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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호(가을호)책크리틱/김윤정/바람’, 그 새로운 영토에서 이어지는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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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3,087회 작성일 13-03-20 14:36

본문

김윤정|‘바람’, 그 새로운 영토에서 이어지는 문장

 

 

이은규의 시집 <다정한 호칭>은 나른하고 몽환적인 이미지의 시편들로 가득하다. 섬세한 감각과 부드럽게 이어지는 상상력, 그리고 따스한 호흡은 이들 시편들을 풍선처럼 부풀린다. 익숙한 서정의 음률이면서도 미지의 낯선 세계로 향한 이은규 시편들을 통해 독자는 한껏 이완됨과 신비로움을 경험한다.

이은규가 우리에게 그리고자 한 세계는 일상도 현실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반적인 자연이라든가 환상적 세계도 아니다. 따라서 시의 어조는 비판이나 냉소, 혹은 위안이나 유희의 그것이 아니다. 존재하되 보이지 않고 느낄 수 있으면서도 확연하지 않은, 신비롭고 미지未知한 세계가 그녀가 그리는 세계이다. 그것은 여전히 우리에게 낯설고 모호한 지대라 할 수 있다.

시를 읽으면서 불명료한 그곳은 부재한 듯 여겨지면서도 서서히 명료하게 인식되는데, 이러한 변화는 시인이 대상에 대해 매우 선명하게 상상력의 궤적을 그려나가는 데 기인한다. 시인은 마치 그 지대에 늘 와서 살고 있는 자이듯 또렷하고 익숙한 상상의 매듭들을 이어나간다. 그려내는 그 상상의 매듭들이 아주 논리적이어서 독자는 의심없이 시인이 보여주는 세계의 실존을 믿게 된다. 이 점에서 시인의 어조는 객관적인 사태에 대한 사실주의적 태도로 이루어진다 말할 수 있다. 즉 이은규의 시는 일종의 리얼리즘이다.

그러나 지극히 섬세하고 부드러운 호흡으로 담아낼 수 있는 리얼리티의 국면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 존재하되 일상도 현실도 갈등도 아니라면, 따라서 선 굵은 손놀림과 단호한 음색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면 이은규 시의 리얼리티는 무엇을 대상으로 하는가?

 

먼저 와 서성이던 바람이 책장을 넘긴다

그 사이

늦게 도착한 바람이 때를 놓치고, 책은 덮인다

다시 읽혀지는 순간까지

덮인 책장의 일이란

바람의 지문 사이로 피어오르는 종이 냄새를 맡는 것

혹은 다음 장의 문장들을 희미하게 읽는 것

언젠가 당신에게 빌려줬던 책을 들춰보다

보이지 않는 지문 위에

가만히, 뺨을 대본 적이 있었다

어쩌면 당신의 지문은

바람이 수놓은 투명의 꽃무늬가 아닐까 생각했다

―「바람의 지문」 부분

 

 

시에서 ‘바람’은 일순간 불어왔다 사라지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혹은 그저 인식의 한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행동의 주체로서 묘사되고 있다. ‘바람’은 순간적 대상이 아니라 ‘와’서 ‘서성이다’ ‘책장을 넘기기’도 하고 ‘지문’을 남기는 등의 행위 주체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바람’이 독립된 주체가 됨에 따라 그것은 곧 소멸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호흡에 따라 시간을 끌어들이고 종적을 만들고 향기를 남긴다. ‘바람’은 책장 사이에 머물며 ‘종이 냄새를’ 피워 올리기도 하고 ‘문장들’ 사이에 남아 문자들을 ‘희미하게’ 들썩이게도 한다. 여기에서 ‘바람’은 단지 감각의 대상으로 놓이는 대신 주변 사물들을 활성화시키는 역사役事의 주체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람’을 행동의 주체로 초점화시키는 시적 태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까닭에 ‘바람’을 단지 상상과 결부된 것으로서만 여기던 습성을 전복한다. 기껏해야 물질적 상상력의 중심에서 가냘프게 다루어지던 ‘바람’이 이은규의 시에서는 생생한 에너지의 근거로 재정립된다. 이에 따라 시에서 보여지는 일련의 개연적인 ‘바람’의 궤적들은 독자에게 상상 이상의 현실성을 환기시킨다. 즉 시인은 ‘바람’을 객체나 물질로서가 아니라 운동성을 가지고 있는 주체로 형상화하고 있거니와 이 속에서 ‘바람’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 존재감을 남기는 상당히 활동력 있는 실체가 되는 것이다. ‘바람’이 지나간 후 시적 자아가 ‘보이지 않는 지문 위에/가만히, 뺨을 대본 적이 있었다’라고 한 것은 바람이 지닌 이러한 존재감의 표현에 해당한다. ‘바람’은 ‘허공’에서 맴돌다 ‘당신의 손길’과 결합하여 문자 위에 ‘새겨진다’, 그리고 그것은 뜻을 알 수 없는 ‘기억’의 파동을 일으킨다.

이은규의 시편들에서 ‘바람’은 가장 주된 소재 가운데 하나인데, 그것들은 대부분 위 시에서처럼 선명하고도 사실적으로 형상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람’은 여행자들에게 달라붙어 ‘추운 바람 냄새를 묻히기’(「차갑게 타오르는」)도 하고, 존재들을 ‘바람의 입김에 태워’(「추운 바람을 신으로 모신 자들의 경전」) 전달하기도 하며, ‘누군가의 연착을 예감’(「별무소용別無所用」)하게 해주는 매개이기도 하고, ‘나무 둥치가 말을 거는’(「나무의 눈꺼풀」)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바람’은 그가 ‘머물던 흔적을 곧 몸’(「허공에 스민 적 없는 날개는 다스릴 바람이 없다」)이 되게 만드는 생생한 주체이자 힘이라 할 수 있다.

‘바람’을 실재화시키는 이와 같은 상상력은 시인이 보고 느끼는 세계가 ‘바람’이 다니는 길에 놓여 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눈에 보이지 않는 대신 오직 운동성을 통해 존재함을 증명하는 ‘바람’의 경우 시인이 그것의 흔적들에 관여하지 않는 한 ‘바람’은 결코 그 있음을 드러내지 못할 것이다. 시인의 감각은 ‘바람’에 의해 변화하는 주변의 상태들을 읽어냄으로써 ‘바람’의 발자국과 그것의 존재를 확인한다. ‘바람’이 스미는 주변 사물들을 포착하는 시인의 시선이 한없이 섬세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인에 의하면 ‘바람’이 다니는 길은, ‘바람’이 태어나고 이동하며 사라지는 길은 모두 한 길인 ‘허공’이다. 대지의 비어 있는 곳, ‘허공’에서 ‘바람’이 뭉게뭉게 피어나며 아슴아슴 흘러간다. ‘허공’은 ‘바람’을 내쉬고 들이마시는 대지의 폐가 되며 따라서 ‘바람’은 대지의 호흡이자 숨결이 된다. 이은규의 시에서 ‘바람’ 못지않게 ‘허공’이 또한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눈썹과 눈썹 사이

미간이라 부르는 곳에 눈이 하나 더 있다면

나무와 나무 사이

고인 그늘에 햇빛 한줄기 허공의 뼈로 서 있을 것

최초의 방랑은 그 눈을 심안心眼이라 불렀다

왜 떠도는 발자국들은 그늘만 골라 딛을까

나무 그늘, 그의 미간 사이로 자라던 허공의 뼈

먼 눈빛보다 미간이 좋아

바라보며 서성이는 동안 모든 꽃이 오고 간다

나무가 편애하는 건 꽃이 아니라 허공

―「미간」부분

 

‘허공’의 자리를 ‘미간’에 빗대어 말하고 있는 위의 시에 따르면 ‘허공’은 마치 ‘눈과 눈 사이’의 또 다른 눈인 ‘심안’처럼 공간과 공간 사이에 있는 또 하나의 공간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보이는 공간들 사이에 있는 비어 있는 공간이자 비어 있음으로 인해 ‘있는’ 공간이다. 또한 그것은 ‘심안心眼’과 마찬가지로 ‘마음’으로 보는 공간이며 따라서 사물들을 내면까지 통찰할 수 있는 깊은 공간이 된다. 비어있기 때문에 가득 차 있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밝을 수 있는 공간이 곧 여기라 할 것이다. ‘허공’이 그러하므로 ‘떠도는 발자국들’은 그곳만을 그리게 되며 ‘서성이는 동안 모든 꽃이 오고 간다’. ‘허공’은 모든 사물들이 몸을 뻗고 쉬는 곳이자 비로소 깊이 숨을 들이쉬는 가려진 곳이다. ‘나무가 편애하는 것이 꽃이 아니라 허공’인 것도 이와 관련된다.

위의 시는 ‘허공’의 위치와 ‘허공’의 성격을 잘 말해주고 있거니와 이 점은 ‘바람’과 ‘허공’ 사이의 관계에 관한 일 정보를 시사해준다. 곧 ‘허공’이 모든 사물들을 생기生起케 하는 터전이 되는 것처럼 그것은 또한 ‘바람’이 머물게 하는 장소가 되는 것이다. ‘허공’을 배경으로 함으로써 ‘바람’은 자신의 존재를 명확히 각인시킬 수 있으며, 사물의 마음들이 기대는 자리인 ‘허공’을 거닐면서 ‘바람’은 살아있음의 에너지를 발산하게 된다. 즉 ‘허공’의 길을 따를 때에 비로소 ‘바람’은 흔적을 남기고 동시에 주변 사물들의 기억들을 기록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허공’은 ‘나무’뿐만이 아니라 ‘바람’의 사랑 역시 품는 곳으로서 모든 존재들이 깃들 수 있는 넉넉한 공간에 해당한다.

‘허공’이 그러한 자리이므로 때로 시적 자아는 ‘허공’의 소리를 듣기 위해 ‘청진기’를 들이대는 기이한 행동도 보인다. 이를 통해 시적 자아는 ‘허공’에서 일어나는 사물들의 생기生氣와 이야기를 엿듣고자 하였을 터인데, 이는 곧 시인이 염두에 두는 ‘허공’의 자리와 존재 의미를 말해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말더듬이였던 당신

마음을 따라가지 못한 말들이 몸을 떠도는 거라는 소견이 있었다

함께 받은 처방은

구름의 운율에 따라 문장 읽기를 하라는 것

혹은 가슴에 귀를 대고 기다려주기

청진, 듣는 것으로 보다

모든 병은 마음이 몸에게 보내는 안부

말더듬이를 앓는 건 그가 아니라 마음이었으므로

말에 지칠 때마다

당신은 구름이 잘 들리는 내 방 창문을 두드렸다

―「청진聽診의 기억」 부분

 

‘허공’이 사물들의 ‘마음’을 기대게 하는 자리인 까닭에 시의 화자에 의하면 ‘말더듬이’를 치료할 수 있는 길 역시 ‘구름의 운율에 따라 문장 읽기를 하는 것’이 된다. ‘말더듬이’란 ‘마음을 따라가지 못한 말들’이며, ‘구름’이란 ‘바람’과 그 속성을 공유하는 것으로서 ‘허공’을 터전으로 삼는 것이기에 그러하다. 결국 ‘마음’의 병은 ‘허공’에 깃듦으로써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이다. ‘허공’은 자신의 충만함과 넉넉함으로 마음이 유실된 문장을 바로잡고 치유한다. 시적 자아가 ‘말에 지칠 때마다’ ‘구름이 잘 들리는 내 방 창문을 두드렸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점들은 ‘허공’과 ‘마음’, 그리고 ‘문장’들 간에 놓여 있는 논리적 관계들을 새삼 확인시켜 준다. 이때 시인은 ‘허공’을 통해 직접 ‘문장’의 규범을 끌어내고자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인이 “작은 방을 채울 수 있을 만큼, 텅 빈 문장을 원한다”(「육첩방에 든 알약」)는 고백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꿈꿔야 할 문장은

잠언이 아닌, 모래바람을 향해 눈뜰 수 있는

한 줄 선언이어야 할 것

사막 쪽으로 비껴 부는 바람

―「소금사막에 뜨는 별」 부분

 

위의 시에서 역시 우리는 ‘바람’과 ‘문장’을 동일시하고자 하는 시적 자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거니와, 그에게 ‘문장’은 ‘잠언’처럼 숨죽이고 있는 정물로서가 아니라 ‘선언’처럼 강력한 것, ‘모래바람’처럼 생생한 힘의 그것으로서 추구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곧 ‘문장’은 ‘허공’을 향해 뻗어 있으므로 생기와 활력을 띠고 있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곧 ‘바람’과 성질을 공유하는 ‘문장’이고 또한 ‘마음’을 담고 있는 ‘문장’에 해당한다.

‘바람’으로부터 ‘문장’에로까지 이어가는 시인의 상상력은 ‘바람’의 운동성을 노래할 때만큼이나 구체적이다. ‘바람’이 선명한 흔적을 통해 존재성을 증명하는 것처럼 ‘문장’ 역시 ‘바람’의 궤적을 따름으로써 오롯이 서게 되기 때문이다. ‘바람’의 생리를 닮아갈 때 ‘문장’은 시인이 「미간」에서도 언급하고 있듯 ‘허공의 뼈’로 되새겨지는 것이다. 즉 ‘바람’을 닮은 ‘문장’은 ‘허공’에 뿌리내린 ‘마음’의 그것으로서 결코 ‘몸을 떠나 떠도는 것’이 아닌 충실한 문장이 되는 것이리라.

이즈음에 이르면 시인이 왜 ‘바람’의 흔적을 기록하고 ‘허공’을 사실적으로 그렸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시인의 감각이 왜 그토록 미세하였으며 그의 상상력은 왜 그렇게 논리적이었던가. 시인이 그려낸 새로운 지대였던 그곳, ‘바람’과 ‘허공’의 자리들은 비단 시인이 증명한 새로운 영토였다는 점에서만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그곳은 비어 있으므로 대지가 숨을 쉬고, 그러한 점에서 또한 모든 사물이 마음을 기댈 수 있는 곳이 되는바, 시인은 이러한 지대를 단지 상상적으로서가 아니라 사실적으로 그려나감으로써 ‘허공’과 ‘바람’의 존재를 뚜렷이 하고, 이에 기대어 자신의 지향하는 ‘문장’의 성격 또한 암시하게 된다. 시인이 지향하는 문장은 ‘허공’과 ‘바람’의 리얼리티와 마찬가지로 비어있는 동시에 충만하고 보이지 않지만 강한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마음’이 깃들어 있으므로 생기生氣로 피어나는 것이 될 터이다. 곧 ‘바람’과 ‘허공’에 관한 시인의 섬세한 리얼리티는 가려져 있되 마음이 기거하는 공간을 드러내고 그 속에 시의 말들을 오롯이 뿌리내리기 위한 것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김윤정∙≪시현실≫로 등단. 저서에 <언어의 진화를 향한 꿈>, <한국 현대시와 구원의 담론>, <문학비평과 시대정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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