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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겨울호)신작시/박병두/소풍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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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외 1편
갓바위로 소풍 가면
술래잡기, 보물찾기를 하다가
비를 맞아 젖은 도시락 먹으며
우정을 키웠다.
교련복을 입고 행군하여
우황리 앞바다에 도착하면
무거운 혁대 벗고 수통의 꼭지 열어
바닷바람을 맞고 땀을 식혔다.
부글부글 국물이 끓는 포장마차에서
떠나간 여인의 이름을 부르면서
우리는 사연을 키우고 추억을 남겼다.
곤곤한 술기운들로 무서운 화학선생님 곁으로
소주잔 건네면, 봄날의 소풍은 만점이 되었다.
이별하고 싶지 않은 그리운 것들이여,
공룡화석이 남아 있는 그곳은
지금은 관광지가 되어 서울사람들을 불러모은다.
기러기들이 떼를 이루던 우황리 해변
그곳으로 소풍 가고 싶다.
대흥사에서
여장을 풀고 두륜산 입구에서
안내지도를 펼치면서
밀려오는 생각들이 겹치기를 반복한다.
시나브로 영상들이 스쳐 지나간다.
울창한 긴 나무들 사이로 걷다 보면
신비한 대흥사만의 이야기를 만난다.
서로 부딪히고 빛을 숨겨
내 여린 살갗을 보호하고
바람 불어 차가운 냉기를 막아주던
대흥사 천변에 둘만이 앉아 있다 보면
지나가는 모든 것들은 평화롭기만 해서
마음의 끝자락 묻어둔 여정이 아닐지라도
긴긴밤 대흥사는
그리운 이들의 이름을 불러내고
함께 걸어오지 못한 이들을 불러낸다.
산면을 두르는 청청한 바다들로
붕어새 우는 종소리 깊어
비구니 스님은 새벽을 알리고
서둘러 아침을 여는 대흥사 암자
흐느껴 울기라도 하듯
떠날 사람들을 위한 목탁소리
긴 장음으로 퍼져갈 때쯤이면
쓰러져버린 옛일들을 잊게 하고
만나지 못한 이들에게
긴 편지를 쓰게 한다.
박병두∙전남 해남 출생. 1992년 ≪월간문학≫, ≪문학세계≫, ≪현대시학≫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시집 <우리 이제 사랑이란 말을>, <오늘은 당신의 생일입니다>, <낯선 곳에서의 하루>, <해남 가는 길>. 장편소설 <유리 상자 속의 외출>, <그림자밟기>. 수원문학상, 경기문학상, 아주문학상, 고산문학상, 이육사문학상, 전태일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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