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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겨울호)신작시/손현숙/느림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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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2,055회 작성일 13-10-06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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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 외 1편

 

 

 

비 오신다 땅속으로 물길 열린다 비 맞으며 바람에 나뭇잎 반짝거린다 당신, 발 젖었니? 지느러미처럼 흔들리면서 비 내리는 지금 창문 열어 턱 받치고 바람 본다 여기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나라 나뭇잎 한 장 한 장 배를 뒤집는다 오래 기다려서 둥글어진 무릎처럼 해가 지고 산등성이 나른하게 등허리 펴고 눕는다 아침에는 안개가 발목을 감고 저녁이면 사람의 기침도 사라지는, 엉겁결에 여기 와서 짐 풀었다 하루를 일찍 열고 일찍 닫아서 어둠은 한 땀 한 땀 밤을 깁는다 더러는 캄캄해서 더 잘 짚이는 것들 무작정 날 지나갔던 발목도 보이고 어리둥절 풀어버렸던 새끼손가락도 괜찮다, 물비린내 짙고 푸른 어스름 때 물풀처럼 환한 소리, 발자국으로 돌아오는

 

 

 

 

 

구름 한 칸 더 높은 곳에서

 

 

 

꽃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치네, 한눈파는데 손 전화다 다짜고짜 누가 운다 낯설고, 낯익은 여자 목울대도 낡아서 발발 떨리는 탁성 온몸의 물기 모두 쏟아내듯 온 힘을 다해서 운다

 

이상해라, 저 울음 어느 구름에서 비 터진 후 하늘처럼 끝이 말갛다

 

이른 여섯 해 동안 억수로 수다 떨었다는데 “원순아, 경애야, 밥 문~나?” 우리 아버지 가셨을 때도 “가소, 마~!” 장군 같았던 우리 엄마 늙은 딸년 귀 붙들고 두 다리 뻗어서 발 비빈다

 

생에 처음 터진 울음처럼 섭섭하게 “잠자다… 원순이가…” 봉숭아꽃 손톱에 꽃물들이기로 새끼손가락 꼬부라트려서 걸었다는데 구름 한 칸 더 높은 곳, 눈짓으로나 너무 오래는 말고 꽃잠 한 잠 자고 나서 바람쯤에서……

 

손현숙∙서울 출생.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사진 산문집 <시인박물관>. 평사리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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