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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겨울호)신작시/이기인/저녁에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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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인
저녁에 외 1편
안경을 읽어버린 구름 눈시울을 닦아준다
고추잠자리보다 가벼운 이름을 창문에 쓴다
잃어버린 이름의 나뭇잎을 고른다
푸른 액자 속에 깊은 서랍을 만든다
늦게 오는 바람을 쫓는다
이마에서 자라는 구절초를 꺾어 화병에 꽂는다
우우우 눈을 감고 우는 전화를 받는다
어어 그래 주름살이 버릇처럼 웃는다
좁은 계단에 앉은 화분들의 첫사랑을 본다
흔들리는 술집에 앉아 흔들리지 않는 창문을 본다
빈 자리 홀수의 잔들을 기다린다
저녁에 보랏빛 의자에 앉는다
논
논의 빛들이 늘어나듯이
출렁이는 아버지 논이 아이들 논으로 기울 듯이
하얗고 노란 하늘이듯이
하얀 새가 위를 비우고 날아가듯이
오래된 수레가 구르듯이
머리가 짧은 농부가 논길로 오듯이
메뚜기가 벼이삭을 잡고 뛰듯이
쌍비읍 모양 논으로 서둘러 걸어가듯이
벼이삭이 머슴살이 빛을 반사하듯이
낭핍을 모르는 찌그러진 주전자를 쥐듯이
막걸리가 흐르듯이
낫에 비친 축일 바람이 스치듯이
화색이 겹치듯이
이기인∙200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 <어깨 위로 떨어지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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