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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호(가을호)신작시/윤은영/성장통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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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영
성장통 외 1편
―옥탑방의 별빛 경향
동짓달 초순인데도
겨울이 굼뜬 가을을 재촉하지 아니하여
은행나무는 황금의 추억을 나눠주는 일도 잊고
산맥은 잃어가던 빛깔 대신 먼 길 가는
바람을 잡아 뭉게구름을 만들어 들고 서 있습니다
이국의 메타스퀘어는 빨갛게 물드는 일도 멈추고
긴 팔 뻗어 푸른 하늘을 퍼내려오고
땅바닥에 낮게 엎드린 회양목과 사철나무는
푸르른 윤기 어제만큼이나 카랑카랑합니다
퇴근하는 사람들 발걸음과 낯빛도
산비탈에 매달려 사는 가난들도
넉넉하고 따뜻한 만찬에 초대받은 듯 가벼워서
하늘의 신 외눈박이 초승달도 눈꺼풀을 지그시 감고
쉬었다가 넘어가자며,
느린 지상을 흡족하니 내려다보고 계십니다
밤꽃이 향그러워
밤나무, 정원에 한 그루
과부처럼 서 있다
마악 인부들 새참 이고 온 듯.
나무 아래 개집 두어 채
흰둥이 복락이 어디 간 곳 없고
텅 빈 칸으로 길 잃은 햇살만 덩그러니.
발기한 바람이 일어
쌕쌕
밤나무 건드리는 소리
톡톡
밤꽃 몸뚱이 떨어지는 소리
밤나무 아래 거사의 흔적이 나뒹군다
밤꽃 향기
장정이 아낙을 후리고 난 뒤 냄새라지만
어머니,
지아비 잃고 평생 달빛만 박음질해온 앞마당에
바지랑대 사이 이제 막 널어놓으신
손때 탄 걸레에서 나는
쉰내 같은 외로움이다.
윤은영∙2010년 ≪미네르바≫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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