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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겨울호)특집/특집|현대시의 구술성과 문자성․2/강정부/구술성의 현대적 재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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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3,302회 작성일 13-03-20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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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현대시의 구술성과 문자성․2

강정부|구술성의 현대적 재배

 

 

1. 평민문학을 바라보는 시각의 다양성

이 글에서 평민문학이 문제시되는 이유는, 양반·귀족문학과 구별되는 문학을 지칭하는 평민의 문학이 1970년대 진보적 민족문학진영에서 민족문학의 전통으로 재배치되었다는 점 때문이다. 이러한 평민문학은 백성들 사이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적이고 소박한 노래인 민요, 마을 사람들이 다함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마을굿 등을 포함하는 풍물, 무당이 굿을 할 때 부르는 무가, 그리고 고수의 장단과 추임새에 맞추어 소리꾼이 극적인 내용의 긴 사설을 소리·아니리·발림으로 엮어가는 판소리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써 주로 양반·귀족과는 계층적으로 구별되는 평민이 창작·향수하던 장르를 의미한다.

문제는 주로 근대 이전에 작가의 이름 없이 구전된 이러한 평민문학이 1970년대 이후 진보적 민족문학진영에서 전통의 명분으로 다시 창작되었다는 점이다. 홉스봄E. Hobsbawm은 내구성과 적응력을 지닌 진정한 전통과 20C 들어 민족주의라는 목적으로 창조된 전통을 구분하는데, 진보적 민족문학진영의 전통은 후자에 가깝다는 것이 이 글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요지이다. 좀 더 풀어서 말하면 진보적 민족문학진영에서 논의하는 민요, 풍물, 무가, 판소리는 엄밀한 의미에서 근대 100년을 거치면서 내구성과 적응력을 지녔다기보다는, 진보적 민족문학진영의 민중-민족주의라는 목적으로 창조된 전통이라는 것이다.

진보적 민족문학진영은 판소리, 민요, 무가, 탈춤 등의 평민문학이라는 “낡은 재료들을 이용”하여 민중-민족주의라는 “새로운 목적을 겨냥한 새로운 유형의 만들어진 전통”을 창조했다는 이 글의 주장은, 자칫 문단의 선배가 이룩해 놓은 비장하고도 깊이 있는 진보적 민족문학에 대한 반론으로 오해하기 쉽다. 사실 이 글은 이러한 반론이 아니라 진보적 민족문학진영이 이룩해 놓은 성과의 논리를 좀 더 잘 이해하고, 나아가서 평민문학의 개념적인 다양성을 열어놓고자 하는 목적을 지닌다. 평민문학은 그 장르가 역사적으로 쇠퇴한 이래로 민간 차원에서 계승을 위한 노력이 있음에도 이러한 노력이 간과된 채로 비판적·선동적·저항적인 일면이 강조되는 것이 아쉬운 점은 아닐 수 없다.

20C 들어와서 평민문학이라는 용어에 대한 학계의 관심은 1940~50년대부터 있어 왔다. 8.15 해방을 맞이하면서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자 하는 노력은, 우리 문화라는 추상어에 구체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 중에서 구자균과 그 후학의 관심은 중요하다. 구자균은 평민문학이 양반문학에 대비되는 해학성諧謔性·색정파色情派·취락사상醉樂思想 등의 특성이 있음을 간파하는데, 이 때의 대비는 말 그대로 구별 혹은 차이였다. 양반문학과 다르다는 정도의 분류적인 의미이다. 그의 후학들은 1970년대를 거치면서 춘향전과 시조 등을 놓고서 그 차이를 좀 더 심도 있게 검토한다.

이러한 고전·구비문학계의 노력과는 다른 지점에서 평민문학이 논의되는 것은 주목에 값한다. 이 논의가 바로 진보적 민족문학진영의 평민문학론이다. 이들의 논의가 구자균의 것과 다른 것은 평민문학에 근대성·민중성·저항성·비판성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구자균과는 다른 방향에서 평민문학에 접근하기, 이러한 접근의 논리를 살펴보자.

 

2. 1960~70년대 평민문학의 전통화 모색

구자균과는 다른 방향에서 평민문학이 논의되는 것은 그 논의의 필요성이 문단에서 이미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구자균이 8.15 해방 이후 우리 문화라는 추상의 구체를 채워나간 것이었다면, 그 구체란 다양한 경로로 채워나아갈 수 있음을 전제한다. 평민문학이 양반문학과 구별된다는 분류적인 의미가 강조된 구자균의 논리와 다른 지점에는 근대성의 논리가 자리한다. 1960~70년대 문학계에서는 식민주의의 극복이라는 문제가 학계의 화두로 제시되는데, 이 문제는 상당히 정신적인 것이 된다. 이미 식민지가 끝난 상황에서 식민지의 정치·경제·문화적인 제도와 그 정신을 극복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신적인 차원에서 식민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당대의 학계에서 주로 논의되던 것은 우리 문화·문학이 자생적인 근대문학이라는 가설이다. 이러한 가설의 증명을 위해서는 일본 식민지의 이식이라는 임화 등의 주장과 다른 사례를 제시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근대문학이 일본·서구의 문화가 이식된 흐름 이외에 이미 식민지 이전의 문학이 면면히 이어져 왔음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그렇게 이어져온 문학이 근대성을 내포해야 하는 과제까지 지녀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속성과 근대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1960~70년대의 학계가 주목한 것이 바로 실학파 문학과 함께 판소리·민요·탈춤 등의 평민문학이다. 이러한 평민문학에 대한 관심은 가히 열광적이지 아닐 수 없다. 식민지 이후에도 여전히 정신적인 식민지 상태를 경험한 지식인에게 있어서 우리 평민문학은 우리 문화의 배경 속에서 잉태되었다는 점에서 자생적이고, 특히 식민주의를 감당하지 못했던 근대 초기의 양반·귀족계층과는 다른 계층의 문학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평민문학은 식민지의 극복이라는 명제 앞에서 가장 그럴 듯한 답변이 될 가능성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사적인 배경 속에서 평민문학은 자생적인 문학이고 반反양반·반反귀족계층의 문학이라는 점 때문에 학계의 관심대상이 된다. 이러한 학계의 관심 속에서 평민문학이 반反식민적이고 반反봉건적·근대적인 성격을 부여받는 것은 일견 당연한 수순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수순은 1960년대 문학계에서 주요 화두가 된다. 이 화두에 가장 잘 대답한 이들은 조동일과 백낙청이다.

먼저 조동일은 평민문학에서 저항과 풍자를 강조하는데, 이 때 주목해야 할 부분이 평민문학을 한국문학의 전통으로 재배치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그는 명시적으로 이러한 의도를 강조한다. 조동일은 평민문학이 “양반에 대한 저항과 풍자”이고 “인간해방”을 담고 있다고 말하는데, 이 때 주어가 “중세평민문학이라고 불리워질 수 있는 이 새로운 문학의 사상적 내용”이다. 다시 말해서 평민문학은 근대 100년 동안 내구성과 적응력을 가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화 혹은 가치 부여되고 있음이 암시되는 표현인 것이다. 이 글의 주제와 관련지어 말하면, 전통의 발명인 것이다. 그는 반외세와 저항이라는 일의적인 특성을 평민문학에 의미부여한 것이다.

그리고 백낙청은 1970년대에 조동일이 재배치하고자 한 평민문학을 좀 더 반외세적·저항적인 성격으로 몰고 간다. 백낙청은 민중-민족주의를 주장하는데, 이것은 민족이라는 단위를 좌지우지할 운명의 주인을 대다수의 사람들(민중)로 설정한 이념인 것이다. 백낙청은 1970년대라는 개발독재의 현실에서 민중을 중심에 놓는 변혁적인 문학론을 전개한 것이다. 이 때 백낙청은 민중이 중심이 된 변혁적인 문학론의 기원을 근대 이전으로 잡는다. 이 부분에서 평민문학이 전통으로 재배치되어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조선왕조의 말기로 내려오면 올수록 실제로 민중이 즐기고 민중을 움직일 수 있는 문학에서 민족문학의 전통을 찾아야 할 필요성이 커진다.”라는 그의 말은, 평민문학이 시대를 거치면서 지속적인 영향을 준 것이라기보다는, ‘찾아야’ 하는 것, 즉 발견해서 의미화해야 하는 것임을 암시한다.

조동일과 백낙청의 평민문학 논의는, 평민문학이라는 개념이 반외세적·저항적인 성격으로 일의화되어 전통화되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이론적인 작업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더 큰 문제는 구체적인 작품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1960~70년대 민족문학의 시대가 도래하자, 평민문학은 이론뿐만 아니라 창작에도 중요한 계기가 되는 것이다.

 

3. 민족문학의 창작에서 수용한 평민문학의 양상과 그 비판적 읽기

1960~70년대의 민족문학 시대에 창작자들이 평민문학이라는 이 낯설고 미확정적인 개념을 수용하여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창작을 해야 하는 과제는 일종의 시대적인 사명과 같은 것이 된다. 이 시기에 민족문학의 창작자가 직면한 문제는 과거의 구술적인 양식인 평민문학이 어떻게 민중-민족주의적인 의도에 맞게 활용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과거 평민문학-민요, 풍물, 무가, 판소리 등등-의 양식을 빌려올 때, 그것이 만들어진 특유의 양식적인 특성을 얼마만큼 가져와 민중-민족주의적인 의도와 결합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과거의 한 사회에서 수용된 양식이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다른 사회에서 수용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내포하는 것이다. 김지하와 신경림은 이러한 문제 앞에서 나름대로 시대적인 응답을 한 자이다.

먼저, 김지하는 판소리 양식을 선택하여 민중-민족주의적인 의도를 투영시키고자 한다.

 

첫째 도둑 나온다 재벌이란 놈 나온다

돈으로 옷해 입고 돈으로 모자해 쓰고 돈으로 구두해 신고 돈으로 장갑해 끼고

금시계, 금반지, 금팔지, 금단추, 금넥타이핀, 금카후스보턴, 금박클, 금니빨, 금손톱, 금발톱, 금작크, 금시계줄.

디룩디룩 방댕이, 불룩불룩 아랫배, 방귀를 뽕뽕뀌며 아그작 아그작 나온다

저놈 재조봐라 저 재벌놈 재조봐라

장관은 노랗게 굽고 차관은 벌겋게 삶아

초치고 간장치고 계자치고 고추장치고 미원까지 톡톡쳐서 실고추 파 마늘 곁들여 날름

세금받은 은행돈, 외국서 빚낸 돈, 왼갖 특혜 좋은 이권은 모조리 꿀꺽

이쁜 년 꾀어서 첩삼아 밤낮으로 직신작신 새끼까기 여념없다

수두룩 까낸 딸년들 모조리 칼쥔놈께 시앗으로 밤참에 진상하여

귀뜀에 정보얻고 수의계약 낙찰시켜 헐값에 땅샀다가 길뚫리면 한몫잡고

千원工事 오원에 쓱싹, 노동자임금은 언제나 외상외상

둘러치는 재조는 손오공할애비요 구워삶는 재조는 뙤놈술수 빰치겄다.

 

옹Ong은 구술문화에 입각한 사고와 표현을 9가지로 정리한 바 있다. 그것은 ①종속적이라기보다는 첨가적이다 ②분석적이라기보다는 집합적이다 ③장황하거나 ‘다변적’이다 ④보수적이거나 전통적이다 ⑤인간의 생활세계에 밀착된다. ⑥논쟁적인 어조가 강하다 ⑦객관적 거리 유지보다는 감정이입적 혹은 참여적이다 ⑧항상성이 있다 ⑨추상적이라기보다는 상황의존적이다 등이다. 이러한 9가지의 요소는 판소리에 거의 적용되는데, 김지하의 창작판소리 「오적」은 민중-민족주의적인 의도가 과도하게 강조되면서 균열이 일어나는 지점이 있다.

⑤와 ⑦과 ⑨를 참조하면, 판소리라는 구술문화적인 양식은 구체적인 인간세계에 밀착되어 감정이입적인 느낌이 들고 상황 의존적이어야 한다. 춘향이가 신세타령을 할 때, 자기 삶의 세계를 얘기하여 듣는 자가 감정이입이 될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위의 인용에서 ‘재벌’이라는 인물은 이러한 구술문화적인 요소와 좀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무엇보다 ‘재벌’은 판소리에서 보여지는 “계획적인 악의 유형이 아니라 우리가 듣고 보아서 결코 증오할 수 없는 웃음으로 받아넘기게 되는 그런 유형”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적대적인 악인, 즉 적대적인 저항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재벌’을 너무 비판·적대·저항의 대상으로 그려놓았기 때문에, 판소리의 운율을 지녀서 구연될 수 있음에도 판소리와는 또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이다. 좀 더 덧붙이자면 실제 민중이 ‘재벌’로부터 받는 수모를 생활세계에 밀착하여 감정이입적으로 만들어줘야 하는데, 이 부분이 잘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신경림은 민요 양식을 참조하여 자신의 시적 패턴을 바꾸고자 노력한다. 이 때에도 민중-민족주의적인 의도는 중요한 참고사항이 된다. 시 「목계장터」를 살펴본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우새우 끓어넘는 토방 툇마루

삭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 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위의 시는 민요풍으로 많이 논의된 바 있다. 민요란 본래 민의 노래이다. 박경수의 말을 빌면, “민중의 생활감정과 생각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노동·의식·유희 등 생활상의 일정한 기능을 지니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민요에서 가장 많은 종류가 노동요라는 점을 참고할 때, 옹이 말한 ⑤와 ⑦의 요소가 핵심적인 것이 된다. 이러한 구술문화적인 특성은 위의 시를 살펴볼 때에 묘한 균열이 있어 주목을 요한다.

위의 시에서는 무엇보다 감정이입적이라는 점이 인정된다. 시적 화자가 처한 떠돌이의 상황에 대해서 독자는 공감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간 생활에 밀착된다는 부분에서는 쉽게 동의되지 않는 듯하다. 떠돌이라는 삶의 모습은, 전통적인 민요에서 집단적인 촌락을 이루며 사는 민중 혹은 여러 이유로 떠돌아다니는 민중과는 조금 다른 인상이다. 무엇보다 위의 시에서 민중은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의 보편적 느낌과 의지와 저항, 이것이 우리 시 속에 이어져야 할 민요의 가락”을 보여주려는 민중-민족주의적인 의도가 교묘하게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시 속의 떠돌이는 전통적인 민요가 지닐 법한 슬픔과 흥의 교차, 그리고 해학이 거의 없이 근대화·산업화로 인해 뿌리 뽑힌 민중의 비참한 삶을 다소 평면적으로 드러내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인간 생활에서 마주치는 떠돌이와는 조금 다른 인상인 것이다.

 

4. 평민문학의 전통, 그 한계와 가능성

이처럼 김지하와 신경림의 문학은 평민문학의 현대적 가능성과 그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1960~70년대 평민문학의 전통화는 분명히 과거의 것을 재료로 자기 시대의 문제를 고민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물론 이 시기의 전통이 내구성과 적응력을 지닌 진정한 전통이라기보다는, 민중-민족주의적인 의도에 맞게 창조된 전통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옛 것과 새 것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형성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 점에서 평민문학의 전통화 노력은 그 한계와 가능성을 함께 지닌다. 민중-민족주의라는 시대적인 요구가 너무 강렬할 때, 전통화의 노력은 의도성이 강조되어서 그 요구가 사라질 때에 함께 사라지거나 그 의미가 축소되는 장르적인 한계를 지니지만, 아울러 지하에 묻혀 있던 과거의 유물이 얼마든지 새롭게 닦이어 빛이 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함께 보여준 것이다. 이 점에서 평민문학 전통화의 의미가 있다.

 

강정부∙2004년 계간 ≪문학수첩≫ 신인상(평론 부문), 2012년 ≪예술가≫ 신인상(시 부문). 주요 평론 「계몽의 반성-박영근 論」, 「신경림 시에 나타난 민중의 재해석」 등이 있음. 현 경희대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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