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47호(가을호)시깊이읽기/김규린/차부에서 턱을 괴다
페이지 정보

본문
김규린|차부에서 턱을 괴다
# SCENE․1
차부에서
이 시 영
중학교 일학년 때였다. 차부車部에서였다. 책상 위의 잉크병을 엎질러 머리를 짧게 올려친 젊은 매표원한테 거친 큰소리로 야단을 맞고 있었는데 누가 곰 같은 큰손으로 다가와 가만히 어깨를 짚었다. 아버지였다.
문학의 정수는 고요함과 고요함 속의 여운이다. 한때 시끌벅적했던 시골버스가 차례차례 마지막 손님까지 내려놓은 뒤 종착지에 이르러 한소뜸 쉬어가듯이. 버스는 몸을 달군 열기와 시간들을 뒤로 한 채 그것들을 반추한다. 종착지의 ‘현재’라는 경계는 모호하다. 그것은 과거이면서 미래다. 지나옴과 머무름, 그리고 나아감의 내포가 웅크려 있기 때문이다. 어린 날, 내 아버지도 그러하였다. 가족으로서 그의 경계는 모호하였다.
그날 나는 방점 찍듯 경쾌하게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방학 내내 이어졌던 칩거의 중단이었다. 하늘은 쾌청했으며 그리 덥지 않은 날씨가 축복처럼 펼쳐져 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았다. 언제든 요긴하게 쓰려고 모아둔 용돈이 충분했다. 누가 발견할까봐 전전긍긍, 레코드가게 진열장 구석자리에 몰래 찔러놓은 테이프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 곰곰이 차부까지 걸으며 맨 처음 만나는 버스를 타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단순한 외출 계획이 있을 뿐 딱히 예정된 목적지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무심코 처음 도착한 버스를 탔고, 어느 정류장에선가 하차하는 무리에 섞여 무심코 버스에서 내렸다. 또래의 학생들 몇 명이 소란스럽게 일어서는 바람에, 넋놓고 빠져들었던 잡념으로부터 문득 깰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예기치 않게 당도한 작은 도서관에서 나는 철지난 음악 잡지들을 한 무더기 읽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그것은 읽었다기보다는 관람하였다는 편이 옳다. 흑백 주조의 사진들이 나만을 위한 활동사진처럼 여러 차례 눈앞에서 상연되었고, 눈이 피로해질 무렵에야 비로소 나는 그 객석으로부터 빠져나왔다. 다시 터덜터덜 정류장으로 향하다가 버스를 발견하고는 종종거리며 걸어갔던 것 같다. 그리고 그순간, 나는 무언가에 둔탁하게 얻어맞은 느낌에 휩싸여 도로에 뒹굴었다.
그 후 며칠 동안 나는 꼼짝없이 병원 침대에 누워 링거를 맞아야했다. 버스 건너편에서 달려오던 작은 트럭과 가벼운 충돌이 있었다고 했다. 부상은 사소했지만, 후유증을 염려한 담당외과의는 머리께에 고인 울혈을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나는 배출되지 못한 링거액으로 인해 퉁퉁 부은 채 역한 약냄새를 맡으며 무모했던 외출을 후회하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어두운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사고 차량 운전자가 젊은 사람이라고 하더라. 횡단보도에서 일어난 사고라서 문제가 될 것 같은데… 이 사고는 전적으로 네 잘못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증언해주는 게 어떨까?…….
지루한 병실에서 나는 링거를 꽂은 채 아버지께서 창의적으로 각색해주신 사고의 전말을 듣고 정리하느라 무진장 애를 먹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원하는 내 역할을 꽤 잘 수행했던 것 같다.
생각하면, 트럭 운전자에게 얹은 아버지의 손이 부담스럽고 낯설게 느껴진 것은 나로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손은 다친 딸아이를 만져주는 손이 아니라 겁에 질린 한 청년을 달래주는 손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 손이 내 아버지의 것이라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한 채 오랜 세월을 지나왔다. 이제 꽤 긴 세월을 돌아나온 후에야 나는 겨우 안다. 그 손, 아버지의 손이 실은 이방인의 어깨에 얹혀졌던 게 아니라, 바로 내 가슴 속에 깊이 박혀 있었음을. 그 말없는 손이 다가와 울컥, 어깨를 짚는다. 이시영의 시처럼.
# SCENE․2
긴 겨울 지나고 나자 마을 밖 외진 애장터에도 미소
처럼 연한 풀잎이 돋았다
여기도 하나의 무덤이라는 듯이, 생명이란 듯이
―이시영 「엄연한 봄날」
우리 집 정원에는 유독 봄꽃이 많았다. 그래서 매년 봄 안마당은 말 그대로의 꽃자리가 되곤 했다. 가방을 메고 깡충깡충 돌아가는 하굣길, 먼발치서부터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조팝꽃무더기와 다양한 꽃색들은 마음을 두근두근 잡아끌었다. 화려하게 피어난 봄꽃들 가운데에도 유독 내가 집착하였던 것은 하얀 철쭉이었다.
꽃을 심을 때면 아버지는 꼭 그것들을 일렬로 반듯하게 줄을 세워 심었다. 그 기벽은 거의 강박증과도 같은 것이어서, 마치 가장으로서 당신의 권위가 그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꽃줄에서 비롯된다고 여기는 듯 느껴질 정도였다. 줄이 비뚤어진 꽃을 뽑아서 다시 심고, 먼발치서 실눈 뜨고 가늠하던 아버지의 모습은 조금도 낯선 것이 아니었다.
비록 합의한 적은 없지만, 일렬로 심는 것 외에도 우리집 정원에는 또 하나의 원칙이 있었다. 그것은 예쁘게 피는 꽃들을 행인의 눈에 잘 띄는 쪽으로 배치하는 일이었다. 하얀 철쭉이 마악 봉오리를 맺기 시작할 즈음, 아버지는 어린 딸의 반대에도 아랑곳없이 그것을 대문가에 옮겨 심었다. 자리가 바뀌었지만 철쭉은 별 탈 없이 화려한 꽃들을 피워내기 시작했다. 만지면 손가락에 끈적끈적 달라붙는 달짝지근한 향과 꽃받침에 도는 푸르스름한 꽃빛, 잉잉거리는 벌들…….
하지만 며칠 뒤 나는 그 꽃이 뿌리째 뽑혀 사라진 정원에 서 있었다. 나는 움푹 팬 꽃자리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울었다. 나는 내 부모가 우는 딸을 달래고 위로해주리라 믿었다. 나의 상실감을 이해하리라 믿었고, 그래서 행인의 손이 닿는 곳에 그 꽃을 심은 것이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말씀하시리라 믿었다. 그러나 아무리 소리 높여도 나의 울음소리에는 메아리가 없었다. 이윽고 혼자 울다 지쳐 원망에 젖은 그렁그렁한 눈으로 바라보았을 때,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꽃을 훔쳐서라도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라면 너보다 더 그 꽃을 아끼는 사람일 거다. 이렇게 생각해 봐라. 네 꽃이 어디선가 이전보다 훨씬 소중하게 잘 자라고 있다고…….
그 후 우리 가족은 정들었던 집을 떠나야만 했다. 연쇄파산의 와중에 꼼짝없이 불법체류자 신세가 되어 타지에서 전전해야 했던 아버지. 우리는 그 긴 세월 동안 옛집과 정원을 찾아간 적이 없었다. 어머닌 이사를 하면서 낡은 세간들만 끌어냈을 뿐, 그것들을 흥정하는 어떤 유혹에도 흔들림 없이 아름다운 정원수들과 꽃들을 고스란히 남겨두었다.
그런데 어느 만발한 봄날, 우리는 우연히 옛집 근처를 지나다가 정원을 들여다보고 깜짝 놀랐다. 지주목처럼 당당하고 아름답게 서 있던 정원수는 보이지 않고 정원도 황폐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가 이사한 뒤로 주인이 바뀐 옛집에는 스산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사라진 나무에 대해 물었더니 집주인은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나무는…… 저도 살려내려고 무던히 애썼지만 까닭 없이 시름시름 시들어 죽었어요…….
시름시름 죽어간 나무가 옛친구의 손길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마음 아픈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안다. 흔적 없이 아무는 것은 상처가 아니라는 걸. 흔적은 지워지지 않은 채 남겨진 자를, 남겨진 마음을 위로한다. 움푹 팼던 철쭉의 꽃자리에 우거지는 이름 없는 풀꽃들처럼, 이 긴 마음의 끝에도 연한 풀잎이 돋을 것이다.
하나의 무덤이라는 듯이, 생명이란 듯이.
김규린∙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 이전글47호(가을호)시깊이읽기/김미정/거울, 소리 없는 매끈한 세계 13.03.20
- 다음글47호(가을호)정우영의 시평/시는 약이다, 하루에 한 편씩 씹어 먹자 13.03.2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