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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호(가을호)신작시/윤은영/성장통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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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2,765회 작성일 13-03-20 13:41

본문

윤은영

성장통 외 1편

―옥탑방의 별빛 경향

 

 

동짓달 초순인데도

겨울이 굼뜬 가을을 재촉하지 아니하여

 

은행나무는 황금의 추억을 나눠주는 일도 잊고

산맥은 잃어가던 빛깔 대신 먼 길 가는

바람을 잡아 뭉게구름을 만들어 들고 서 있습니다

 

이국의 메타스퀘어는 빨갛게 물드는 일도 멈추고

긴 팔 뻗어 푸른 하늘을 퍼내려오고

땅바닥에 낮게 엎드린 회양목과 사철나무는

푸르른 윤기 어제만큼이나 카랑카랑합니다

 

퇴근하는 사람들 발걸음과 낯빛도

산비탈에 매달려 사는 가난들도

넉넉하고 따뜻한 만찬에 초대받은 듯 가벼워서

 

하늘의 신 외눈박이 초승달도 눈꺼풀을 지그시 감고

쉬었다가 넘어가자며,

느린 지상을 흡족하니 내려다보고 계십니다

 

 

 

 

 

밤꽃이 향그러워

 

 

밤나무, 정원에 한 그루

과부처럼 서 있다

마악 인부들 새참 이고 온 듯.

 

나무 아래 개집 두어 채

흰둥이 복락이 어디 간 곳 없고

텅 빈 칸으로 길 잃은 햇살만 덩그러니.

 

발기한 바람이 일어

쌕쌕

밤나무 건드리는 소리

톡톡

 

밤꽃 몸뚱이 떨어지는 소리

 

밤나무 아래 거사의 흔적이 나뒹군다

밤꽃 향기

장정이 아낙을 후리고 난 뒤 냄새라지만

 

어머니,

지아비 잃고 평생 달빛만 박음질해온 앞마당에

바지랑대 사이 이제 막 널어놓으신

손때 탄 걸레에서 나는

쉰내 같은 외로움이다.

 

윤은영∙2010년 ≪미네르바≫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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