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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겨울호)오늘의시인/이가림/투병통신投甁通信․1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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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3,908회 작성일 13-03-20 17:32

본문

오늘의 시인

이가림 대표시

투병통신投甁通信․1 외 4편

 

 

이제

내 비소 같은 그리움을

천 년 종이에 싸

빈 술병에 넣어

달빛 인광 무수히 떠내려가는

달래강에 멀리 던진다

 

먼 훗날

부질없이 강가를 서성이는 이 있어

이 병을 건져 올릴지라도

그 때엔 벌써

글자들이 물에 씻겨

사라져버렸을 것을 믿는다

 

끝내 말하지 못한 것이야말로

영원히 숨 쉬는 것

 

이제

내 비소 같은 그리움을

천 년 종이에 싸

빈 술병에 넣어

일찍이 미친 사내 하나 빠져 죽은

달래강에 멀리 던진다

 

 

 

 

 

대표시

귀가, 내 가장 먼 여행·2

 

 

이렇게 저렇게

저렇게 이렇게

육십 년도 더 넘게 끌고 온

꿰매고 기운 헝겊 투성이의

내 슬픈 부대자루를

해지는 고갯마루에 잠시 부려놓고

하늘에 밑줄 친 듯 그어진 운평선雲平線에

망연히 한눈팔고 있노라니

예전에 어디선가 본 듯한

허연 수연 휘날리는 조각구름 하나가

불현듯 다가와

축 처진 내 어깨를 두드리며 타이르네

 

“그 동안 많이도 수고했네만

네 부대자루가 넝마가 될 때까지

조금만 더 끌고 가보게

더는 나아갈 수 없는

천 길 낭떠러지

그 미완성의 정점頂点 끝에 다다를 것이니

그 때 푸른 심연의 바다 한가운데

서슴없이 뛰어내리게”

 

이렇게 저렇게

저렇게 이렇게

육십 년도 더 넘게 끌고 온

꿰매고 기운 헝겊 투성이의

내 슬픈 부대자루,

다 닳아진 한 조각 걸레가 되기까지

해 떨어지기 전

생의 마루바닥을

무릎 꿇고 더 닦아야 하네

 

 

 

 

 

대표시

석류

 

 

언제부터

이 잉걸불 같은 그리움이

텅 빈 가슴 속에 이글거리기 시작했을까

 

지난여름 내내 앓던 몸살

더 이상 견딜 수 없구나

영혼의 가마솥에 들끓던 사랑의 힘

캄캄한 골방 안에

가둘 수 없구나

 

나 혼자 부둥켜안고

뒹굴고 또 뒹굴어도

자꾸만 익어가는 어둠을

이젠 알알이 쏟아놓아야 하리

 

무한히 새파란 심연의 하늘이 두려워

나는 땅을 향해 고개 숙인다

온몸을 휩싸고 도는

어지러운 충만 이기지 못해

나 스스로 껍질을 부순다

 

아아, 사랑하는 이여

지구가 쪼개지는 소리보다

더 아프게

내가 깨뜨리는 이 홍보석의 슬픔을

그대의 뜰에

받아주소서

 

 

 

 

 

대표시

바지락 줍는 사람들

 

 

바르비종 마을의 만종 같은

저녁 종소리가

천도복숭아 빛깔로

포구를 물들일 때

하루치의 이삭을 주신

모르는 분을 위해

무릎 꿇어 개펄에 입 맞추는

간절함이여

 

거룩하여라

호미 든 아낙네들의 옆모습

 

 

 

 

 

대표시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모래알 같은 이름 하나 불러본다

기어이 끊어낼 수 없는 죄의 탯줄을

깊은 땅에 묻고 돌아선 날의

막막한 벌판 끝에 열리는 밤

내가 일천 번도 더 입 맞춘 별이 있음을

이 지상의 사람들은 모르리라

날마다 잃었다가 되찾는 눈동자

먼 부재不在의 저편에서 오는 빛이기에

끝내 아무도 볼 수 없으리라

어디서 이 투명한 이슬은 오는가

얼굴을 가리우는 차가운 입김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물방울 같은 이름 하나 불러본다

 

 

 

 

 

신작시

달팽이의 하루 외 4편

 

나에겐

단번에 피안의 기슭으로

훌쩍 건너뛰는

초월 같은 건

없다

 

나보다 무거운

집 한 채를 등에 지고

낮은 포복으로 기는

진땀나는 하루

 

가도 가도

첩첩 안개 진흙밭,

그래도 나의 촉수는

오늘의 미지를 더듬는다

 

나에겐

단번에 문지방을 뛰어넘는

높이뛰기 같은 건

없다

 

 

 

 

 

신작시

노방초路傍草

―스스로 목숨을 끊는 풀은 없다

 

 

시인은

이름 모를 풀이라고

그렇게 말해선 안 된다는데,

이 세상엔

이름 모를 풀들이

너무 많다

 

비록 온몸에 쐐기 모양의 가시털이 있어

늘 따돌림 당하는 쐐기풀일지라도,

뿌리째 뽑혀

땡볕에 말라 비틀어져 죽을망정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없다

 

사람아,

아직 이름조차 없는

저 노방초路傍草에게

경배할지어다

 

 

 

 

 

신작시

밥상 앞에서

 

 

밥알 한 톨이

내 목구멍에 들어오기까지는

적어도 60만 명의 손을 거쳐야 한다고

한다

 

내 앞에 놓인

고봉밥 한 그릇,

작은 라마 사원의 궁륭穹窿처럼

거룩하다

 

날마다 부질없이

남들이 땀 흘려 쌓아놓은 사원을

세 채씩

허물고 또 허물고 있으니

 

이 탕감할 수 없는 죄값을

어찌 갚을꼬!

 

 

 

 

 

신작시

어린 달라이 라마의 하품

 

 

작은 우주복*을 입은

아기가

하품을 한다

 

언젠가

꿈속에서 보았던

막 오수午睡에 들려는

달라이 라마 성하聖下의

참을 수 없는 타원형의 하품이

저러 했었다

 

세상의 모든 아기들은

어린 달라이 라마이다

 

*배냇짓하는 갓난아기가 입는 옷.

 

 

 

 

 

신작시

취모검객吹毛劍客

―무산기담霧山奇談․2

 

 

내가 아는 취모검객은

검이 없다

 

손가락 하나로

휘익

터럭을 베어버린다

 

하지만

그의 검술은

손가락보다는

눈길로 베는 수가

더 많다

 

번쩍

찌르는

광채의 찰나를 보았는가 하면,

어느새

그의 눈길의 칼은

칼집에 들어가 있다

 

내가 만난 취모검객은

그림자가 없다

 

 

 

 

 

시론

바라보기, 꿈꾸기, 쓰기

 

바라보기, 꿈꾸기, 쓰기의 기나긴 공정工程 과정을 통해서 한 편의 시가 태어나는 것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바라본다’ 는 행위가 결정적인 최초의 단서가 된다고 하겠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사물들을 그윽하고 정다운 애정의 시선으로 깊이 바라볼 때, 거기서 ‘시적 이미지의 씨앗’을 캐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날렵한 이미지의 사냥꾼인 시인은 송골매의 눈으로 순식간에 사물의 핵심과 실체를 꿰뚫어 보아야 한다. 그러니까 처음의 처음, ‘제2의 단순성’ 의 원점으로 한없이 되돌아가, 그 순수지각純粹知覺의 원점에서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 바라보고, 놀라고, 꿈꾸면서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천국과 지옥의 결혼」이란 유명한 시를 남긴 영국 낭만주의의 대표적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일찌기 “애정이 깃들지 않는 사고는, 육체와 정신을 분리하듯이, 사랑과 지혜를 분리시킨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 “애정이 깃들지 않은 사고”는 기본적으로 참다운 시인의 사유방식이 아니며 경멸해야 마땅할 비인간적 태도라 할 수 있다. 블레이크가 사용한 언어적 용법을 빌어 다시 말한다면, 사랑이 없는 사고는 사물을 바라보는 관찰방식에 있어 ‘눈을 가지고’ 보는 것이지 ‘눈을 통하여’ 보는 것이 아닌 것이다. ‘눈을 통하여’ 본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블레이크는 한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행복할 수 있다고 나는 느낍니다. 나는 이 세상이 상상력과 비전의 세계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똑같이 사물을 보지는 않습니다. 구두쇠의 눈에는 한 잎의 금화가 태양보다 아름답고, 돈을 넣어 닳아버린 가방이 포도송이가 달린 넝쿨보다도 더 아름답습니다.”

그러니까 구두쇠는 ‘눈을 가지고’ 보는 자라고 할 수 있으며, 시인은 ‘눈을 통하여’ 보는 자라고 할 수 있다. 떠오르는 태양의 모습에서 한 잎의 금화를 보는 돈의 노예가 있는가 하면, 눈부신 출발과 희망의 비전을 엿보는 자유롭고 역동적인 상상력의 몽상가가 있는 것이다. 이 몽상가가 바로 ‘눈을 통하여’ 사물을 보는 자, 즉 애정이 깃든 눈길로 세계를 깊이 바라보는 시인이다. 그러니까 시인詩人은 시인視人인 것이다.

생 폴 루Saint-Pol Roux라는 초현실주의 시인은 자신의 방에서 잠자는 동안에도 문 밖에 “시인 작업중”이라는 팻말을 달아놓고 잠을 잤다고 한다. 나 또한 잠자는 동안에도 꿈을 꾸고 상상력을 활동시키는 ‘24시간의 시인’,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꼼짝없이 시인인 그런 몽상가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사악하고 부조리한 이 세상에서의 달콤한 유혹들을 버려야 하는 힘든 자기희생의 고통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내가 한 사람의 ‘시인’이라 불리는 한,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는, 고독에 파닥거리지 않는, 고독에 거꾸러지기 보다는 오히려 고독을 먹이로 삼아 삶의 진실을 캐어내기 위해 줄기찬 시의 쟁기질을 해야 한다.

 

 

이가림∙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단. 프랑스 루앙대 박사. 파리7대학 객원교수, 인하대 문과대학장, 한국불어불문학회장 역임. 시집 <빙하기>,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순간의 거울>, <내 마음의 협궤열차>, <바람개비 별> 등이 있음.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유심작품상, 펜번역문학상, 영랑시문학상 등 수상. 현재 인하대 프랑스문화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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