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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호(가을호)시깊이읽기/김미정/거울, 소리 없는 매끈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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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3,384회 작성일 13-03-20 14:30

본문

김미정|거울, 소리 없는 매끈한 세계

 

 

거울 생각

박 무 웅

 

 

이른 아침 거울을 본다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고 거울을 본다

하루의 일을 마치고 거울을 본다

운동을 하고 여자를 만나고 술을 마시고 거울을 본다

같은 거울, 같은 얼굴?

내가 다르다

옳다 그르다. 좋다 싫다 거울은 말하지 않는다

<?xml:namespace prefix = v ns = "urn:schemas-microsoft-com:vml" />거울에 비친 세상을 무엇이라고 끝내 우길 수 있을까

서로 다른 것은 발전?

방충망은

벌레의 침범을 막아주고 환기도 시켜준다

거울도 내 불안한 인생을 지켜주는 방충망?

마흔인 아들과 대화한다

아들은 시詩처럼 말한다

행간 속의 형체가 없는 말들의 무게가 천금이다.

이것도 거울 혹은 공감共感?

―≪시와표현≫ 2012년 여름호에서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고 했던가. 이제 거울 앞에 선 나는 삶의 저편으로 건너가려한다. 은빛을 발하며 내 앞에 서있는 생의 단면, 날카로운 시간의 칼날에 베어진 흔적이 아프다. 한때, 생의 절정이 볼록렌즈처럼 부풀어 오르기도 했지만 그 표면이 미끄러워 잡히지 않는다. 그는 “거울은 말하지 않는다”라는 문장 뒤로 사라진다. 나는 중심을 잃은 채 거울의 입구와 출구를 뒤진다.

“같은 거울, 같은 얼굴?”은 없다. “내가 다르다.” 거울 속에 내가 없다. 날마다 나는 나를 의심한다. 나는 거울을 통과하려 전력 질주로 달린다. 표면에 닿는 순간 거울은 사라진다. 달려온 나도 사라진다. 거울이 금이 간다. 그 속에 파편화된 내가 있다. 파편화된 우리의 삶이 있다. “거울에 비친 세상을 무엇이라고 끝내 우길 수 있을까.” 나는 내가 너무 많다. 혹은, 나는 내가 너무 없다. 수많은 가면을 바꾸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 속으로 사라졌다 나타난다. 시인은 삶의 단면에 깊숙이 손을 넣는다. 단절과 소통의 감각들이 마주친다. 우리는 잠시 반짝거린다. 거울은 벽에서 시작된다. 벽에서 태어난 시간의 간판.

내가 오른 손을 내밀자 벽에서 왼손이 쑤욱 나온다. 우리는 손바닥을 부딪친다. 소리가 발생하지 않는다. 늘 그렇다. 우리는 만난 적이 없다. 그저 스칠 뿐, 절망과 고독의 심연으로 나를 이끈다. 언제나처럼 우리는 또 거울 앞에 서 있다. 아무 이유 없이 이끌려가는 미로, 미로는 미러…… 소리 없는 매끈한 세계 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인적 없는 어두운 골목길에서, 소음으로 가득한 횡단보도에서, 새벽녘 눈 떠 달빛 내린 거실을 서성일 때 거울은 늘 나를 따라다닌다. 여러 겹의 가면은 소용없다. 그는 언제나 나를 알아본다. 그를 따돌리기 위해 갑자기 방향을 바꾸거나 지하철 문이 닫히는 순간 마지막으로 뛰어들어도 고개를 들면 여지없이 나를 보고 있다. “거울을 본다”, “본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다. 그 앞에 서서 나를 비추어 흐려져 가는 자신의 실루엣을 확인하는 것이 아닐까.

「거울 생각」은 자아의 현존을 탐구하는 성찰의 시다. 이상의 「거울」이라는 작품이 생각난다. 현대인의 소외와 단절, 본연적 자아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행간사이 파편적으로 나타난다. 또한, 타자와의 공존을 추구하는 소통의 시다. 아들은 나에게 또 하나의 거울이다. “시詩처럼”, “형체가 없는 말들의 무게가 천금”으로 흘러내리는 거울이다. 결국 자아와의 불화는 타자와의 “공감共感”이란 결론으로 화해의 제스처를 보낸다. 거울은 바로 나 자신의 현존을 인식시켜주는 통로이자 참을 수 없는 생의 가벼움을 일깨워주는 허무의 벽이다. 현대인들의 실존적 불안을 ‘거울’을 통한 소통의 알레고리로 독자들과의 공명의 폭을 넓힌다. 행간 사이로 스산한 바람이 부는 듯하다. 

생을 지탱하는 것은 투명하게 뻗어가는 시간의 뿌리들이다. 그 뿌리는 덩굴을 이루며 우리의 삶을 직조한다. 날씨와 씨실의 그 혼돈의 틈에서 파편화된 자신을 응시하는 행위는 삶의 궤도를 달리는 일이다. 이처럼 거울을 배후로 한 시적 상상력은 독자들을 자신과 직면하게 한다. 나와 대면을 가능하게 하는 거울은 자기 분열의 심화를 낳는 도구이며 동시에 두 개의 모순된 자아의 표상이다. ‘거울 밖의 나’와 ‘거울 속의 나’가 서로 꽤 닮았으면서도 반대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일상적 자아와 내면적 자아는 한 뿌리에서 나왔지만 불화할 수밖에 없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거울 앞에 선 시어들은 깊은 성찰을 배경으로 자란다.

오늘의 반복은 이제 미루어진다. 거울 속에 박혀 있는 너, 거울의 표면에 흘러내리는 나, 조각조각 파편으로 부서지는 우리, 거울은 입술을 닫는다. 침묵 속에 자라는 고독의 긴 팔들, 당신의 하얀 손가락이 내 등 뒤에 검게 흘러내릴 때 나는 점점 흐려지다가 바닥으로 굴러 떨어진다. 조각조각 흩어진다. 나는 거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침묵이 쏟아지는 거울의 심장을 만지며 사라진다. 저 깊은 소리 없는 매끈한 세계 속으로.

 

김미정∙2002년 ≪현대시≫로 등단. 2009년 ≪시와세계≫로 평론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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