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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겨울호)신작시/이태규/연꽃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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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규
연꽃 외 1편
절간 주차장 입구에
‘만차’라고 쓰여 있기에
차를 밖에다 대고 들어갔다
주차장에 들어가 보니
텅텅 비었다
절간양반들도 거짓말을 하는구나
중얼거리며 법당에 들어가 큰절을 하고
부처님께 소원을 빌었다
돌아서 나오려는데
부처님이 뒤에서 한 말씀 하신다
‘이 사람아, 시주는 하고 가야지’
나도 돌아서서 대답한다
소원 성취하면요
불이문을 나오려는데
뒤에서 누가 휙 하고
모자를 낚아챈다
얼른 연꽃이 받아쓰고 빙그레 웃는다
부처님은 연못에만
만발하고 있었다
투명함에 대한 오해
집을 수리하다가
마당에 버려진
깨진 유리창을 보았다
유릿날이
나를 겨냥하고 있다
늘 반질거리는 것에 대하여
조금 비판은 했지만
그렇게까지 원한 살 정도는 아니었는데
내 작은 빈정거림에
속이 많이 상했었나 보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유리조각을 주워 재활용봉투에 넣는다
며칠이 지났을까
그 풀숲에서 아직도
살기를 풀지 않은 유리파편들을 보았다
유리는 늘 투명해서
속도 없는 줄 알았는데
보이지 않는 것의 속보다
보이는 것의 속이 더 깊었다
이태규∙2001년 ≪문학공간≫ 신인상. 시집 <향기의 나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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