼 대관령 옛길을 내려간다

계절이 바뀌면 비로소 고립무원에 설국雪國을 건설한 것이

안개였음을 알게 되리라

상처가 깊을수록 영혼은 펄럭이게 마련

타올라보지 못한 자는 끝내 그것이 왜 불인지 알지 못하리

안개에 취해 그리운 이름 부르며 대관령 넘을 때

칙칙한 그늘이라도 언제든 오겠다는 헛맹세 말고

다시는 올 수 없다는 인사도 연습해 두어야 하리

이곳은 안개와 바람과 눈의 주민이 거주하는 횡계리

대관령 면사무소 지나 밀린 엽서를 우체통에 넣고

하나로 마트에서 하루치 생을 봉지에 담는다

문 밖에는 여전히 내 슬픔 쓰다듬어줄 촉촉한 안개

 

 

 

 

 

 

 

 

쓱싹쓱싹 칼을 갈았다 냅다 머리를 가격당한 우럭이 정신줄 놓은 사이 살점을 꽃잎처럼 여몄다 식구들이 웃으며 맛있다고 했다 살생죄에 누적 포인트를 적용한다면 판관判官 없이도 나는 대역 죄인이나 이 모두가 백성을 위해 저지른 역모逆謀니 죄 없는 자 내게 돌을 던지라거나 정상참작을 바란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죄가 있다면 아줌마라는 죄 아내라는 죄 엄마라는 죄 조사하면 다 나올 테지만 신이여 눈감아 주소서 고백하건대 힘이 장사인 꽃게를 박스째 가져 와 집게 벌렁대며 바다로 보내달라 애걸복걸하는 놈을 쥐도 새도 모르게 찜솥에 넣었나이다 간장에 절였나이다 능지처참했나이다 아시잖아요 날벌레 한 마리도 벌벌 떨던 때가 제게도 있었다는 걸 이 죄를 어찌 하나요 변호사를 선임할까요 내 입보다 내 식솔들의 입을 위해서였다 한다면 비겁죄로 가중처벌 받을까요 그도 아니면요

 

 

 

강원도 삼척 출생, 198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겨울 판화>. <슬픈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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