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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호(가을호)첵크리틱/민명자/환상의 시학과 노마드 연가戀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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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3,546회 작성일 13-03-2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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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명자|환상의 시학과 노마드 연가戀歌

 

 

1. 설화 및 에로스적 상상력

한동안 ‘위로’가 세간의 키워드로 주목을 받더니 요즘에는 ‘힐링healing’이 대세다. 그만큼 사회의 통증이 깊어졌다는 반증인가. 그것이 개인의 내적 치유를 향한 것이든 공동체의식의 발로이든, 상업적 의도가 개입된 기획이 아니라면, 그리고 ‘나’의 치유가 또 다른 ‘타자’의 고통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면, 치유는 시도할수록 좋다.

치유는 통증을 전제로 한다. 유혜영은 시집 <통증 클리닉>에서 삶에 통증을 주는 요인들에 주목한다. 무엇이 시인의 통증을 유발하는가. 표제시 「통증 클리닉」에서는 “그대”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이 “통증”으로 전이된다. 여기서 “그대”는 특정한 인물이거나, 시인이 갈구하는 시 혹은 언어이거나, 또 다른 세계의 은유일 수도 있다. 유혜영은 “통증”이란 시어를 직접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시의 배면에 깊은 통증의 아우라를 배치하고 있다. 자아를 비롯한 인간 존재의 정체성, 창작의 고뇌, 현실에 대한 물음 등에 대한 답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유발되는 통증이다.

통증과 더불어 유혜영 시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은 환상성이다. 이것은 상상력, 현실인식, 수사학적 방법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 상상력은 모든 예술의 근간이지만 유혜영의 시에서는 설화적․에로스적 상상력이 개성을 획득한다. 신화나 전설, 민담 등을 포괄하는 설화적 상상력에는 이야기구조가 있고 에로스적 상상력에는 생성이 있다.

설화적 상상력의 예부터 보면, 「도깨비 방망이」에서는 시제詩題대로 ‘도깨비 방망이’ 설화를 패러디한다. “밥 나와라, 뚝딱. 집 나와라, 뚝딱. 로또 당첨번호 나와라, 뚝딱. 얼씨구절씨구 지화자 좋네.” 도깨비는 밤에 판을 친다. 즉, 이 시는 밤의 시공간처럼 어둡고 암울한 현실에서 욕망의 춤판을 벌이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희화화함으로써 현대인의 결핍과 욕망과 좌절을 그린다. “신기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크리스마스에 눈에 올까요」)는 수지타산을 모르는 유년시절에나 존재하는 꿈의 세계인 동시에 아무리 먹어도 배가 고픈 현대인에게는 결핍의 세계다. ‘방망이’는 성적 은유로 쓰이기도 한다. 다음 시는 신데렐라와 연관된다.

 

마법이 풀리는 밤 12시, 어둠이 몸을 틀어 단꿈을 깨우고, 황금마차가 사라진 꿈속에서, 몇 세기에 걸쳐 꾸역꾸역 판화처럼 여자들의 꿈이 찍혀 나오고 있다. 유리구두 하나가 제 짝을 찾아다닌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그녀들이 바닥 없는 꿈속으로 발길을 돌린다.//저요, 저요, 발가락을 자르고 발뒤꿈치를 깎는다./신비스러운 모나리자의 미소로 마법사를 유혹한다./손끝이 저리도록 눅눅한 어둠을 어루만진다.

―「신데렐라」 부분

 

신데렐라 동화의 출발점은 구전설화다. 그러므로 수많은 이본異本이 존재하지만 ‘잃어버린 신발’만은 중추적 화소로서 변함이 없다. 잃어버린 신발과 연관된 이야기는 멀리 신화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신발에는 우리의 집단무의식을 형성하는 원형archetype이 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 이아손이 아나우로스 강을 건너다 잃어버린 신발 한 짝은 영웅의 험난한 노정을 암시하며 고귀한 신분을 공고하게 하는 증표다.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 또한 그러하다. 그러므로 현대판 신데렐라가 되기를 원하는 여성들이 “저요, 저요”, 자신이 구두의 임자라고 손을 들지만 동화를 잃어버린 시대에 “황금궁전”으로의 입성은 요원하다.

이처럼 자신이 삶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유리구두”라는 욕망의 기호에 맞춰 “발가락을 자르고 발뒤꿈치를 깎는” 여성들의 모습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결박당해 팔 다리를 잘리는 나그네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유리구두”는 스스로가 만들어낸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요, 욕망의 덫인 셈이다. 욕망이라는 허상을 좇아 길을 헤매다보면 육신을 상하고 영혼을 도둑맞기 십상이다.

이 시에서는 욕망의 주체를 여성으로 국한하는 것 같지만 그 외연을 확장하면 유사한 꿈을 꾸는 모든 이들로 환치할 수 있다.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여성이나 ‘황금궁전의 공주’를 기다리는 남성이나 다를 바 없다. 많은 이들이 그러한 꿈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지금, 여기’가 물질의 소유여하에 따라 인간의 신분이 규정되는 시대이며 ‘신성한 혹은 성실한 노동’만으로는 자본주의적 카스트의 간극을 뛰어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혜영의 시에서 보이는 “마법의 지팡이”나 “도깨비 방망이”, “유리구두” 등에는 이러한 시공간을 살 수밖에 없는 인간 군상에 대한 연민과 비판이 공존한다.

유혜영은 신발이미지를 다양하게 변용한다. “신발”, “고무신”, “꽃신” 등이 지난한 삶이나 욕망을 상징(「별밤」, 「청미천 연가․10」)하거나, 우리가 안타깝게 잃어버린 본원적 세계와 인간 위의威儀의 가치를 표상(「청미천 연가․9」)한다. 이외에도 불교설화를 바탕으로 “산도 똥이요 물도 똥인” “우리들 세상”(「오어사」)을 풍자하는가 하면, “남아 나이 스물에 나라를 평정한”(「청미천 연가․3」) 남이장군의 탄생설화를 바탕으로 민중적 영웅의 도래에 대한 기대심리를 투영하기도 한다. 다음 시는 에로스적 상상력의 예를 보여준다.

 

저년이 문고리를 잡는 순간 끝장났다 했습니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쳐나갈 때 이미 알았습니다. 아른아른 속살 비치는 노리끼리한 물 항라저고리를 입고서, 산수유나무에 걸터앉아 아리까리한 웃음을, 안개처럼 흘리더니, 매화나무 가지마다, 보기만 해도 침이 주르르 흐르는 허연 허벅지를 번쩍번쩍 들어 턱턱 걸더니, 벚꽃나무에 올라가 속곳도 입었을까말까 아슬아슬, 연분홍 치마를 훌렁훌렁 까 제켜대더니 그예, 앵두나무 우물가 동네처녀들 술렁술렁, 우물 속에 빠진 달을 건져 담 봇짐에 싸들고, 야반도주 넘어가는 뒷산 오솔길, 그리운 진달래꽃으로 흐드러져, 달빛을 머금은 채 즈려즈려 밟히고 있더이다.

―「봄보르봄봄봄봄」 전문

 

이 시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음악성이다. 독자에 따라서는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로 시작되는 대중가요의 가사를 떠올렸을 듯도 하다. 유혜영은 다른 시편들에서도 대중가요나 동요, 의성어나 의태어 등을 적극 활용하여 노래로서의 시의 특질을 고조한다. 이 시 역시 그러한 장점을 한껏 살려 음악성을 높이면서 봄을 입안에서 굴러가듯 감각적으로 전한다.

감각적 묘사와 함께 온 동네를 들썩이게 할 만큼 흐드러지게 꽃이 핀 봄날의 정경이 역동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몸을 활짝 열어 뭇사람을 후끈 달아오르게 하는 봄이 바람난 동네처녀 “저년”과 에로틱한 의인화로 등가를 이룸으로써 역동미의 동인動因을 마련하는 것이다. 사랑의 신으로 알려진 에로스 외에 밤의 여신 닉스로부터 태어난 에로스는 생명의 신으로서 우주생성 설화와 연관된다. 또한 프로이드는 에로스를 생-보전 본능 혹은 성추동의 힘으로 설명한다. 이들의 공유점은 ‘생성’이다. 이 시에서는 봄과 처녀가 에로스적 상상력 안에서 생성의 장으로 나아간다. 봄은 생장소멸을 거듭하는 사계 중에서 생성의 계절에 속하고 처녀는 인간의 주기로 본다면 봄에 속한다. “우물 속에 빠진 달을 건져” 올리는 행위 역시 달의 원형상징이 재생이며, ‘고여 있는 하방 공간’으로부터 상방을 향한다는 점에서 생성과 동궤에 놓인다. 여기에 봄의 낙화와 처녀의 야반도주가 밤이라는 시간 속에서 생성을 전제로 하는 소멸의 우주순환이치를 보여준다. 이외에 「봄 사세요」, 「지하철 풍경」 등 여러 편의 시에서 유사한 심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유혜영은 설화 및 에로스적 상상력을 통해 잘 알려진 설화들을 패러디하여 새로운 알레고리로 형상화함으로써 성찰과 반성을 유도하는 한편 생성의 의지를 표출한다.

 

2. 욕망하는 존재들과 혼재향적 세계

유혜영의 시에는 다양한 인간상이 존재한다. 이들은 대부분 이야기 구조에 편입되며 욕망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식욕, 성욕, 물욕이 대표적인 예다.

유혜영의 시에서 식욕은 무엇이든 집어 삼키는 욕망을 환유하지만 ‘순수한 밥’은 삶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유령의 식사」에서 ‘밥상 밑의 유령’은 실체를 보이지 않으면서도 현존하는 틈새의 존재로서 숨어서 화자를 사육하는 욕망의 화신이다. 이는 타자화된 자아의 형상으로서 죄의식을 수반하며 종교적 행위로써 정화된다. 한편 「밥심」이나 「어머니의 누들로드」에서 “밥” 혹은 “칼국수”는 소통과 긍정의 힘으로 작용한다.

성욕과 관련해서 주목되는 것은 도주모티프이다. 이것은 여성에 대한 시각과 관련이 깊은데 ‘처녀-아내-어머니로서의 존재’가 각기 다른 양상을 보이며, 여성은 결여된 존재로서 자리한다. 「청미천 연가․10」에서는 “붙들네가” “조루” 때문에 “보따리를 싸가지고 남자랑 야반도주”를 한다. 그러나 동일한 야반도주라 할지라도 봄-처녀(「봄보르봄봄봄봄」)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보편적 윤리로만 본다면 붙들네의 행위는 지탄받을 일이지만 그 잣대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고 본다면 “속살을 파고드는 한 줄기 봄빛을 따라나서는 길”은 예속적 규범에 대한 저항이며 몸의 부름에 따른 탈주다. 그러나 붙들네에게 어머니의 자리는 부재한다.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에서도 남성들의 일탈을 이유로 ‘홧김에 맞바람 피우며 제비 따라 강남’ 간 여자들의 “어미의 가슴”은 식어 있다. 승화되지 못한 욕망이 낳은 모성의 부재다. 그런데 이들 뒤에는 남성들의 결여나 과잉이 있다. 조루는 불완전한 성이고 일탈은 과잉의 성이다. “개밥그릇 같은 양재기에 바세린을 펄펄 끓여/주사기로 거시기에 넣어 빵빵하게” 만들고 “방망이 같은 거시기를 으스대다가” 생을 마치는 인수(「청미천 연가․14」) 또한 과잉과 쾌락적 성의 일면을 보여준다. 이러한 과잉의 이면에는 거세의 두려움과 방어기제가 역설적으로 감춰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성욕과 무관한 어머니의 자리는 희생으로 일관한다. 「청미천 연가․4」에서는 사고로 아이가 된 남편을 두고 춤바람이 나서 뛰쳐나간 며느리의 자리를 80노구의 어머니가 지킴으로써 아내의 부재를 모성이 채운다. 「칼자루」에는 폭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여성의 실존적 위기가 있다. 훈이 어메는 오랜 세월 남편의 칼자루에 시달리며 살다가 아이가 성인이 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이 칼자루를 쥠으로써 반전을 이루며 미로에서 벗어난다. 여기서 칼은 폭력과 단죄의 양면성을 지닌다. 훈이 어메의 모습은 폭력적인 가장 밑에서 자식에게 온 생애를 걸고 사는 여성들의 자화상이거나 폭력의 시대를 사는 여성에 대한 은유일 수도 있다. 「모가지가 긴 아리랑」에는 “아버지의 여자, 지아비의 여자, 아들의 여자”로서 대대로 인습을 상호 학습하면서 기다림과 한의 세월을 사는 여성상이 있고, 「돌아앉은 부처」에는 남아선호 사상 때문에 인고의 세월을 사는 여성상이 있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결여된 존재로서의 여성상이다. 「계수나무 아래로」에서 어머니가 말하는 “하나 달고 나오지”못한 존재로서의 딸은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여성상이자 남근phallus 결여의 시니피앙이다. 여기서 시적화자는 “날랜 도공의 손으로 근사하게 만들어 달고 나와/뻣뻣이 서서 오줌을 한 번 쏴아 갈겨” 보거나, “거시기 같은 세상에 대고 뻥뻥거리”거나, “백두산만한 게르를 짓고 어여쁜 색시에게 방망이를 쥐어주고” “계수나무 아래에서” 천 년 만 년 살고자 한다. 결여의 인정인 동시에 저항이다. 또한 저항에는 위치전도를 통한 야유와 카타르시스가 있다. 그럼에도 유혜영 시의 여성들이 대부분 남성들의 행태를 답습하는 것으로 저항을 한다는 점은 한계를 남긴다.

이처럼 유혜영 시의 여성 존재들은 부재나 결여, 인내나 희생의 여성상을 보여준다. 몸의 욕망을 따른 아내들의 탈주는 진정한 생성에 임하지 못하는 반쪽 자유이며, 어머니로서의 길은 저항마저도 희생을 수반한다. 이들 뒤에는 부정적인 남성상이 있다.

식욕과 성욕 외에 물욕은 “돈”이라는 기호가 표상한다. 돈은 자본주의 시대 인간의 존재방식을 결정한다. 유혜영의 시에서 돈은 사람들을 춤추게 하고 세상을 빙글빙글 돌게 한다. 이처럼 어지러운 세상에서 시인은 길을 찾기 위해 자아의 정체성을 탐문한다.

 

거울이 꽃다발을 들고 있다. 거울에 비치는 세상이 온통 꽃밭이다. 거울은 나를 어떤 꽃으로도 피울 수 있다. 한 잎 한 잎 꽃잎을 바꿔달면 꽃에 어울리는 웃음이 배인다.//어느 날은 거울이 별빛을 받쳐 들고 있다. 거울을 어느 방향으로 틀어도 빛나는 성좌가 떠오른다. 낯선 별의 이름을 불러도 내 얼굴이 반짝반짝 뜬다. 캄캄한 밤 길 잃은 나그네가 별을 보고 길을 찾는다.//어떤 날은 똥 한 무더기 띄워 올린다. 더러워서 바라보기 싫은 똥 씹은 얼굴이다. 거울이 보는 세상은 개똥이 구르는 개똥밭이다. 어디를 비춰도 역해서 거울을 던져 버리고 싶다.//마음을 다잡아 거울 앞에서 매무새를 고치고 눈빛을 가다듬는다. 찰나에 어디를 다녀왔는지 꽃물이 줄줄 흐르고, 별처럼 반짝거린다. 거짓말 같은 모습에 거울 속에 내가 나를 닫고 나가버려 내 눈은 깊이도 모를 허공이 되어 거울 속에서 길을 잃는다.//그런 날도 거울은 위아래, 좌우대칭, 정확하게 맞추어 점 하나 솜털 하나 보이는 그대로 존재의 메시지를 보낸다. 거울을 바라보는 사람의 꿈이 거울에서 거울로 비친다.

―「거울 속에서 살아나오기」 전문

 

이 시에서는 거울을 정점으로 ‘주체로서의 나-타자로서의 나’가 시선을 교차하면서 자의식을 투영한다. ‘거울에 비치는 세상’과 ‘거울이 들고 있는 물상’이 일치하는 세계는 자아와 세계가 동일시를 이루는 세계, “캄캄한 밤 길 잃은 나그네가 별을 보고 길을 찾는” 세계다. 루카치의 말대로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할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의 인간은 행복했다. 자아와 세계, 영혼과 행위가 분열되지 않고 유기적인 원환을 이루던 시대의 행복이다. 이와 같은 세계에서 시적화자가 보는 것은 “꽃밭”과 “별”이다. 이것은 이상적 자아의 표상물로서 진리의 기표다. 화자가 바라는 것은 명경이미지로서의 거울, 진리가 구현되는 세상이다. 그러나 거울에 비친 상이 욕망의 배설물인 “똥”이며 현실이 “개똥밭”임을 인식한 화자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로 소외와 단절을 느끼고 길을 잃는다. 그러므로 자아-이상이 꿈으로 남고 기표는 끊임없이 미끄러지면서 깊은 주름을 남긴다. 이러한 과정은 라깡의 상상계․상징계․실재계에 비견되며 생이 지속되는 한 보로메오의 매듭처럼 서로 교집합을 이루면서 반복 순환한다.

유혜영의 시에서 ‘오줌, 똥, 피’ 등 신체언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아브젝시옹abjection의 일면을 지닌다. 혐오스러운 물질을 사용하여 그와 같은 사회의 모순과 금기에 도전하는 동시에 거부와 배설을 통해 억압으로부터 해방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처럼 거울이미지를 통해 자아와 세계의 불일치, 균열을 보여준 시인은 「청미천 연가․15」에서는 세상이라는 “개여울”을 떠가는 “종이배”가 된다. 인간에게 주어진 연대기적 시간은 불가역적이어서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지만 그러한 시간을 유영하는 자아상은 수동적이지만은 않다. “빙글빙글” 도는 세상에서 ‘우뚝 서고, 춤추고, 위장하고, 뒤지고 다니고, 세포분열을 하는’ 동사적 행위가 능동적이다. “집시의 혈통”을 자처하면서 한 곳에 정주定住하지 않고 끊임없이 유동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모색하는 모습이 노마드를 닮았다.

이 시의 배경인 청미천은 실재하는 지역이면서 모든 인간들이 몸담고 있는 현세의 시공간을 암시한다. 청미천에는 탄생과 죽음, 맑은 물과 흙탕 물, 상실한 본향과 이상향, 꿈과 사랑과 욕망과 좌절이 삶의 그물망 안에서 소용돌이치며 혼재한다. 장터․병원․감옥 등이 혼재하는 “풍진세상”이다가 “무릉도원”이 되기도 하는 청미천, 이처럼 서로 상반되고 이질적인 것들이 공존하는 청미천은 미셀 푸코의 관점으로 보면 혼재향hétérotopia적 세계다. 청미천 연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바로 우리 시대 민중들의 자화상이다.

 

3. 환幻과 몽夢, 환상의 수사학

유혜영의 시에서 현실을 드러내는 지배적 심상은 ‘환幻’과 ‘어둠’이다. “땅바닥이 나바우판처럼” 돌아치는 세상(「팽이」), “이리저리톱니바퀴맞물리며세상이돌아살얼음판같은세상이쌩쌩돌아쌩쌩도는세상”(「돈아돈아」)에서 시인은 중심을 잃지 않으려 곡예사나 술래가 되면서 이상향을 꿈꾼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과 존재들을 그리는 방식의 하나로 환상의 수사학을 택한다. 「돈아돈아」에서는 숨이 차게 돌아치는 세상을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띄어쓰기를 배제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하는데 「매직」의 장章에 실린 연작시들을 비롯하여 유령과 도깨비, 변신 모티프들이 환상성을 강화한다. 유령이나 도깨비 모티프를 차용한 일련의 시들에서는 환청과 환각 등으로 환상성을 고조하며, 「변신하는 여우」에서는 현란한 물질문명의 바다에서 본질을 잃고 외피에 사로잡혀 사는 인간군상의 모습을 변신 모티프로 재현한다. 변신이나 사지절단 모티프에는 불합리한 세계에 대한 해체의지가 담겨 있다.

 

그녀가 마법의 틀로 들어간다. 그녀에게 걸린 주술은 괜찮다, 이다. 그녀의 팔다리를 벌려 묶어놓고 예리한 칼로 내리친다./철거덩, 팔이 잘린다. 괜찮다./이리저리 끌려다니던 팔이 잘리면, 갇혀있던 꿈들이 팔을 내밀고 저요, 저요, 꿈에도 그리운 천수관음으로 날아간다. …(중략)…목이 잘린 그녀가 웃는다. 살아 있다. 부랴부랴 잘라진 틀을 다시 맞춘다.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걸어 나온다.

―「매직․3」 부분

 

마법의 틀처럼 어둡고 불가해한 현실에서 사지가 잘리는 것 같은 고통을 감내하고 살아남는 길은 “괜찮다”를 주술처럼 외며 스스로를 위무하는 일이다. 시적화자는 마법의 세계에서 ‘팔-다리-목’이 차례로 잘린다. 그래도 “괜찮다”고 한다. 형이하학적 육신을 잘리는 대신 얻는 것은 형이상학적 구원이다. 또한 고통을 웃음으로 수용하는 것은 두려움의 극대화요 초극의지의 다른 표현이다. 화자가 그리워하는 “천수관음”은 천개의 눈과 천개의 손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로서 구원의 기표다. 유혜영의 시에서 자주 보이는 주술적․종교적 행위는 현실에 대한 위기의식의 발현이다. 시인은 깜깜한 밤, 아슬아슬한 절벽 위, 크레바스 등에 위치하면서 추락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위기의식 등을 표출해왔다. 그러므로 줄곧 자신의 정체성을 물으며 꽃을 피우려 하지만 “유방암 병동”처럼 병인病因이 깊은 세상에서 벼랑으로 떨어지거나 “길 잃은 사슴”(「벼랑 위에 피는 꽃」)이 되곤 한다. 또한 「청미천 연가․11」에서는 ‘처녀의 아기’를 찾아 헤맨다. 이 시는 실제를 가장하지만 상징적의미를 내포한다. ‘처녀성’은 지모신의 원형이요, ‘처녀의 아기’는 대부분 영웅의 탄생이나 성모의 무염시태無染始胎를 상징해왔다. 즉, 이 시의 아기는 신비한 탄생으로서 구원의 기표요, 새로운 가치창조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순수지가 훼손된 세상에서 화자가 찾아다니는 아기는 빛을 보지 못하고 상실의 기표로 남는다. 시인은 “두꺼비 새 집에서 그에게 젖꼭지를 물리고 싶다”고 한다.(「청미천 연가․5」) “그”가 어떤 대상이든 구태를 버리고 창조적 생명의 세계를 창출하는 일이다. 어머니의 젖은 대지의 모성으로서 영원한 고향이요 생명줄이다.

유혜영 시의 환상구도는 이러한 현실인식과 관계를 맺는다. 즉, 현실과 이상의 어긋남, 불확실한 세계에 대한 문제제기를 환상의 방식으로 표출하는 것이다. 모호한 세계를 모호한 낯설음의 방식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환상에는 불합리한 세계의 해체와 거부, 비판과 성찰의지가 공존한다. 더불어 요술램프, 지니, 마법의 양탄자, 마법의 모자 등을 동원하여 동경의 세계를 담아낸다. 세파에 휩쓸리는 존재로서는 성취하기 어려운, 동화에서처럼 풍요로운 세계를 꿈꾸는 것이다. 시인은 이제 독자를 「별 프로젝트」로 안내한다.

 

하늘 아래 핀 꽃, 하나하나의 의미를 알아내 어디서 무엇을 해도 꽃을 피우자는 거지. 모든 생목숨들이 가지고 태어난 찬란한 별빛을 지우는, 먹구름을 막아내자는 거지. 잘 먹고 잘 사는 법의 지름길이지, 투쟁의 어려움도 마음먹기 달렸지//장담해, 이 프로젝트에 들어오면 죽는 날까지 행복을 보장한다. 근심 없는 꽃들이 생글생글 웃고, 오색영롱한 무지개가 살고 있어 밤마다 펑펑, 별 폭죽이 터지는 여기는, 누구나 제왕이 되고 왕비가 되는 왕들의 나라다. 아이들은 왕자와 공주만 태어난다.//한 번 마음 놓고 들어와 보실라우?

―「별 프로젝트」 부분

 

유혜영 시의 여정은 ‘별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시에는 그동안 시인이 추구해온 가치관이 집약되어 있다. 시인은 꾸준히 “별”과 “꽃/꽃밭/꽃등”을 지향해왔다. 별과 꽃은 각각 천상과 지상, 정신과 물질,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세계를 표상한다. 불가의 관점으로 보면 깨달음의 청정토요 ‘가지가지 꽃으로 장엄된’ 화엄의 세계다. 별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피나는 담금질(「스타 성장기」)이 필요하고, 세상의 파도에 추락한 별은 죄의 낙인과 소외의 표지(「청미천 연가․7」)가 된다. 그러므로 화자는 “거미줄/안개속/망망대해/먹구름/쓰레기/굶주린 개”와 같은 현실에서 “꽃/찬란한 별빛/무지개/아이들/행복”이 상호 조응하는 세계를 위해 “투쟁”의 중심에 서있다.

그 여정은 ‘사랑’으로 완성되는 것으로 보인다. “눈이 멀어서/불나비가 되고,/버러지처럼 기고/개같이 끌려 다녀도,/그러나 사랑하므로/비로소 사람입니다.”(「완성」 전문)라는 전언이 아포리즘적이다. 사랑이란 단어는 그동안 과소비되어 온 경향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사랑은 우리가 실천해야 할 영원한 화두다. 사랑은 늘 “수수께끼”(「사랑」)를 남기고 그 실천은 통증을 수반하지만 불완전한 것들을 합일과 승화로 이끌고 인간을 인간답게 일으켜 세우는 강한 힘이 된다. 그러므로 그 치열한 실천을 위해 시인은 노마드로서 연가를 부른다.

문학은 시대의 아픔에 동참하고 미래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유혜영의 시는 그러한 인식의 결과물이다. 유혜영은 인간 삶의 통증이 어디서부터 연유하는지 주목하고 그 근원인 욕망의 문제를 성찰한다. 그리하여 현대 물질문명의 바다에서 각종 이데올로기에 침윤된 존재로서 느끼는 결핍과 욕망으로부터 탈피하고자 자아의 정체성을 탐문하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우리 고유정신을 살피고 이상적세계를 지향한다. 그리고 그것을 시로써 구현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다. 상상력을 주축으로 한 이야기구조는 인간 존재와 실존적 현실에 대한 탐구에서 내적 리얼리티를 확보하며, 패러디․비유․상징․역설․환상 등의 수사학적 방법들이 율격 및 호모 루덴스적인 유희성과 결합함으로써 외적 묘사는 자유롭고 역동적이되 내적 구성은 치밀하고 깊이 있는 뼈대를 구축한다. 패러디나 환상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징후이기도 하다. 하나의 시작법에 정착하지 않고 실험정신으로 실제와 가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유혜영의 시는 읽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지만 관념적이고 난해한 부분도 없지 않다. 이것이 다의적․중층적 의미를 확보하는 앰비규어티ambiguity 작법인지 단순한 모호함인지, 그 판단은 독자에 따라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핀 것 외에도 여러 층위에서 다양한 담론적 접근의 가능성을 남기는 유혜영의 시는 분명 열린 텍스트를 지향한다.

 

민명자∙2002년 ≪계간수필≫ 로 수필 등단. 2007년 ≪문학마당≫으로 평론 등단. 저서 <김구용의 사상과 시의 지평>. 공저 <주근옥의 문학세계>, <한국여류수필선>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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