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47호(가을호)신작시/장재원/불후의 시 외 1편
페이지 정보

본문
장재원
불후의 시 외 1편
詩의 詩 자도 모르는 한 농부가
날이 풀리자
얼었던 묵정밭을 갈아엎고
밭고랑과 이랑의 운을 맞춘 다음
햇빛과 바람의 은유와 상징으로
씨앗을 심어 놓았다
봄볕 환한 새 아침
온 세상을 품은
천의무봉한
詩 한 뙈기
사람주나무*에게 묻다
설화산 중턱 산비탈에
모진 태풍으로 뿌리 뽑혀 거꾸로 처박힌
사람주나무 한 그루
그대로 잎들이 말라버려 모두가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봄이 되자
바위 틈 속에 가까스로 끄트머리만 묻혀 있던
산소 호스 같은 뿌리로
신생의 잎들을 피워 올렸다
강남성모병원 중환자실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누워 있던
나무사람 한 그루
깨어날 가망 없다는 의사 말에
아기 때부터 큰 집에서 데려다 키운 양아들이
일주일 만에 뿌리 뽑아내
다시 신령한 봄 맞이하지 못했다
칠순 막 넘겼던 숙부
“병실 창 밖에서 친구인 나무는 말했습니다.
내가 여기 있단다… 내가 여기 있단다…
나는 생명이야, 영원한 생명이야….”*
어느 소설 속에서 미소 지으며 죽어갔던 여주인공이 들었다는
나무의 이 말
전화 받고 황망히 중환자실로 찾아 가 “작은아버지!” 하고 불렀을 때
마치 급히 문병 온 조카를 반기시는 생각 뒤편의 신령한 몸짓인 듯
얼굴에 미세한 표정이 스쳐 지나간 것 같았고
시든 가지가 조금 떨렸던 나무, 숙부님
‘사랑한다 나무야, 사랑한다 나무야.’
말 들려주면 더 잘 자란다고 하는 한 그루 화초나무가 되어
“내가 여기 있단다… 내가 여기 있단다…
나는 생명이야, 영원한 생명이야….”
말 하고 계셨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람주나무:숲속에 흔한 높이 6m의 밝은 회백색 낙옆소교목.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인용.
장재원∙2008년 ≪리토피아≫로 등단.
- 이전글47호(가을호)신작시/이현채/코러스 외 1편 13.03.20
- 다음글47호(가을호)신작시/박시하/생활 외 1편 13.03.2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