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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겨울호)신작시/변종태/현장부재증명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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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부재증명 외 1편
난 화장실에 앉아 있었다. 전화벨이 감정 없이 울리는 동안 난 화장실에 앉아 있었다. ‘생각하는 사람’의 기울기로 만유인력의 법칙을 증명하는 중이었다. 생生과 사死에 대한 사유의 계단을 내려가는 중이었다. 무언가를 먹으면 싸야 한다는 것과, 태어나면 죽어야 하는 것 사이의 상관관계를 헤아리는 중이었다. 그 시간에 전화벨이 울렸을 뿐이다. 전화벨이 울리는 사이사이에 들려오는, 팝송의 아지 못할 가사를 들었을 뿐이다. 존바에즈의 ‘도나도나’가 간간히 들려오고 있을 뿐이었다. ‘송아지들은 도살장으로 끌려가지만 그 이유를 모른다네. 하지만, 누구든 자유를 소중히 여긴다면 제비처럼 나는 법을 배워야 한다네.’* 도나도나도나, 바에즈가 참 청승맞게 불러대는 그 노래를 비집고 전화벨이 울리는 줄은 몰랐다. ‘주인이 말했네, 불평일랑 그만해. 누가 너더러 송아지가 되랬니. 왜 당당하고 자유로운 제비처럼 날 수 있는 날개를 달지 못했니.’* 전화벨이 들리지 않는 화장실 창문을 넘어드는 노랫소리, 묻지 마라. 왜 당당하게 전화를 받지 못했는가. 난 단지 화장실에 앉아 노랫소리를 듣고 있었을 뿐이다. 도나도나도나돈.
*존 바에즈Joan Baez의 「Donna Donna」 가사에서.
초록섬
우도엘 다녀왔습니다. 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얼른 우도를 주머니에 넣고 와버렸습니다. 지도에서 사라진 우도, 집으로 오는 길은 축축했습니다. 바닷물을 뚝뚝 흘리는 섬, 우도를 잃어버린 바다가 꿈까지 찾아와 철썩거립니다. 우도를 내놓으라고 호통을 칩니다. 헌데 아무리 주머니를 뒤져도 온데간데없습니다. 바다는 더 세게 으르렁거리고, 꿈자리가 사납습니다. 주머니를 뒤집어보니 작은 구멍 하나 나 있습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어디선가 빠뜨린 모양입니다. 그래도 바다는 물러가지 않고 밤새도록 으르렁거립니다. 옆구리를 철썩철썩 후려칩니다. 지도에, 파랗게 출렁이는 바다에 초록의 사인펜으로 가만히 섬을 그려 넣습니다. 금세 파도가 잔잔해집니다.
변종태∙1990년부터 ≪다층≫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멕시코 행 열차는 어디서 타지>, <니체와 함께 간 선술집에서>, <안티를 위하여>, <미친 닭을 위한 변명>. 제주대학교 박사과정 수료▪현, ≪다층≫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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