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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겨울호)신작시/이영주/은신처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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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
은신처 외 1편
저녁이 바뀌면 목이 부어오른다 계절을 대비하기 위해 팽창해가는 것이다
스무살 이후부터 모두를 만나려고 커졌다 목소리를 비워두고 기다렸다 밤이 지나고 나면 자꾸만 검은 피들이 쏟아졌다
벽에 기댄 노인이 눈물처럼 호흡을 줄줄 흘린다
몸에서 물이 빠져나간 자리에 앉아 기다린다 이제 내 손으로 들어오는 모든 피는 부드러워질지도 모른다 잡으면 스르륵 미끄러지는 뱀
고양이
내가 핥아줄 수 있는 것은 등뼈.
바람이 오면
공중이라는 짐승 한 마리가 내 혀를 자른다.
말없이
피곤하면 슬퍼지고
붉은 살덩이 같은 심정.
자기학은 왜 희랍어로 되어 있을까.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을 꽉 쥐어야만 하는 일의 긴 노역.
입을 벌리면 바람이 올 때
공중이 될 수 있나.
너의 등을 떠날 수 있나.
옛 짐승들은 공처럼 바람 속을 뒹굴었다고 한다.
유랑을 하기 위해서는
바람을 이겨내야 한다.
뼈가 둥글어져야 한다.
이영주∙2000년 ≪문학동네≫로 등단. 시집 <108번째 사내>, <언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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